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원(가운데) 타석에 들어서면서 무언가 말을 하고 있다. |
2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LG전에서는 초유의 장면이 나왔다. 두산이 2-0으로 앞선 5회초 2사 1,2루 기회. 이유찬 타석 때 두산 벤치가 대타 작전을 썼다. 오재원의 투입이었다. 하지만 오재원은 좀처럼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분 그리고 2분…. 이닝 교대 시간보다 긴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갔다.
이때 마운드 위에서는 이미 105개의 공을 던진 '19세 신인' 이민호가 땡볕 아래서 계속 연습 투구를 하고 있었다. 얼마 후 경기 중단 약 3분 만에 오재원이 더그아웃을 지나 대기 타석 근처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다급한 모양새는 아니었다. 오재원은 평정심을 잃지 않은 채 차분한 모습으로 평소와 똑같이 타석에 들어섰다. 순간, LG 더그아웃에서는 야유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두산이 대타 작전을 쓴 이후 경기가 잠시 중단됐다. 경기장 내 모든 구성원들이 오재원을 기다렸다. 이유가 있었다. 급한 생리 현상으로 인해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던 것이다. 당연히 두산 코칭스태프가 오재원이 자리에 있는지 확실하게 확인을 한 뒤 대타 사인을 냈다면 가장 좋았을 터다. 하지만 하필 그때 오재원은 그 자리에 없었다.
두산 관계자도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분주해졌다. 두산 관계자는 "오재원이 화장실에 있어 타석에 들어설 준비가 안 돼 있던 상황이었다"면서 "경기 후 오재원이 LG 주장(김현수)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할 예정"이라고 '늑장 출장' 이유를 해명했다.
타석에 늦게 들어선 오재원을 바라보고 있는 LG 선수단. /사진=뉴스1 |
평소에도 야구 센스가 넘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오재원이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 오재원이 타석에 들어서는 그 순간, 가볍게 모자를 벗는 등의 사과하는 센스를 발휘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그 이전에 사령탑이 상황 설명을 충분히 하면서 양해를 구했다면 다들 이해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무런 상황 설명 없이 두산은 물론, 상대 팀인 LG 감독과 코치, 선수단, 투수 이민호와 야수들, 프런트, 중계진, 그리고 양 팀 팬들과 시청자들 모두를 마냥 기다리게 만들고야 말았다.
이 과정에서 LG 더그아웃으로부터 외국어로 큰 소리가 나왔고, 오재원이 LG 더그아웃을 쳐다봤다. 전일수 주심은 오재원에게 주의를 줬다.
물론 양 팀의 생각이 달랐을 수 있다. 두산과 오재원의 입장에서는 전쟁과 같은 승부가 펼쳐지고 있는 순간이기에, 경기가 다 끝난 뒤 '설명'만 해도 충분했을 거라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가뜩이나 두산전 연패로 신경이 매우 예민해진 상황에서 LG는 '설명'이 아닌 최소한의 진정성 담긴 '사과'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경기 후 더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기에 앞서 오재원은 LG 더그아웃 쪽을 쳐다본 뒤 모자를 벗으며 무언가 말을 건넸다. 그러자 LG 측은 오재원을 향해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후 모자를 벗은 채 LG 더그아웃을 쳐다보고 있는 LG 선수단. /사진=뉴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