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이 밝힌 '반도'의 길고 다양하고 다른 뒷이야기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20.07.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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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연상호 감독


연상호 감독은 바빴다. 영화 '반도'의 감독으로, '방법: 재차의'의 기획·시나리오 작가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의 감독으로, 그는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반도' 관객이 200만명이 넘는 날, '지옥' 프로덕션 사무실에서 만난 연상호 감독은 마침 대만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동영상으로 녹화하고 있었다. '반도'는 대만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연상호 감독을 만나 '반도'와 그 이후를 들었다. 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합니다.


-'염력' 이후 원래 '반도'를 준비했던 게 아니었는데. 웹툰 '지옥' 스토리 작업은 이미 작화를 맡은 최규석 작가와 합의가 됐었던 것이고.

▶원래는 다른 영화를 하려 했다. 호러 색채가 있는 영화였는데, 투자배급사인 NEW에서 '부산행' 속편격인 영화를 만들자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반도'에 대한 아이디어는 원래 있었다. 그런데 과연 내가 연출을 하는 게 맞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부산행'이란 영화는 세계관을 넓힐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은 했는데 내가 연출을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일단 제일 걸렸던 게 예산이었다. 최종적으로 160억원이 들었지만 처음 구상할 때는 300억원 가까이 예산이 들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예산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게 있을지, 솔루션을 고민하면서 결국 '반도'를 직접 연출하기로 했다.

-처음 기획할 때는 '부산행2'로 '부산행'에서 살아남은 정유미와 김수안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고려하기도 했는데. 캐스팅 불발로 현재 버전으로 바뀌었는데.


▶내용은 거의 똑같다.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살아남은 다른 가족의 이야기가 됐을 뿐 전반적인 서사와 주제는 같다.

-기획 초반에 이정현이 맡은 민정 역에 액션을 잘하는 톱스타 섭외가 진행되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정현이 민정 역에 더 적합했던 것 같은데.

▶난 처음부터 이정현이었다. '반도'의 마지막 이미지가 중요했다. 여리면서도 깡이 있는 이미지. 그 정서가 중요했고, 그래서 처음부터 이정현이었다. 이정현은 액션도 그렇고, 배우로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정말 훌륭하다.

-어린아이가 트럭으로 좀비들을 쓸어버리는 이미지에서 '반도'가 출발했다고 했는데. 왜 그 이미지로 시작했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그리는 내용이니,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 시대를 더 오래 보낸 사람들이 있을테고, 새로운 시대가 더 익숙한 세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이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더 익숙한 느낌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한 여러 기술을 갖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중에 하나가 그런 이미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왜 트럭이 아니라 모하비였나. 현대기아차에서 협찬을 받았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일단 트럭은 드래프트가 안 된다. 애초에 모하비 정도 되는 SUV도 드래프트가 쉽진 않다. 그러다가 SUV가 드래프트를 하는 영상을 보고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다행히 협찬을 받긴 했지만 모든 차가 현대기아차일 수는 없어서 여러 차종을 선택했다.

-왜 좀비와 싸우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대결을 택했나.

▶좀비가 너무 약하다. 좀비는 뱀파이어나 다른 크리쳐보다 약하다. 좀비는 개별 크리쳐라기 보다는 배경과 합해져서 더욱 공포스러우며 어울린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대결을 택했다. '부산행'처럼 처음 좀비가 등장했을 때는 좀비에 대한 공포가 있지만 그 뒤에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더 무서울 것이라 생각했다. '워킹데드' 같은 좀비물도 마찬가지다.

-좀비가 약하다 보니 '반도'에서 한국에 있는 좀비들 소탕이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아 보이기도 하는데.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반도'와 다른 좀비물과 다른 세계관이기도 하고. 누가 왜 한국을 위해 그런 일을 할까. 실제로 좀비들을 소탕하면서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군대가 들어오는 좀비물도 있고, 좀비들을 없애려 핵폭탄을 쓰는 좀비물도 있다. 하지만 '반도'에선 아무도 한국을 위해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 가치가 없으니깐. 그게 진짜 리얼한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립된 감정, 그리고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반도'와 다른 좀비물의 차이점이라고 믿는다.

-'부산행'에서 4년이 흐른 뒤의 이야기다. 얼마 안 남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 잡아먹은 좀비들은 뭘 먹고 버티고 있었다는 설정을 세웠나. 설정 중에서 잘 먹지 못해 좀비들이 비쩍 말랐다는 것도 염두에 뒀다던데.

