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바리니-버럭호철, 신생팀 페퍼에 '꼭' 필요했던 스토리텔러

광주=김동윤 기자 / 입력 : 2022.01.19 08:22 / 조회 : 1791
  • 글자크기조절
image
페퍼저축은행 선수단이 18일 광주광역시 페퍼스타디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 2021~2022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경기에서 창단 첫 홈 경기 승리를 거둔 후 기뻐하고 있다./사진=한국배구연맹
V리그 막내 구단 페퍼저축은행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하나 더 추가했다. 김형실(71) 페퍼저축은행 감독과 김호철(67) IBK기업은행 감독은 노련한 스토리텔러로서 그 이야기를 맛깔나게 살렸다.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18일 광주광역시 페퍼스타디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 도드람 2021~2022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홈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25-18, 25-22, 25-21)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페퍼저축은행의 연패는 18경기째에서 멈춰 섰다. 또한 창단 첫 홈 승리이자 셧아웃 승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은 단순한 기록 이상의 더 귀한 무언가를 얻었다.

페퍼저축은행처럼 이미 만들어진 리그에 뒤늦게 뛰어든 신생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만의 이야기다. 팬들은 단순히 성적이 아닌 저마다의 이유로 경기장을 찾고, 그런 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다른 구단과 차별화된 이야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후발주자인 신생팀은 이미 오랜 시간을 통해 자신만의 서사를 쌓고 수많은 매치업을 통해 관계성을 만든 기존 팀들보다 여건이 마땅치 않다.

올 시즌 페퍼저축은행은 이날 경기 전까지 전형적인 신생팀, 약팀에 불과했다. 쌓여가는 연패에도 나무라는 시선은 없었기에 그것조차 평범했다. 그런 페퍼저축은행이 유일하게 빛난 순간이라면 지난해 11월 9일 IBK기업은행과 1라운드 경기에서 창단 첫 승을 거둔 때였다.

image
김형실 페퍼저축은행 감독과 김호철 IBK기업은행 감독이 18일 광주광역시 페퍼스타디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 2021~2022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경기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한국배구연맹


이날은 그런 순간을 만들어낸 두 팀의 맞대결이었기에 관심이 쏠렸고, 여기에 한 가지 더 흥행 요소가 추가됐다. 바로 '할바리니(할아버지+라바리니)' 김형실 감독과 '버럭호철' 김호철 감독의 첫 만남이었다. 남자배구만 맡던 김호철 감독이 지난달 18일 IBK기업은행을 맡으면서 성사된 매치업은 6, 7위 팀의 맞대결임에도 십수 명의 취재진이 몰릴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두 감독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경기 시작 전부터 차곡차곡 얘깃거리를 쌓아 나갔다. 지난 경기에서 8연패 탈출에 성공한 김호철 감독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형님과 서로 걱정하고 위로했다. (페퍼저축은행도) 빨리 연패에 벗어나서 활력을 얻었으면 했다"고 운을 띄웠다. 그런 김호철 감독이 인터뷰실을 떠날 때, 들어오던 김형실 감독은 "살살해"라며 농담을 건넸다.

그렇다고 승부에 대충은 없었다. 김호철 감독은 3일 전 5세트 접전을 치르고 온 선수단을 배려하면서도 결국은 주전 선수 모두 내세웠다. 김형실 감독도 "시합에 들어가면 선후배고 사제 간이고 없다"면서 에이스 엘리자벳 이네 바르가(23)를 선발 출전시키는 등 총력전을 펼쳤다.

그 결과 멋진 경기가 나왔다. 페퍼저축은행에서는 엘리자벳이 23득점으로 맹활약했다. 레프트 박경현(25)과 주장 이한비(26)는 각각 11득점, 8득점으로 엘리자벳을 도왔다. 이들뿐 아니라 페퍼저축은행의 모두가 자신들만의 강점을 살려 인생 경기를 했다. 반면 기업은행은 김호철 감독의 호통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image
페퍼저축은행 선수단이 18일 광주광역시 페퍼스타디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 2021~2022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경기에서 승리 후 김형실 감독(가운데)에게 물을 쏟고 있다./사진=OSEN


그렇게 기업은행은 신생팀 페퍼저축은행에 창단 첫 승, 홈 경기 승리, 셧아웃 승리를 모두 내준 '특별한' 팀이 됐다. 경기 후 김호철 감독은 "오늘은 페퍼저축은행이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쉬는 것보다는 활력을 넣었어야 했다"라고 선수가 아닌 자신을 탓했다. 그러면서 "김형실 감독님께 축하드린다. 페퍼저축은행도 앞으로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할 것 같다. 우리도 다시 팀을 재정비해서 (연패하던)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게 할 것"이라며 승자를 향한 축하도 잊지 않았다.

패장 김호철 감독이 승리팀을 챙겼다면 승장 김형실 감독은 경기 후 선수단과 팬들을 챙겼다. 그러다 재밌는 장면도 연출했다.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는 박경현(25)을 위해 선수들과 함께 물 세리머니를 준비하다 오히려 역공을 당해 흠뻑 젖었다. "우승한 것처럼 물을 뒤집어썼다"고 활짝 웃어 보인 김형실 감독은 팬들을 향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김형실 감독은 "20패 할 때까지 팬분들이 관대하게 기다려주셨다. 오늘 관중석의 어떤 팻말을 보니 '1승이라도 좋다, 연패라도 좋다, 신나게만 해달라'고 하시더라. 그렇게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 좀 더 매진해서 목표한 5승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선수들과 열심히 해보겠다. 자신감을 가졌으니 부상을 최소화하면서 승부 근성을 극대화해 5라운드에서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경기 전부터 끝난 뒤까지 화려한 언변을 자랑한 두 감독은 신생팀 페퍼저축은행에 '꼭' 필요했던 스토리텔러였다.

image
18일 광주광역시 페퍼스타디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 2021~2022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경기에서 관중석에 걸린 페퍼저축은행 팬들의 응원 현수막./사진=OSEN
관련기사
  • 트위터
  • 페이스북
  • 라인
  • 웨이보
  • 프린트
  • 이메일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