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잤더라면.." 풍자, 극단적 선택한 母 떠올리며 흘린 눈물 (금쪽상담소)[★밤TV]

트랜스젠더 풍자 '금쪽상담소' 출연 "성전환 후 父와 칼 두고 대치"

윤성열 기자 / 입력 : 2022.07.02 06:19 / 조회 : 1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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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은영의 금쪽상담소' 방송 화면
트랜스젠더 방송인 풍자가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서 안타까운 가족사와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대해 털어놔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풍자는 1일 오후 방송된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오은영에게 상담을 받기 위해 출연했다. 풍자는 이날 "쉬는 날이 1도 없다"며 '워커홀릭'으로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고민을 토로했다.

68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로 활동 중인 그는 1년 반 전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을 때에도 마취가 풀리자마자 방송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인공관절 수술 후 통상적으로 6개월가량을 제대로 걸을 수 없지만 "잊히는 게 두려웠다"며 수술 후 3일 만에 걷기 위해 무리하게 움직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간호사 몰래 보행 보조기로 새벽 내내 걸어다녔다"며 "피 주머니를 차고 있는데 움직임이 많아서 피가 계속 차니까 하루에 몇 번씩 갈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평균 수면시간이 2시간이라고 밝혔다. 그는 "많이 자면 4시간 정도고 정말 짧게 잘 때는 10분도 자 본 적 있다"며 "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전했다. 또한 "일이 너무 좋고 일이 없다 보면 불안하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또 일을 잡는다"고 했다.

그가 '워커홀릭'으로 살아온 데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영향도 있었다.

그는 막냇동생이 3살일 때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 뒤로 할머니가 우릴 돌봐줬는데 1년도 안 돼서 돌아가셨다"며 "아무런 케어가 안 되는 상황이었고, 아버지는 지방으로 일을 가셔서 우리끼리 셋이 살았다. 그때 어르신들이 '애가 애를 키운다'고 했다"며 맏이로서 부모 없이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과거를 고백했다.

그는 또한 "아버지는 완전 멀리 살았고,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 왔다. 아빠가 생활비를 보내줬는데 한참 모자랐다. 그때 당시 한 달에 3만 원이었다"며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절을 털어놨다. 그는 당시 막냇동생이 영양실조를 겪었다며 "2000년대 이야기다. 먹는 거 입는 거 자는 거 아무 것도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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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은영의 금쪽상담소' 방송 화면
그의 어머니는 풍자가 어릴 적 사기를 당한 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그는 "어머니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병원에서 '더 이상 해드릴 게 없다'고 하더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집에 돌아가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게 제일일 것 같다'고 말씀하더라"며 극단적 선택 후 절망적이었던 어머니의 건강 상태를 떠올렸다. 그는 '어린 친구들은 피부병처럼 옮을 수 있다'는 병원의 조언에 동생들은 인근 교회 목사에게 맡기고, 홀로 어머니를 간호했다고 했다.

당시 청소년이었던 그는 어머니의 임종을 다 지켜봤다고 했다. 그는 "문을 걸어 잠그고 방 한 칸에 엄마랑 단둘이 있었다"며 "그때 (일주일간) 혹시 어떻게 될까 봐 자본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신이 잠이 든 사이 어머니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밝힌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빈소에 앉아 있는데 '왜 퍼질러 자서 이런 일까지 만들었나' 생각이 들더라"며 그때 잠을 자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한 번도 산소에 간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돌아가시고 나서 (성전환 후) 지금 내 모습을 보지 못했다"며 "그래서 더 못 가겠더라"고 털어놨다.

이날 풍자는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아버지와 갈등했던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커밍아웃을 세 번 했다"며 "첫 번째 때는 아버지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웃으면서 넘어갔다. 두 번째 때는 아버지가 너무 많이 울었다. 어머니의 부재로 내가 엄마 역할을 하다 보니까 그런 병이 생겼다고 생각하더라"고 전했다.

풍자는 세 번째 커밍아웃 때 성전환 수술 후 아버지를 만났다고 했다. 그는 "세 번째는 칼을 두고 대치했다. 아버지가 '죽어도 이해를 못하겠다'고 하더라. '그래도 지금 네 의견대로 여자로 살겠다고 하면, 이 칼로 나를 찌르고 가라'고 말씀하시더라.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눴는데도 이해를 절대 못하시더라. 아버지가 담배 한 대 피우러 나갔을 때 내가 집에서 도망을 나왔다. 그후로 가족을 약 10년 못 봤다"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 가족들과 재회했다는 그는 "아버지가 어느날 뜬금 없이 전화가 와서 우시더라. '아빠가 된장찌개에 밥해 줄 테니까 집으로 오라'고 얘기하더라. 그 이후로 온 가족이 모였는데 처음엔 서로 못 알아봤다. 나도 많이 변했고, 아빠도 너무 나이가 들었고, 막냇동생은 초등학생 저학년일 때 봤는데, 이제 나보다 훨씬 키가 커졌더라. 가족인데 낯을 너무 가렸다. 지금은 너무 잘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성전환 수술 이후에도 주민등록번호를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법적으로는 아직 남성이라며 "지금이라도 (여성으로) 바꾸려면 바꿀 수 있는 상황인데, (이 일로) 아버지와 다시 갈등이 생기는 게 무섭다"고 고백했다.

윤성열 기자 bogo10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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