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정범식 감독이 밝힌 '곤지암'의 진짜와 거짓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03.2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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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식 감독/사진=홍봉진 기자


정범식 감독이 2007년 '기담'을 선보이고 11년이 흘렀다. '기담'은 이제는 한국 공포영화 레전드로 추앙받지만 당시 흥행성적은 초라했다. '기담'을 사랑하는 관객들이 영화가 그냥 사라지는 게 너무 아쉽다며 대관을 하기까지 했지만, 시장은 외면했다. 새로운 건, 한켠에선 환영받지만 주류에선 외면받기 마련이다. 뒤늦게 조명받기 마련이다.

정범식 감독은 뒤늦은 환호를 뒤로 하고 강산이 한 번 바뀔 동안 계속 공포영화를 붙잡았다. 다른 장르 영화들도 찍긴 했지만, 공포영화를 찍을 때 가장 빛났다. 그간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던 한국공포영화들은, 싼값에 마구 찍어 엉망인 완성도 탓에 점차 외면받기 시작했다. 매년 첫 번째 개봉하는 한국공포영화는 흥행한다는 속설도 이제 옛말이다.


2018년. 정범식 감독이 새로운 공포영화 '곤지암'으로 돌아왔다. 숱한 도시 전설을 낳고 있는 곤지암 정신병원에 공포 체험을 하러 간 7명이 겪는 일을 그린 영화다. '블레어 위치' 같은 페이크 다큐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체험공포를 표방했다. 새롭다. 이 새로움이 '기담' 같이 받아들여질지, 아니면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지, 여러모로 관심이 쏠린다. 정범식 감독에게 '곤지암'에 대해 조목조목 물었다. 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왜 '곤지암'을 하게 됐나.

▶원래 케이퍼무비를 준비하고 있었다. 재벌과 정계 이야기였다. 캐스팅 과정에서 좀 난항이 있긴 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최순실 사건이 터졌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세더라. 그리하여 흐지부지됐다. 그런 와중에 '곤지암' 제작자로부터 곤지암 정신병원에서 겪는 체험 공포영화를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원래 공포영화를 하려는 마음은 늘 있었다. 그래도 페이크 다큐 영화들이 많이 나왔는데 뭐가 다를까 싶었다. 나와 작업을 같이 해온 박상민 조감독이 이 기획이 재밌을 것 같다고 해서 같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됐다.


-'곤지암'에는 5.16 즈음에 곤지암 정신병원이 개설됐고 10.26 때 문을 닫게 됐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닮은 정신병원 원장이 사진으로 등장하고 1979년 환자 42명의 집단 자살과 병원장이 실종됐다는 풍문도 소개되고. 곤지암 정신병원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들이 소개되는데. 다 설정인가.

▶건물이라는 공간 빼고는 다 설정이다. CNN에서 선정한 7대 무서운 장소라는 것 빼고는 모두 설정이다. 곤지암 정신병원과 관련해 인터넷에 떠도는 카도라가 많은데 참고를 하긴 했다. 하지만 병원 자체가 96년에 폐업했다.

-현대사를 영화 속 설정으로 넣은 이유는?

▶현대사를 영화 속에 녹여내는 걸 원래 좋아한다. '기담' 때도 진구 일본 이름이 한자로 나오는 데 그걸 읽으면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 이름)가 됐다. 한자는 달라도 발음이 같도록 했다. 벽에 걸려있는 일력도 10.26 이었고. 그렇게 이스터에그를 숨겨놓는 걸 좋아한다. 문제제기보다 그 시대가 있었고, 그 시대를 지배하는 기운이 있었다. 그 기운을 영화적인 상상으로 옮기면 공포영화로 읽기에 적합할 것이라 생각했다. 거창하거나 논란을 의도한 게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내 방식이기도 하다. 또 숫자를 매칭해서 숨은 코드를 읽어내는 게 무척 흥미롭다.

-예컨대 '곤지암'에는 402호라는 안 열리는 방이 있다는 설정이 있다. 402란 숫자도 그런 설정이었나.

