"야한 작품 없어요" (여자)아이들 '누드'와 박찬욱 '아가씨'[안윤지의 돋보기]

안윤지 기자 / 입력 : 2022.10.2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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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여자)아이들 /2022.10.17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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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찬욱 /사진제공=CJENM 022.06.24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야한 작품을 기대하셨다면 Oh I'm sorry 그딴 건 없어요" ('누드'(Nxde) 가사 중)

"'아가씨'는 상류 계급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쓰던 말인데 다른 의미가 있죠. 남성들에 의해 오염된 단어기도 하죠. 그런 오염으로부터 되살리고 아름다운 말 '아가씨'를 쓰고 싶었어요."(박찬욱 감독 인터뷰 중)


대중문화의 파급력을 무시했다간 큰코다친다. 상업성이 짙은 콘텐츠는 단어의 뜻과 이미지를 바꿔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여자)아이들은 지난 17일 새 앨범 '아이 러브'(I love)를 발매했다. 이번 신보는 '나'는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해야 마땅하며 내가 원하지 않는 겉치레는 벗어 던지고 꾸밈없는 본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당찬 각오를 담고 있다.

타이틀곡 '누드'는 모든 사람의 페르소나를 'Show'로 표현하고자 오페라 '카르멘'의 아리아 '하바네라'의 멜로디를 차용한 얼터너티브 팝 장르의 곡으로, 꾸며지지 않은 개인의 본모습을 누드라는 단어에 빗대어 표현하였으며 단어에 대한 외설스러운 시선을 대범하게 비꼬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여자)아이들은 올해 상반기 타이틀곡 '톰보이'(TOMBOY)를 성공시키며 후속작에 대한 부담이 상당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드'라는 새로운 곡을 탄생시켜 리스너들에게 선보였다. 그리고 이 또한 성공했다. 20일 오전 기준, 국내 대형 음원사이트인 멜론, 벅스, 지니 등에서 1위를 기록했고 아이튠즈 톱 앨범 부문에서 프랑스, 뉴질랜드 등 40개 지역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배우 마릴린 먼로를 오마주했다는 '누드'는 그의 인생을 조명함과 동시에 자극적인 단어의 뜻을 바꿔버렸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그간 '누드'는 예술계에서 외설적인 뜻으로, 주로 나체가 된 여성의 몸을 가르켰다. 포털사이트에 '누드'란 단어를 검색해도 "청소년에게 노출하기 부적합한 검색 결과가 있다"라며 검열 대상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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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자)아이들 '누드' 뮤직비디오
전소연은 이를 정확하게 꼬집었다. '누드'의 가사 중 앞서 언급한 가사 뿐만 아니라 "I'm born nude / 변태는 너야 / Rude"란 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누드'란 옷을 벗은 상태가 아닌 태어난 직후의 모습임을 강조한다. 또 외설적으로 바라보는 '너'의 시선이 무례한 행동임을 지적한다.

이들의 기조는 당당함이다. 데뷔 타이틀곡이었던 '라타타'(LATATA)에선 "시작의 점화 가까이 온다 / 누가 뭐 겁나"라며 자신들의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대표 타이틀곡인 '톰보이'는 "사랑 그깟 거 따위 내 몸에 상처 하나도 어림없지 / 너의 썩은 내 나는 향수나 뿌릴 바엔"라고 강한 말투는 물론, CD 안에서만 들을 수 있는 버전엔 'FXXX' 이라는 욕설이 들어가 있다. 이런 당당함이 '누드'에서 가장 크게 작용됐다. 그들이 '누드'로서 말하고자 한 바는 단순히 본인 그룹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자 한 것이다.

(여자)아이들은 '누드'를 통해 의도치 않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국내외 검색 포털사이트에 '누드'를 검색하면 자극적이고 외설스러운 사진이 아닌 (여자)아이들의 뮤직비디오 혹은 음악이 검색된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 누드', '여자 누드', '여자아이들 누드' 등의 검색 내용까지 정화되기 시작했다. '누드'란 단어를 좀 더 건강하게 바꿔낸 것이다.

이런 효과는 앞서 영화 '아가씨'를 통해서도 확인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는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와 하녀 숙희(김태리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작품은 2016년 개봉작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성을 인정 받으며 여전히 언급되는 작품 중 하나다. 이 영화는 다수 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이끌어냈으며 배우 김태리는 데뷔작임에도 트로피를 수상했다. '아가씨'는 내용 측면으로 봤을 때 여러 사회적 메시지를 전한다. 이 중 가장 강력한 건 제목이다.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말한 것과 같이, '아가씨'는 뜻을 정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아가씨는 과거 미혼의 여성을 일컫는 단어가 아닌 불건전한 단어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발달되며 아가씨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악화됐다. 그러나 영화 '아가씨' 개봉 이후 확실히 달라졌다. 영화의 스틸컷과 장면들이 검색창에 있는 아가씨를 장악했고, 박찬욱 감독의 뜻이 널리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대중 문화에 대해 상업성이 짙어서 예술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이나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보면 해당 논리가 얼마나 좁고 얕은 말인지 알 수 있다. 오히려 가볍게 던지는 말 한 마디가 더 큰 파급력을 뽐낸다. (여자)아이들과 박찬욱 감독도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를 바꾸고자 한다. 이들의 행보가 바로 대중 예술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안윤지 기자 zizirong@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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