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규어 네크로맨서! '곰나으리' 안경섭 작가를 만나다

이덕규 객원기자 / 입력 : 2019.02.0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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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규어 네크로맨서, 피규어 살리는 장인, 피규어계의 밥 로스!

여기까지만 언급해도 아시는 분이 꽤 있을 겁니다. 국내 피규어 수집가들의 헬프요청을 쿨하게 받아주는 닥터, '곰나으리' 안경섭 작가를 칭하는 말입니다.


과거 피규어는 프라모델과 함께 소유자의 '덕력'을 보여주는 트로피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영화관에서도 피규어 사은품을 줄 정도로 대중적인 '취미 상품'이 되었죠. '원피스', '포켓몬스터' 등 애니메이션과 마블 히어로물 같은 인기 장르는 물론이고 신규 캐릭터를 론칭할 때도 피규어를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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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중인 '곰나으리' 안경섭 작가
애석하게도 피규어는 관리하기 아주 쉬운 제품은 아닙니다. 떨어뜨리면 부러지기 쉽고, 잘못 관리하면 변색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리나 팔, 무기 같은 부분이 휘기도 하죠. 이럴 때 직접 수리하면 좋겠지만, 디테일이 중요하다 보니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문 수리 센터도 마땅치 않습니다. 프리미엄 달린 고가의 피규어일 경우에는 더더욱 아무 데나 맡길 수 없죠.

이럴 때 '도움!'을 외칠 수 있는 곳이 곰콩방입니다. 망가진 피규어들이 안경섭 작가의 손길을 만나 더 멋진 피규어로 재탄생하는 곳이죠. PNN도 안경섭 작가의 힘을 빌려 피규어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경험이 있습니다. 대체 어느 정도의 '금손'이기에 까다로운 마니아들이 곰콩방을 연달아 찾는 걸까요? 이렇게 된 이상 직접 방문해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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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규어 관련 일을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처음에는 개인적인 취미에 가까웠어요. 취미 작업을 하기 시작한 건 2011년 말부터고요. 본격적으로 피규어 수리를 시작한 좀 지나서에요. 2016년 봄부터니까요. 지인 중 한 분이 집들이를 갔는데, 그 집에 있던 피규어를 잘못 건드렸는지 떨어져서 팔이 부러졌대요. 이걸 되게 고민하면서 질문하길래 답변을 주다가, 그냥 달라고 했어요.

고치고 나서 그 과정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많은 분들이 보셨더라고요. 그 계기로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처음에는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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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툼레이더' 라라 피규어의 비포 애프터
-이제는 피규어 장인으로 칭송받고 계시잖아요.


그러게요(머쓱). 솔직히 제 생각에는 도색 하시는 다른 분들도 제가 하는 작업은 다 가능하실 거예요. 하지만 도색을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은 보통 자기 작품을 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거든요. 솔직히 제가 작업하고 이런 과정을 안 올리면 문의도 줄어들 것 같은데... 재미있잖아요. 보고 좋아해 주시면 저도 기분 좋고요.

-원래도 조형 관련된 일을 하셨어요?

전공은 애니메이션이에요. 회사에 다닐 때는 스톱모션 쪽 일을 했었어요. 미술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는데 사실 조형에는 별로 자신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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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톱모션 기법의 대표작 '월레스와 그로밋'
-피규어도 조형으로 만드는 거잖아요. 상당히 의외네요.


조형을 하려면 공간지각능력이 필요한데 그게 좀 없는 것 같아요. 석고로 손을 깎으라고 하면 머리가 하얗게 되는 느낌 들거든요. 피규어 수리 같은 경우는 훨씬 쉬워요. 복구할 부분이 확실하게 보이니까요.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고 그걸 따라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죠. 참 쉽죠?

-도색 작업도 하시는 걸로 아는데, '반지의 제왕' 액자 피규어 리페인팅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네, 그 작업은 리페인팅 때문에 맡은 건 아니었고 피규어 수리가 우선이었는데요. 도색을 좀 하면 훨씬 좋겠더라고요. 약간 색감이 칙칙해서 잘 안 사는 느낌이라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 피규어도 그래서 도색작업을 하게 됐어요.

-어떤 색을 어떻게 칠할지가 참 어려울 것 같아요.

도색뿐만 아니라 피규어 수리가 색감이 참 중요한 작업이에요. 예를 들면 하얀 종이냐 검은 종이냐에 따라서 같은 노란색으로 선을 그어도 색감이 다르니까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같은 경우에는 원래 색이 그래요. 왜 수채화 하다 보면 파렛트에 초록색이랑 빨간색이 섞인 이상한 색이 나올 때가 있잖아요. 마침 또 다른 분이 리페인트 하신 것도 봤고,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던 거죠.

-피규어 수리에 도색까지 정말 일이 많으실 것 같은데 평균 작업량은 얼마나 되는 건가요?

