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 '말썽꾼 재생 전문' 뉴잉글랜드 실험대에 오르다 [댄 김의 NFL 산책]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9.09.1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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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오클랜드 소속으로 NFL 프리시즌 경기를 준비 중인 안토니오 브라운. /AFPBBNews=뉴스1
미국프로풋볼(NFL)의 100번째 시즌이 드디어 막을 올렸다.

그런데 지난 주말 역사적인 센테니얼 시즌 개막을 눈앞에 두고 미국의 대부분 스포츠 미디어들의 포커스는 오클랜드 레이더스에서 펼쳐진 슈퍼스타 와이드리시버 안토니오 브라운(31)의 와일드한 ‘드라마’에 집중됐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만들어내며 시즌 개막 직전 큰 변화를 불러왔다.


지난 3월 피츠버그 스틸러스에서 오클랜드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됐던 브라운은 내년에 라스베이거스로 본거지를 옮기는 레이더스가 오클랜드에서 보낼 마지막 시즌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어줄 희망으로 기대를 모았다. NFL 첫 9년 커리어를 모두 피츠버그에서 보낸 브라운은 그 중 4년(2014~2017년)을 NFL 올프로팀 1진으로 뽑힌 최고의 리시버다. 그가 NFL에 진출한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9년간 그보다 더 많은 패스를 잡은 선수나, 더 많은 리시빙 야드를 기록한 선수는 없다.

그런 그가 피츠버그를 떠난 것은 피츠버그의 프랜차이즈 쿼터백 벤 로슬리스버거와의 관계가 회복 불능의 지경으로 틀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초 피츠버그에 트레이드를 요구했고 결국 지난 3월 오클랜드로 이적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사연이 있었다. 슈퍼보울 챔피언 뉴잉글랜드가 은퇴한 올프로 타이트엔드 롭 그롱카우스키의 공백을 메우고 만 42세 쿼터백 톰 브래디에게 또 다른 힘이 될 수 있는 선수로 브라운을 점찍고 적극적으로 영입에 나섰던 것이다. 뉴잉글랜드는 피츠버그에 브라운의 대가로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까지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운 역시 슈퍼보울 우승이 가능한 팀으로 가길 원했다.


하지만 피츠버그로선 리그 최고의 ‘무기’를 AFC 라이벌이자 항상 슈퍼보울 진출권을 다퉈온 뉴잉글랜드에 넘겨줄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피츠버그는 뉴잉글랜드가 제시한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오퍼를 거부하고 3라운드와 5라운드 지명권을 제시한 오클랜드로 그를 보냈다. 어차피 내보내야 한다면 최소한 뉴잉글랜드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지난 시즌 4승(12패)에 그쳤던 오클랜드에 보내면 그나마 부메랑 위협이 될 가능성을 덜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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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시절의 안토니오 브라운. /AFPBBNews=뉴스1
그런데 피츠버그 입장에선 황당하게도 브라운은 결국 시즌 개막 직전 뉴잉글랜드 유니폼을 입고 말았다. 특이한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NFL에서조차 보기 힘든 황당한 행동의 연속으로 올 여름을 화려하게(?) 장식한 브라운은 결국 오클랜드에서 단 1초도 뛰지 않은 채 방출됐다. 일각에서 그가 방출당한 것이 아니라 팀이 방출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이번 여름 내내 계속 말썽을 일으키며 팀과 충돌한 그는 결국 오클랜드가 팀에 해를 끼치는 행동에 대한 징계 차원으로 3000만 달러에 육박하는 계약금의 개런티 조항을 취소하자 팀에 자신을 즉각 방출해달라고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소셜미디어 컨설턴트들을 접촉해 어떻게 하면 가능한 빨리 오클랜드가 자신을 방출하도록 만들 수 있을지까지 상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클랜드는 도저히 브라운을 품고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지자 그의 트레이드를 시도했으나 그 어느 팀도 엄청난 골칫거리가 될지 모를 브라운을 위해 선수나 드래프트 지명권을 내줄 생각이 없었다. 결국 오클랜드는 시즌 개막 이틀 전 그를 그냥 방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집에서 자신이 방출됐다는 뉴스를 셀폰으로 접한 브라운이 마당으로 뛰어나가 “자유의 몸이 됐다”면서 뛰어다니고 좋아하는 모습의 유튜브 비디오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그날 당장 프리에이전트의 몸으로 뉴잉글랜드와 1년간 계약금 900만 달러, 최고 연봉 1500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 그가 뉴잉글랜드로 가는 것을 원치 않아 1라운드 지명권마저 거절했던 피츠버그 입장에선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 된 것이다. 반면 뉴잉글랜드 입장에서 1라운드 지명권을 내주면서까지 원했던 선수를 거저 얻은 격이니 어떻게 보면 횡재를 했다고 할 수 있게 됐다.

