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피해자의 '12년 인내심'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나

한동훈 기자 / 입력 : 2021.02.2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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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우. /사진=KOVO
무엇이 박철우(36·한국전력)의 12년 인내심을 한순간에 무너뜨렸을까. 그것은 바로 가해자가 거짓된 포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철우의 분노에 가해자인 이상열 감독은 결국 이번 시즌 잔여 경기 출장을 포기했다.

박철우는 2009년 이상열(55·KB손해보험) 감독(당시 국가대표팀 코치)에게 구타를 당했다. 아픈 기억은 가슴에 묻어두고 살았다. 하지만 10년도 훨씬 지난 2021년 2월 18일, 돌연 마음을 고쳤다. 이 감독이 당시의 일을 그저 한 번의 실수 정도로 치부한다고 여겨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상열 감독의 17일 인터뷰가 도화선이었다. 이 감독은 최근 V리그 학교폭력 이슈와 관련해 "인과응보가 따르기 마련이다"며 항상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이상열 감독에게 폭행을 당했던 박철우에게는 그저 가식으로 보인 것이다.

박철우는 이상열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 18일 낮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SNS에 올렸다. 그리고 이날 저녁 안산에서 열린 OK금융그룹과 경기에서 승리한 후 수훈선수 인터뷰 자리서 그간 쌓였던 말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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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열 감독. /사진=KOVO
박철우는 "(이상열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하루종일 손이 떨렸다. 나는 어차피 그 일(2009년)이 있었을 때 고소도 취하했다. 처벌이나 사과를 바라지 않는다. 반성하길 바랐다"고 돌아봤다.


박철우는 이상열 감독이 자신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상습적으로 때렸다고 주장했다. 박철우는 "맞아서 고막이 나간 친구도 있고 기절한 친구도 있다. 내가 이렇게 (폭로를) 해서 힘든 상황에 놓이면 힘이 돼 주겠다는 동료들이 많다"고도 했다.

즉, 박철우는 이상열 감독이 자신 외에도 많은 선수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마치 한 차례 실수였다는 듯한 태도에 박철우는 실망했다. 이 감독이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았다고 봤다. 그래서 박철우가 직접 바로잡기에 나선 것이다.

박철우는 "정말로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사과 받고 싶지도 않고 굳이 보고 싶지 않다. 그저 이 발언을 하고 싶었다. (이상열 감독이) 자신을 그렇게 포장하는 것, 그건 아니다"라 힘주어 말했다.

박철우의 이같은 인터뷰 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이상열 감독은 20일 구단을 통해 "과거 저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박철우 선수에게 깊은 상처를 준 데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고 사죄하는 마음이다. 다시 한 번 박철우 선수와 배구 팬들에게 12년 전 본인의 잘못된 행동에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남은 시즌 경기에 나서지 않고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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