모든 과정이 수작업이다 보니까 쳐낼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어요. 갯수보다는 작업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거죠. 그래서 일주일, 한 달에 몇 개를 한다고는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어떤 경우에는 산산조각 나 있기도 하고, 한 파츠만 부러져 있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편차도 심하니까요.

그리고 제가 멀티플레이가 안 돼요, 하하. 하나가 끝나야 다른 걸 잡을 수 있는 타입이에요. 그래서 도색 작업은 잘 맡기가 어려운 게, 리페인팅을 하게 되면 오래 붙잡고 있어야 하거든요. 색깔 하나 넣어보고 어울리는지 다시 보고 이런 식으로 계속 확인을 해야 되니까요. 그렇다고 파손 수리작업이 빨리 끝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수작업이라는 게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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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나으리님의 작업테이블
-피규어들은 대부분 왜 부서지나요? 조카들의 습격이 많은가요?


의외로 그렇지는 않아요. 제일 많은 건 몇 달을 기다려서 받은 예약 피규어가 이미 파손된 상태로 배송된 경우에요. 아시다시피 예약해서 받은 피규어는 교환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또 물 건너 온 제품인 경우에는 다시 A/S를 신청해서 재배송 받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요. 그런 분들이 박스째로 들고 오시는 경우가 많아요.

-개봉도 안 한 상태에서 부서져 있다니 가슴이 찢어지겠네요...

그렇죠. 박스를 열어보자마자 깨진 걸 보는 심정이 말이 아니겠죠. 몇 달 기다려 받았으면 더더욱 그렇고요. 그런 분들은 이게 배송 상태에서 문제가 있었던 건지 원래 제품이 문제였는지 확인하기도 어렵고요.

또 다른 제품처럼 맞교환이 쉬운 것도 아니다 보니 이걸 수리가 가능한지 알아보다가 혼자 고쳐보려고 이것저것 해보기도 하고. 그러다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혼자 고쳐보려고 하시던 경우에는 좀 일이 커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순간접착제가 흘러내려서 멀쩡했던 부분에까지 다 붙어버린다던지 이런 건데요. 접착제 제거제를 바르면 도색도 벗겨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그 부분은 도색을 다시 해야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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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기억나는 작업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뭐 재미있는 얘긴 아닌데, 꽤 사이즈가 큰 히어로 피규어가 기억에 남아요. 요즘은 망토 같은 부위가 무거우면 다루기가 어렵다 보니까 와이어를 박아서 천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예전에는 폴리스톤으로 만들어서 무게가 상당했거든요. 바닥에 꽂아 놓으면 고정이 안 되고 넘어간다고 하시기에 일단 가져오시라고 했어요.

그런데 일단 받아 보니까 시소처럼 움직이고 고정이 안 되더라고요. 조형사가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이게 아예 심을 박아서 고정해 버리면 될 텐데, 이사를 가거나 이동을 하게 되면 분리가 되어야 해서 수리를 맡기셨던 거죠.

그래서 자석을 박아야겠다 생각하고 작업을 했는데 자석으로도 고정이 안 되는 거예요. 이미 손을 대버린 상황이라 더 문제가 컸죠. 어떻게든 수습을 하긴 했는데 와, 그건 참 힘든 작업이었어요.

-아무래도 큰 종류나 고가 피규어가 많을 것 같아요.

종류는 다양한 편이에요. 그때그때 다른 것 같아요. 또 기본 수리비가 있다 보니 아주 저가 피규어들은 잘 성사가 안 되는 경우가 많고요. 히어로 피규어들도 많고 핫토이도 간간히 들어오고요. 디자이너가 만든 스테츄 종류도 꽤 있어요. 데스윙 날개도 여러번 수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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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이 없을 리 없었다
-작업하시면서 가장 힘든 점은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일단 일이 너무 많고요, 하하. 하루에 문의가 3~4건 정도는 꾸준히 들어오는데, 순서가 있다 보니까 하나씩 쳐내야 하는 것도 있고요. 그런데 또 멀티플레이는 적성에 안맞다 보니까 계속 일이 쌓여 있는 느낌이죠.

그리고 사실 작업 자체보다는 사람 상대하는 게 더 힘든 것 같아요. 제가 공방에 없는 시간에 말없이 찾아오시는 경우도 있었고요. 상태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사진을 보내주시거나 뭐 별 일이 다 있었죠. 솔직히 전 영업은 진짜 안 맞을 거 같아요. 그냥 전 작업자죠.

-개인적으로 따로 모으는 피규어는 없으세요?

개인적으로 콜렉팅을 하거나 하진 않아요. 예전에 좀 샀던 건 2000년대 초반에 엔화가 떨어지면서 가샤퐁(캡슐에 들어 있는 작은 피규어의 한 종류)이 싸게 나오는 게 많아서 그걸 모았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걸 모은다기보다는 사진을 찍고 올려서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이런 게 재미있었던 거라서 피규어를 정성들여서 관리하고 이러진 않았어요.

