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나는 왜 나폴리의 영원한 태양이 됐나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0.12.04 16:58 / 조회 : 1732
image
지난 11월26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나폴리-리예카의 경기에 앞서 선수들이 디에고 마리도나를 추모하며 묵념을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20세기 마지막 축구 천재로 불리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지난 11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마라도나 사망 후 그의 조국 아르헨티나에서는 추모 분위기가 뜨거웠다. 팬들은 고인의 자택에 몰려들었으며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3일간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할 정도였다.

어쩌면 아르헨티나가 그를 애도하는 것은 예상됐던 일이다. 그가 이끈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이 1986년 월드컵 정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축구에 죽고 사는 아르헨티나 국민들로서는 그 이후 아직 월드컵 우승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마라도나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이상으로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나타난 마라도나 추모 열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가 뛰었던 나폴리 구단의 홈 구장 산 파올로 스타디움에는 코로나 19 상황에도 수많은 인파가 운집했으며 나폴리 시장은 산 파올로 스타디움을 디에고 알만도 마라도나 스타디움으로 명명하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나폴리 시민들이 이처럼 마라도나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의 신기에 가까운 축구 실력은 물론 그가 팀과 함께 이룬 놀라운 성과와 관련이 크다.

나폴리는 마라도나 영입 이후 창단 이래 최초로 1986~1987 시즌 세리에 A 정상에 등극했으며 1988~1989 시즌에는 UEFA컵(현재의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89~1990 시즌에는 팀 역사상 두 번째로 세리에 A 패권을 차지했다.

하지만 나폴리가 마라도나를 이처럼 그들의 영웅처럼 생각하게 된 데에는 단순히 마라도나가 창조한 축구의 전성시대 이상의 이유가 존재한다.

이탈리아 남부의 매력적인 도시 나폴리는 슬픔과 낭만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탈리아의 산업화는 토리노, 밀라노, 제노바 등 북부 도시를 중심으로 이뤄졌고 나폴리를 포함해 농업이 주요산업이었던 대부분의 이탈리아 남부 도시들은 산업화의 대열에서 소외됐다. 산업화의 혜택을 보지 못해 궁핍하고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던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미국이나 아르헨티나와 같은 신천지를 찾아 떠나야 했다.

이 와중에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 사람들은 서로 반목했다. 세련된 이미지의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은 남부 사람들을 촌스럽고 전근대적이며 질서를 지키지 않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집단으로 치부했다. 반면 남부 사람들은 이탈리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북부 사람들을 경멸했고 때로는 질시했다.

전 세계인들이 흥얼거리는 유명한 민요 멜로디와 이탈리아 전통 피자의 고향으로 알려진 낭만의 도시 나폴리는 이런 이탈리아 남부의 정서를 대표하는 곳이다.

나폴리 시민들은 그들이 종교처럼 생각했던 축구에서도 AC 밀란, 인터 밀란, 유벤투스 등 이탈리아 북부 팀들이 득세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했다. 실제로 이탈리아 축구를 지배했던 AC 밀란과 유벤투스는 각각 타이어 제조업체로 유명한 피렐리와 이탈리아 국민차 피아트가 모기업이었다.

image
1988년 나폴리 시절의 마라도나. /AFPBBNews=뉴스1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나폴리 시민들이 마라도나에게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었다. 북부 축구 팀의 콧대를 꺾고 남부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마라도나는 가난한 공장 근로자의 아들이었으며 어머니는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이라 나폴리 시민들은 그에 대해 더욱 강한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같은 정서는 마라도나가 나폴리를 이탈리아 남부 축구 팀으로는 최초로 세리에 A 정상으로 견인하자 절정에 달했다. 나폴리 시민들이 그를 태양이나 신처럼 떠받들었던 이유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마라도나 효과는 엄청났다. 마라도나가 나폴리 유니폼을 입고 뛴 첫 두 시즌 동안 나폴리 축구 팀이 벌어들인 입장수입은 이전 24년 간의 입장수입을 넘어설 정도였다. 1980년대 후반은 아직 이탈리아에 유료 위성 TV 체제가 도입되기 전이라 축구 중계권료보다 입장수입이 구단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컸다. 이 때문에 북부 축구 팀들마저 나폴리의 마라도나 특수를 부러워했을 정도다.

코카인 복용 혐의로 곤경에 처했던 마라도나는 1991년 도망치듯 아르헨티나로 떠나갔다. 혼외자법정소송과 악명 높은 나폴리 지역 마피아와의 마약거래 의혹까지 축구 스타로서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던 마라도나에 대해 이탈리아는 비난의 화살을 쏘았다. 하지만 2005년 친선경기 참가를 위해 나폴리를 찾았던 마라도나를 향해 나폴리 시민들은 ‘디에고’를 연호하며 변치 않는 애정을 표출했다.

수많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고향이 생각날 때마다 나폴리의 민요를 불렀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노래는 ‘나의 태양’이라는 의미의 '오 솔레미오(O Sole Mio)'다. ‘나폴리의 영원한 태양’ 마라도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라도나 스타디움’을 보면서 언젠가 나폴리 시민들은 이 노래를 부를지도 모를 일이다.

image
이종성 교수.
  • 트위터
  • 페이스북
  • 라인
  • 웨이보
  • 프린트
  • 이메일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