▶일단 좀비들의 식인에 대해 여러 설들이 있다. 좀비가 좀비를 먹는다는 설도 있고, 사람만 먹는다는 설도 있고, 좀비가 식인을 하는 게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 그중에서 '반도'는 좀 더 클래식한 설정을 택했다. 원래 좀비는 부두교의 주술로 만들어진 존재다. 현대 좀비물이 주술에서 바이러스로 치환된 것이다. '반도'의 좀비들도 바이러스로 변한 것이지만 주술적인 이유처럼 식인을 한다는 설정을 택했다.

다만 좀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최대한 마른 사람으로 뽑으려 했다. 돈가방이 실린 트럭에 타고 있던 마른 좀비 역할을 맡은 배우는 '부산행' 연출부였다. 그런데 그렇게 마른 배우들을 많이 찾기가 쉽지 않았다. CG로 좀비를 만들 때는 처음에는 홀쭉하게 만들었는데, 실사 좀비 배우들이 그렇게 마르지 않아서 붙여놓으니 잘 안 맞더라. 그래서 오히려 CG 좀비들을 실사 좀비 배우들 같은 체형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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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스틸.


-인천항에 강동원 일행들이 도착한 이후 도로에 차들이 양쪽으로 잘 정리돼 있는데.

▶도심에선 631부대가 사람들을 구할 때, 작업을 쉽게 하기 위해서 정리했다는 설정이 있었다. 그렇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줄까도 했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더라. 그래서 인천항에서 처음 올 때는 한쪽 차선은 엉망이라 다른 차선으로 온다. 차들도 인천항 주위에선 잘 정렬돼 있지 않다.

-보통 한국 부대는 네 자리 숫자명이다. 그런데 '반도' 속 부대는 631부대다. 돈가방이 든 트럭 차번호는 6431이고. 특별한 의미가 있나.

▶특별한 의미는 없다. 시나리오를 쓸 당시 6,3,1이란 숫자에 꼽혔던 것 같다. 부대 번호는 원래는 네 자리 숫자여야 하는데 실제 부대 숫자와 안 겹치는 걸 찾기도 쉽지 않아서 그냥 세 자리 숫자로 정했다.

-한국 상업영화에서 신파는 매우 유효한 코드다. 적절히 쌓아가지 못하는 게 문제이지 두 시간 안에 관객을 울린다는 건 정말 중요한 장르의 법칙이다. '부산행'도 한국에선 신파 코드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해외에선 신파 코드를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반도'의 신파 코드도 그런 연장 선상인가. '부산행'에서 부성애였다면 '반도'는 모성애를 택한 것인가. 또한 마지막 장면은 신파 코드가 문제라기 보다는 너무 늘어진다는 비판도 있는데.

▶일단 신파 코드는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파란 결국 최루성 멜로 코드인데 한국영화를 비롯해 한국 영상콘텐츠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에 맞다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부산행'에서 부성애를 다뤘으니 '반도'에선 모성애를 다룬 건 아니다. '부산행'도 그렇고 '염력'도 그렇고 부성애가 계속 들어가다 보니 또 하면 의도가 있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피해서 간 것이다.

늘어진다는 지적은, 그 시퀀스에 감정적인 턴이 많다. 김노인(권해효)을 두고 가는데 그냥 버리고 갈 수는 없고, 민정(이정현)도 턴이 있고, 정석(강동원)도 턴이 있다. 전체 시퀀스가 그리 길지는 않는데 그런 것들을 못 견디는 취향도 있기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첫 부분을 배로 설정한 까닭은. 비행기도 있었을 법한데.

▶오프닝은 '부산행'과 비슷한 느낌이었으면 했다. 그리고 그런 오프닝이 끝나면 전혀 다른 이야기로 펼쳐지길 바랐다. 비행기 같은 경우는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좀비 상황을 다룬 다른 영화가 있다.

-배가 일본으로 가다가 홍콩으로 향한 이유는.

▶일본이 난민을 안 받아서 홍콩으로 갔다는 설정인데. 일본으로 갔다가 한국인들이 박해를 받으면 자칫 다른 식으로 읽혀질 수 있을까봐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한국 근처에서 받아줄 수 있는 곳은 홍콩과 대만일텐데, 홍콩 느와르 영화에 향수가 있어서 홍콩으로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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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스틸.