그러다가 약간 사이즈가 있는 미소녀 피규어를 한번 산 적이 있어요. 세이버였던 것 같은데, 가샤퐁은 아무래도 사이즈가 좀 작잖아요. 사서 사진을 찍으면서 느낀 게 디테일이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그래도 관리는 제대로 안 해요. 사진 잘 찍었다는 얘기 듣는 게 저는 더 좋더라고요.

-그래도 작업실에 프라탑(아직 만들지 않은 프라모델 박스를 쌓아둔 탑)은 있네요?

있긴 있는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렇게 일관적이지는 않고요. 스톱모션을 했다 보니까 '월레스와 그로밋'이 하나 있고.. 복각판도 있고요. 도색할 생각으로 산 것도 좀 있네요. 독특한 게 나오면 사 두기는 하는데, 제 것 할 시간은 정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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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좀 많이 아쉬우시겠어요. 작업실부터 도구에 능력까지 다 갖추셨는데요.


일이 참 많아요. 말씀하셨다시피 피규어 수리를 맡길 곳이 거의 없다 보니까 더 그런 것도 있는 거 같고요. 개인적인 의뢰가 아니라 업체에서도 들어와요. 예를 들면 해외에서 수입해서 판매하시는 업체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는 제품이 입고됐을 때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기다리는 시간이나 비용보다는 수리하는 게 훨씬 나은 거죠. 그런 경우 업체에서도 들어오기도 해요.

-확실히 작업량이 엄청 많겠네요.

그렇죠. 한 2년 정도 혼자 쳐내다 보니까 몸도 안 좋아지고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사실 이게 저 혼자 하는 걸로는 한계가 있다 보니까, 정말 휴일이고 주말이고 하나도 없이 일을 해도 그만큼 수익이 나오는 건 아니거든요. 또 모든 공정이 수작업이다 보니 대충 할 수 있는 부분도 하나도 없고요.

그렇다고 제가 안 받을 수는 없더라고요. 잠깐 의뢰를 안 받고 쉰 적도 있는데, 업체에서 부탁하시는 건 거절할 수가 없어서 받았는데 이 업체 쪽 인맥으로 다시 의뢰가 들어오고... 이게 반복되다 보니까 결국 일은 똑같이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2년쯤 됐을 때 같이 해줄 수 있는 친구 둘이랑 같이 하게 됐어요. 제가 조형 쪽에 약하다 보니 3D프린터를 다룰 줄 아는 친구가 큰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고요.

-블로그를 쭉 보다 보니까 수강생도 받고 계시더라고요.

따로 홍보를 한 적은 없고 글 하나 올린 건데, 보고 몇 분이 오셨어요. 지금도 세 분 정도 계시고요. 그런데 이게 가르쳐 주는 것도 제 일이 너무 많다보니까 제대로 돌아가기가 힘들더라고요. 알려줄 수 있는 시간도 별로 없고요.

-수작업이라는 게 경험으로 부딪쳐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럴 것도 같아요.

그렇죠.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에요. 단순히 팔이 부러진 피규어 하나를 수리하는 거라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스킬이 필요해요. 이건 기초적인 작업부터 심층적인 단계까지 쭉 경험을 통해 밟고 올라가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제가 포인트와 팁은 알려주는 게 가능하지만 이 피규어 관련 작업 자체를 잘 모르면 어렵죠.

이 분야에 인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나 상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꿈만 갖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배우러 오셔도 포부나 목표는 엄청 큰데 실력은 그만하지 못한 경우도 많고요. 솔직히 이 일을 제대로 배우려면... 일은 어느 정도 할 줄 알면서 백수여야 돼요. 힘들다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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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곰나으리님 건강문제를 위해서라도 인력풀이 확장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그러길 바라요. 이런 일 하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일거리가 좀 줄었으면 좋겠다고. 그래도 예전보다는 피규어 수리하시는 분들이 종종 보이기는 해요. 잘 하시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이나 곰콩방의 향후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어... 지금은 눈 앞의 일을 쳐내느라 정신이 없네요. 사실 향후 계획을 그릴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하, 그냥 여유가 좀 생겨서 제 작업을 하고 싶다 정도?

일단 그보다는 이런 작업과 작업자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국내에서는 피규어 작업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수작업, 수공예에 대한 인식이 아직 낮아요. 이런 인식이 하루빨리 개선이 되어야 하시는 분들도 늘어나고 퀄리티도 더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안경섭 작가는 인터뷰 당일에도 고가의 피규어에 사포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서너시간 남짓 동안에도 직접 찾아온 손님도 있었고, 문자 문의도 상당수 들어오는 듯했습니다.

피규어를 모으는 입장에서 '곰나으리' 안경섭 작가같은 사람이, 그리고 곰콩방이 존재한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일이 너무 많다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이야기했다는 점이 기억에 남네요. 부디 앞으로는 창작자로서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건강도 챙길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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