사실 브라운처럼 최고의 재능과 실력을 지녔지만 성격적으로나 약물 등 기타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골칫거리가 돼 방출된 선수가 뉴잉글랜드의 유니폼을 입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로 와이드리시버 랜디 모스가 있으며 러닝백 코리 딜런과 세이프티 로드니 해리슨 등도 뉴잉글랜드의 ‘망가진 스타 리사이클링 프로그램’을 거쳐 시들어 가던 커리어를 오히려 더 크게 꽃피운 선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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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잉글랜드의 빌 벨리칙 감독. /AFPBBNews=뉴스1
다른 팀들과 달리 뉴잉글랜드에는 빌 벨리칙 감독이라는 절대적 권위를 인정받는 명장과 브래디라는 초특급 카리스마의 쿼터백이 있기에 다른 팀에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선수가 이 곳에 와서 순한 양으로 변신했던 케이스가 여럿 있었다. 이런 선수들을 다루는 데 뉴잉글랜드만큼 최적화된 팀도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어쨌든 브라운의 합류로 뉴잉글랜드는 어쩌면 NFL 역사에서 최고의 와이드리시버 라인업을 구축한 팀이 됐다는 평가다. 브라운과 줄리언 에들만, 그리고 또 다른 말썽꾼 스타 재활용 프로젝트 대상인 조시 고든으로 이어지는 리시버 라인업이 제대로 가동돼 역대 최고의 쿼터백 중 한 명인 브래디와 호흡을 맞춘다면 다른 팀들로선 불공평하다는 불평이 절로 터져 나올 만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전망이다.

만약 브라운이 정말로 뉴잉글랜드에서 순한 양으로 변신해 벨리칙 감독과 브래디와 호흡을 맞추고 또 다른 말썽꾼 리시버 고든이 역시 커리어 재활에 성공한다면 올해 뉴잉글랜드의 오펜스는 지난해 슈퍼보울 챔피언팀보다 더 강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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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잉글랜드의 톰 브래디. /AFPBBNews=뉴스1
뉴잉글랜드는 9일 벌어진 시즌 개막전에서 브라운의 옛 팀 피츠버그를 33-3으로 완파하고 가볍게 서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이날 브라운은 계약을 너무 늦게 한 탓에 경기에 나설 수 없었으나 뉴잉글랜드는 굳이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브래디는 이미 충분히 최고인 리시버진을 골고루 활용하며 341야드 패싱으로 3개의 터치다운을 뽑아내 만만치 않은 상대 피츠버그를 가볍게 요리해냈다.

시즌은 이제 겨우 첫 걸음을 뗐지만 뉴잉글랜드 팬들은 이미 이번 시즌을 포함해 6년간 5번째 슈퍼보울에 진출해 4번째 우승을 이루는 꿈을 부풀리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망가진 스타를 재생시켜 새롭게 활용하는 ‘리사이클링 프로젝트’가 뉴잉글랜드 다이너스티를 지탱하는 또 다른 힘의 원천으로 짭짤하게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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