-카체이싱을 '반도' 주요 볼거리 중 하나로 택했는데. '매드맥스'로 아포칼립스 카체이싱은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고, '반도'의 카체이싱은 이레가 하는 만큼 CG와 결합이 돼야 했을 테고. 애니메이션 감독 출신으로 CG와 실사의 결합, 그리고 속도감과 액션에 누구보다 민감하고 그렇기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던데.

또한 카체이싱 설계는 어떻게 했나.

▶CG퀄리티는 만족한다. 퀄리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게 아니라 공정 과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긴 했다.

초반 준이(이레)의 카체이싱은 말그대로 준이의 등장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 강하고 강력하게. 나중에 631부대와 카체이싱은, 게임처럼 레벨을 나눴다. 이레가 상대하는 카체이싱, 불을 키고 난 뒤의 카체이싱, 좀비들이 위에서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카체이싱 등등으로 레벨업 된다는 설정이었다. '매드맥스' 카체이싱이 중량감이 있다면 '반도'는 드래프트 같은 액션에 치중했다. 오히려 영화보다는 '마하 고고' 같은 애니메이션 액션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레는 미성년자인데 운전 장면 등은 어떻게 촬영했나.

▶운전 장면은 전부 다 CG다. 대역으로 운전한 것도 없다. 차를 타고 짐벌로 찍었다. 이정현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운전한 건 없고 전부 풀CG다. 그게 제작비를 줄인 솔루션 중 하나였다.

-'반도'는 한국 좀비영화로 한국적인 키치 요소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나이트클럽 트럭으로 좀비를 유인하는 것인데.

▶군대라는 아저씨 집단을 상징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빛과 소리를 이용해야 하고. 그래서 착안했다. 영화에 안 쓰인 설정도 있는데 네온사인이 가득한 건물에서 빛이 촤악 하고 나온다는 것도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는 인물들의 구성도 키치적이다. 보통 그런 인물들은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는 특공대 같은 사람들로 구성하는 법인데. 강동원을 제외하면 보통사람들인데.

▶강동원은 총기 액션을 해야 하니 UDT 출신이란 설정이었고, 매형은 원래는 통신 기술을 가진 KT 직원이란 설정이 있었다. 운전하는 여성은 택시운전사라 길을 잘 안다는 설정이고, 또 한명은 자동차 정비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능력들의 조합이었다.

-좀비를 이용한 인간 레이스를 하는 장소는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착안한 것인가.

▶착안한 것은 맞는데 영등포 타임스퀘어를 재현할 수는 없었다. 너무 크다. 그렇게 커다란 세트를 만들 수가 없었다.

-'반도'에선 한국에서 살아남은 집단 중 남자들이 모인 집단과 여자들이 주축인 집단이 확연히 다른데. 제인도 여자고. 구원의 상징이자 미래의 상징으로 여성 캐릭터를 활용한 것인가.

▶원래는 살아남은 집단을 두 가지로 설정하고 고민했다. 하나는 타락한 군대 집단이고, 하나는 사이비 종교 집단. 사이비 종교 집단에선 교주가 여자였다. 그런데 카체이싱과 총기 액션을 택하면서 군대 집단을 택했다.

이레 같은 경우는 여자로 처음부터 설정한 게 아니라 그냥 아이였다. 그런데 이레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캐스팅하면서 자연스럽게 소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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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 '반도' 스틸.


-이레의 어떤 점이 좋았나.

▶'7년의 밤'을 보고 이레가 너무 좋았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과 '소원' 때와 전혀 다르더라. 그래서 이레를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만나고 나선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크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다.

-기획과 시나리오를 쓴 '방법', 그리고 영화로 만드는 '방법: 재차의'도 여성 캐릭터들이 주요인물인데.

▶특별히 뭐가 있는 건 아니다. 이야기에 따라서 그렇게 됐다. '지옥'은 또 다르다. '방법: 재차의'는 드라마 '방법'과는 구성이 또 다르다.

-왜 강동원이었나.

▶리얼한 보통 사람을 남자 주인공으로 할 것인가, 멋있는 남자배우를 쓸 것인가의 선택에서 후자를 택한 것이다. 배우가 캐스팅되면 장르적인 힘이 생긴다. '부산행'도 공유, 마동석이 출연하면서 장르적인 펜시함이 생겼다. '반도'에서 강동원도 그런 힘을 준다. 강동원은 액션도 잘할 뿐더러 감정 연기도 좋아서 영화에 힘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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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환과 김민재/'반도' 스틸.