▶인터넷에 떠도는 카더라통신에 곤지암 정신병원에는 안 열리는 방이 하나 있다는 게 있긴 했다. 거기서 착안을 했다. 숫자는 원래 416(세월호 사건을 뜻하는 4.16)이라고 할까 하다가 노골적인 것 같아서 402로 갔다. 탄핵 당시 숫자에 상징을 붙이는 네티즌들을 보면서 어떤 집단이 숫자에 주술적인 의미를 담는 걸 보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한국공포영화는 기본적으로 한을 품고 있는 귀신이 있고, 그 한을 풀어준다는 내러티브를 갖고 있다. '곤지암'은 그런 기존 한국공포영화 내러티브가 전혀 없다. 또 마치 유튜브 영상을 보는 듯한 시도를 했다. 이런 방식은 신선하지만 낯설 수도 있는데. 그렇기에 공포에 대한 반응이 크게 엇갈리고. 기존 한국공포영화 문법에 익숙한 사람들은 안 무서울 수 있고, 반면 유튜브 세대에겐 정말 무서울 수도 있고.

▶공포영화의 첫 덕목은 무서워야한다는 것이다. 한국공포영화 내러티브를 많이 식상하다고 한다. 같은 방식으로 찍고 같은 영화를 보는 게 지겹다고도 한다. 그렇기에 상업영화 자장에서 계속 변화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우리 아이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이들은 코드가 다르다. 아프리카TV나 유튜브로 그냥 먹방을 본다. 남이 그냥 먹기만 하는 걸 보면서 재밌다고 하더라. 그래서 살펴봤다. 기승전결이 없는데 어떻게 보면 있는 것 같고. 그 안에 웃음 코드가 있더라.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 고전 방식이 퇴색되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변화는 받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곤지암'은 하나의 상황극이 중요하고, 관객이 영화에 자신을 투사시키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카메라를 직접 들고 착용하고 찍게 했다. 이런 방식에 반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제작사와 투자사가 재밌겠다며 동의해줬다.

-그래서인지, 영화 문법이 유튜브 세대에 맞춰져 있는 느낌인데.

▶젊은 세대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다른 것 같다. 다만 서스펜스를 조율하고 서술하는 방식은 기존 영화 문법과 같다. 컷의 지속시간이랄지. 결국 젊은 관객이나 나이 먹은 관객이나 심박수는 동일하다. 그 심박수를 어떻게 변화를 줄지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공포영화 장르는 편집으로 많은 효과를 준다. '곤지암'이 새로운 건, 여느 편집보다 아무것도 등장하지 않는 검은 화면을 퍼즈로 길게 여러번 사용했다는 점이다. 검은 화면을 5~9초간 지속하다가 소리나 플래시로 방점을 찍는 방식을 여러 번 사용했는데. 위험한 방법이기도 한데.

▶블라인드 시사를 3차례 했다. 처음에는 5초가 퍼즈를 넣었는데 관객이 버티더라. 그래서 2초를 더해보자고 했고, 역시 관객이 버텨서 9~11초까지 사용했다. 같이 숨죽이게 하면서 다음을 상상하도록 하는 데 퍼즈가 유용했다. 관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더라. 예컨대 영화 속에서 "탁구공 소리가 들린다"는 장면이 있다. 그 대사 바로 뒤에는 오히려 소리가 안들린다. 그렇게 관객이 같이 집중하고 기다리게 하고, 그 뒤에 소리가 들리도록 했다. 편집기사님이 처음에는 말리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관객의 버팀이 긴장감을 조이는 방식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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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배우 몸에 착용시키고, 직접 들고 찍게 했다. 그리하여 배우의 시선샷과 배우 얼굴샷 등이 주요 장면들을 구성한다. 직접 체험하는 방식이긴 하나 매우 위험한 방식이기도 한데. 원하는 장면이 안 찍힐 수도 있고, 배우가 연기와 촬영을 동시에 해야 하니 어렵기도 하고.