-'부산행'에선 김의성이 빌런 역할이었다면 '반도'에서 서대위 역할의 구교환과 황중사 역할의 김민재로 빌런이 둘로 나뉘는데. 빌런이 하나일수록 영화에 힘이 더 생기는 법인데 왜 둘로 나눴나.

▶'반도'는 공동체 간의 대립이라고 봤다. 타락한 군대와 이정현이 이끄는 가족. 그리고 이 타락한 군대가 붕괴 직전이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빌런을 둘로 설정했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간부와 하사관의 관계에 대한 이해도 쉬울테고. 또한 빌런을 인물로 설정한다기 보다는 상황 자체가 빌런이고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반도'는 빌런을 무찔러서 미션을 해결하는 영화가 아니니깐.

-'부산행'도 그랬지만 '반도'도 캐릭터 빌딩이 약한 것 같은데. '부산행'은 배우들이 갖고 있는 매력이 캐릭터 그 자체가 되면서 약한 캐릭터성을 뛰어넘었다면 '반도'는 그런 점에선 아쉬운 점이 있는데.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부산행'과 '반도'를 일대일로 비교를 하다보니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부산행'도 마동석 외에는 캐릭터성이 두드러진 건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셔서 놀랐다.

-구교환과 이정현은 '반도'에서 전사가 따로 있었던 것 같은데.

▶이야기가 사실 별개로 더 있다. 631부대가 희망을 잃고 타락해가는 과정과 연결된. 그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다면 별도로 만들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서 대위는 원래 민정에게 생명의 은인 같은 존재였다. 그랬던 서대위가 변화하는 과정, 희망을 놓치는 과정, 실수 때문에 벌어지는 일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 멘탈이 나가는 별도의 스토리가 있다.

-좀비와 사람의 레이스는 어떻게 구상했나.

▶631부대의 야만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수위를 고민해야 했다. '부산행'을 아이들이 많이 봤다는데 그 중에는 재밌게 본 친구들도 있지만 너무 놀란 친구들도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런 영향을 고민했다. 수위를 조절하는 한편 인간을 갖고 게임을 한다는 야만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돼지의 왕' '사이비' '서울역' 등과는 달리 '부산행'과 '염력', 그리고 '반도'로 갈수록 가족애, 그리고 보편적인 사랑을 그리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등 사적인 변화에 영향을 받았나.

▶그렇지는 않다. 내 바이오리듬이 작품 세계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받았을 수는 있지만 난 작품을 만들 때 산업적인 특성을 고려해서 기획하고 만들지 내 안의 것들을 넣지는 않는다. '돼지의 왕' '사이비' 때도 그랬다.

또 영화에서 이데올로기적인 것들도 배제 시키자는 주의다. 물론 그걸 다르게 읽는 것은 할 수 없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부산행'은 세월호 이야기로 당시 읽혔고, '반도'는 코로나 사태의 은유로 읽히고 있는데.

▶코로나 사태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니깐. 다만 코로나로 대표해서 이 영화 속에서 보이고 읽히는 것들은 사실 원래 현실에서 익히 보여지고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부산행'과는 달리 '반도'에선 희망을 갖게 하는 스토리로 구성했다는 게 이 영화가 공개된 이 시점에선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부산행'에서 김의성에게 특히 사람들이 분노했던 건, 마음을 준 영화 속 인물들이 다 김의성과 관계돼서 죽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이 죽었다. 반면 '반도'에선 살았으면 하는 인물들을 살리고 싶었다. 그 차이가 지금 시점에서 개봉한 것에 주는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반도'는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을 포기해야 한다면 포기하는 게 상식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다면 그곳이 지옥은 아니라는 두 가지 보편적인 상식의 충돌을 그리는데.

▶'반도'는 결국 연대에 대한 이야기다. 연대에 의한 공동체에서 살고 있느냐, 생존을 위한 이성적인 상식이 중요한 곳에서 살고 있느냐의 이야기다. 보편적인 주제다. 그리고 이 보편적인 주제가 지금 이 시기에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 영화는 영화의 운명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인을 백인 남성이 아닌 말레이시아 여성으로 한 것도 그런 이유인가.

▶그렇다. 백인 남성으로 하면 자칫 미군으로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UN이란 글자가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연대의 느낌. 그래서 UN을 일부러 크게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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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연상호 감독


-모그 음악감독이 참여했는데, 음악이 전형적이다. 울려야 할 때 울리고 고조돼야 할 때 고조되는 음악인데. 전형적인 음악은 장르적인 힘을 주지만 경우에 따라선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쓰기도 하는 법인데.

▶모그 감독님에게 이렇게 부탁드렸다. '반도'는 영화를 정말 많이 보는 분들이 평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 섬마을에 있는 할머니가 배 타고 나와서 극장에서 '반도'를 보러 오면, 바로 그 분을 위한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난 보편성의 힘을 믿는다.

-현재 연상호 감독은 '서울역'과 '부산행', 그리고 '반도'로 이어지는 좀비 세계관과 '방법'과 영화 '방법:재차의'로 이어지는 세계관, 그리고 '지옥'으로 만들어질 세계관을 갖고 작품들을 만들고 있는데. 그 뒤에는 어떤 세계관으로 작품 활동이 이어질 것 같은가.

▶인디 애니메이션으로 '돼지의 왕' '사이비' '서울역'을 했고, 상업영화로 '부산행' '염력' 그리고 '반도'를 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다.

좀비 세계관과 '방법' 세계관, '지옥' 세계관도 펼쳐지는 길이 많고 죽을 때까지 하고 싶지만 전부 내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방법'처럼 좋은 분들과 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옥' 이후 연출하고 싶은 건, 일단 한국적인 SF를 생각하고 있다. 우주선이나 액션이 나오는 게 아니라 필립 케이 딕 작품 같은 그런 한국적인 SF를 생각하고 있다. 일단 '지옥'을 끝내고 난 뒤에 세 가지 작품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방법' 시즌2와는 별개인 '방법'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 있고, 좀비호러도 있는데 그건 내가 연출하지는 않을 것 같다. SF도 그 중 하나다.

-'지옥'은 웹툰이 완결되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어지고 난 뒤 다시 넷플릭스 시즌2가 만들어지게 될 것 같은가, 아니면 웹툰을 먼저 시즌2로 만들 것 같은가.

▶최규석 작가와 하고 싶을 때 시즌2를 하자고 이야기했다. 시즌2를 한다면 웹툰을 먼저 할 것이다.

-웹툰 스토리 작가에 드라마 기획 및 작가, 영화 연출, 드라마 연출 등 다양한 것들을 소화하고 있는데. 어떤 걸 할 때 제일 재밌나. 또 결국은 어떤 걸 선택하게 될 것 같은가.

▶글쎄. 지금은 잘 모르겠다. 웹툰이 제일 재밌긴 하다. 개인이 책임지는 작업이라고 할까. 원래 스토리 작가는 콘티까지 짜는 법인데, 최규석 작가는 자신이 직접 콘티를 짜고 연출한다. 난 스토리를 시나리오처럼 써서 최 작가에게 넘긴다. 그런데 그걸 갖고 최규석 작가가 콘티를 짜고 만화 연출을 하면서 만들어내는 충만한 에너지가 있다. 그렇게 작업하는 쾌감이 크다.

드라마 작가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연출이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게 또 재밌다. 내 생각과는 또 다른 재미와 완성도가 만들어지는 걸 보는 쾌감이 있다. 영화 연출은, '반도'의 솔루션처럼 강하게 밀어붙여서 완성시키는 동력이 필요한 경우들이 있다. 그렇기에 뭘 어떻게 할지는 나중 일이라 모르겠다.

다만 여러가지 벌려놓은 것들을 잘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거면 이거, 저거면 저거, 이런 식으로 한쪽으로만 쏠릴 수 있을 것 같다.

-'반도'가 개봉한 뒤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리는데.

▶감사하게 생각한다. 작품을 선보일 때마다 격렬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분들이 많은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반도' 이후로 펼쳐지는 세계는 여전히 반도만 좀비가 창궐한 세계인가, 아니면 해외로 좀비가 퍼지게 되는 세계인가. 제주도에도 좀비가 있나.

▶세계 확산은 없을 것 같다. 왜냐면 고립된 공간에서만 펼쳐질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한테는 폐쇄된 공간에 삐라가 뿌려지는 이미지가 있다. 이제 곧 구조된다는 삐라가 날리는 이미지. 제주도도 좀비가 창궐했다는 세계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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