▶처음에는 콘티를 다 짰다. 그러다가 스태프들과 식사를 하러 가다가 이런 방식의 영화를 찍는데 콘티를 짜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재미도 없을 것 같고. 촬영감독님은 처음에는 일부 장면을 그렇게 찍자고 하는 줄 알더라. 그러다가 내 이야기를 듣고 감당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일단 배우들이 총 18개의 카메라를 사용하는 셈이고, 동선만 짜주면 소스가 많이 있으니 유용하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 콘셉트가 체험이다보니 편집점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이런 방식이 묘하고 기괴한 리얼리티를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 촬영감독의 역할은.

▶철저하게 동선을 체크해줬다. 배우들이 어디서 어떻게 촬영을 해야 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나와 같이 모니터를 하면서 체크했다. 그리고 와이드샷을 계산했다. 배우들의 카메라 시점에 관객이 피곤을 느끼기 전에 와이드샷으로 바꿨다. '곤지암'은 철저히 관객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까에 주안점을 두고 찍었다.

-'곤지암'에는 귀신이 바라보는 소위 귀신샷이 없는데.

▶귀신 시점이 이 영화는 불필요했다. 관객이 공간을 보면서 리액션을 하고, 캐릭터들이 바라보는 시점에서 오는 반응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드론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조망하는 게 목적이었다. 갇힌 곳에서만 주는 폐쇄적인 게 있어서 조망을 하는 느낌을 주려 했다.

-여느 공포영화는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인과 관계가 있고, 그 인과 관계로 사건이 발생한다. 예컨대 커플은 죽고, 앙금 있던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고 등등. '곤지암'은 그렇지 않은데.

▶일단 배우들의 오디션을 볼 때 나를 포함해 제작사, 투자사, 스태프들 모두 한 표씩 행사했다. 나한테는 배우들이 비슷비슷할 경우 조합을 생각해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하나 더 줬고. 그렇게 해서 외모부터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조합을 꾸렸다. 일단 얼굴이 익숙한 배우들은 관객이 시작부터 이 배우들이 무엇을 맡을지 알기 마련이다. '곤지암'은 그걸 배제하고, 외모부터 차이를 느끼게 하고, 대사로 각각 캐릭터를 드러내려 했다. 곤지암 정신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각각의 캐릭터를 드러나게 한 다음, 공간이 액션을 하고 인간은 리액션을 하도록 했다. 그렇기에 관계에서 일어나는 공포보다는 공간이 주는 공포를 주려 했다.

-여느 공포영화라면 살아남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곤지암'은 다른데.

▶'곤지암'은 공간이 상징하는 여러가지 공포를 주려 했다. 대항할 수 없는 어떤 것들. 원래 한명은 살려볼까 했는데 그랬더니 김이 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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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 정신병원 세트의 각각에 여러 의미를 담았는데. 어떻게 설계했나.

▶집단치료실은 고문이 자행된 듯한 끔찍함을 주려했다. 실험실은 숲속이랑 매칭이 되도록 소품을 준비했고. 목욕실은 '곤지암'을 찍은 부산 옛 해사고에 갔더니 시멘트 욕조가 있는 걸 보고 착안했다. 여기다 검은 물을 채우면 좋을 것 같았다. 샤워실과 세면장은 원래 연결된 곳이 아닌데 연결돼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집단의 끔찍한 에너지 같은 게 느껴졌으면 했다. 나중에 샤워실에서 물이 팡파레처럼 터져나왔으면 했다.

-402호는 세 차례 등장하는데 세 번 다 콘셉트가 다른데.

▶일단 곤지암 정신병원에 열리지 않은 방이 있다는 뜬 소문이 있었다. 거기에서 착안해서 진짜 열리지 않는 방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리얼함을 고집하고 원칙에 사로잡히면 딱딱해질 것이란 생각도 있었다. 과연 그곳에 뭐가 있으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세 번 다 모습이 바뀌면 어떨까란 생각을 하게 됐다.

아무것도 없는 갇힌 방. 물이 찬 방. 버려진 빈 방. 물이 찬 방 같은 경우는 미술팀이 천장에 구멍을 뚫어놨더라. 그래서 그 구멍을 더 크게 해서 목욕탕과 연결된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CG로 채우고. 사실 그래서 바닥에도 물을 채우고 싶었는데 여건이 안돼 고민했다. 내가 고민하는 걸 보더니 제작부장이 물을 채우고 싶냐고 하더라. 그렇다고 했더니 밤을 새서 채우더라. 정말 고마웠다. 마지막 402호는 뭐가 있는 줄 알고 열었는데 그냥 버려진 빈방이면 더 의아하고 더 공포스러울 것 같았다. 그러다가 원장 귀신이 스윽 등장하면 정말 무서울 것이라 생각했다.

-402호에 등장하는 해부 귀신은 남자인가, 여자인가.

▶남자다.

-박지아가 '기담'에 이어 '곤지암'에서도 정범식 감독의 시그니처 귀신으로 등장하는데.

▶'기담' 때는 방언 같은 말을 했는데, 이번에는 말을 빠르게 해서 기괴한 공포를 주려 했다. '기담' 때는 눈이 검지 않았고, 이번에는 검다. 시그니처인 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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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은 곤지암 정신병원 건물주가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기각됐긴 했지만 이런 일들이 창작자에게 자기검열로 영향을 주진 않는지. 특정 직업이나 특정계층을 묘사한다는 점에서도.

▶'기담'으로 데뷔한 지 11년째인데 여전히 되게 어렵다. 공포영화라는 게 미화하는 장르가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더 조심하게 된다. 자기검열을 하게 되고 많이 살피게 되는 건 사실이다.

-'곤지암'에는 물의 이미지가 많은데. 공포영화가 물 이미지를 많이 활용하기도 하지만.

▶사실 내가 물을 무서워한다. 거대한 물이 주는 공포가 있다. 그래서 공포라면 물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곤지암'에는 공포영화에서 사용하기 마련인 음악이 없다. 사이트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 두 번 들리는 것 외에는. 공포영화야 말로 미키마우징(화면과 음악을 붙여서 효과를 내는 기법)에 가장 적합한 장르인데.

▶맞다. 음악을 빼고 공포영화를 만든다는 건 차 떼고 포 떼고 장기 두는 것이랑 마찬가지다. 반대가 많고 걱정도 많았다. 그런데 이런 제약이야말로 사람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기담' 때도 돈이 없어서 얼음이 갈라지는 첫 장면 같은 경우 두 개의 시점으로만 만들었다. '곤지암'에서도 음악은 없지만 그 제약 때문에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곤지암'은 스크린X(삼면을 스크린으로 사용하는 방법)를 적극 활용했다. 스크린X로 찍으면 관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한데. 그것과 별개로 공포영화와 스크린X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스크린X 제안을 받았을 때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공포영화는 폐쇄성이 중요한데 삼면이 주는 압박감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어쩌면 스크린X는 공포영화에 최적화된 기법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 배우들이 스크린X 캠을 들고 찍기도 했다.

-공포영화는 제작비가 적다 보니 신인배우들을 많이 쓴다. 그래서 공포영화가 발굴하는 기대주들이 많고. '곤지암'에는 이승욱 위하준 박지현 오아연 문예원 박성훈 유제윤 등이 출연했는데. 누가 발굴될 것 같은가.

▶각각의 매력이 있다. 관객들이 이 영화 이후로 더 많은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기담'은 나중에 재평가된 공포영화였다. '곤지암'은 어땠으면 하는가.

▶그간 시장에서 통용되는 것과 약간 다르게 만들다보니 엇박자가 나곤 했다. 그런 점에서 '곤지암'은 처음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박자를 맞춰서 만든 영화다. 이번에는 나중에 재평가를 받지 않고, 바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

-엔딩 크레딧에 정우식을 추모하며, 라는 글과 사진이 올라오는데. 자칫 공포영화다보니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셋째 친동생이다. '기담'할 때도 같이 했고 '복수는 나의 것' 등에 배우로 참여했다. '곤지암'도 스태프로 참여했다. 그런데 후반작업을 하던 지난해 10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제작사와 배급사에서 나를 배려해줘서 그렇게 추모할 수 있었다.

-다음 작품은.

▶공포영화를 하게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지, 아직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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