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신해철,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줘

[김수진의 ★공감]

김수진 기자 / 입력 : 2014.11.0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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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2일 비보가 전해졌다. 가수 신해철이 심정지로 인한 심폐소생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이었다. 5일이 채 지나지 않은 2014년 10월 27일 오후 8시 19분, 신해철이 사망했다. 향년 46세. 신해철은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 거짓말처럼.

그날 밤 1년 넘게 소식이 없던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울먹였다. 신해철이 좋아서, 미래를 바꾼 친구였다. 이 친구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사진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던 대학시절, 신해철에 미쳤고, 신해철이 좋아서 연예기획사에 취직했었다. "이렇게 허망하게 갈 줄이야. 너무 마음이 아프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울면서 통탄했다.


거짓말은 사실이었다. 고인의 빈소에는 많은 동료 연예인들의 발길이 모아졌고, 수많은 팬들의 눈물이 모아졌다. 모든 이들은 말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죽음조차 믿을 수 없다고. 고 신해철의 발인은 지난 10월 31일 진행 중 화장장에서 중단됐다. 신해철은 사인규명을 위한 국과수 검사를 실시하기 위함이다. (지금도 사인규명은 진행 중이다.)

5일, 고 신해철의 발인이 진행됐다. 유해는 고인이 생전 음악작업을 했던 작업실이 있는 경기 분당 수내동을 들른 뒤 경기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에 안치됐다.

신해철의 죽음은 우리들의 '비극'이기도 했다. 기자의 한 지인은 "우울증에 빠져 며칠 간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신해철을 참 좋아했는데, 충격이 컸다"고 했다. 왜 좋아했냐는 물음에 모든 것을 차지하고, 신해철의 노래 가사가 충격일 정도로 좋아서였다고 했다. 덧붙여 "시인이자 천재"라고 말했다. 고인과 함께 90년대 대중문화 아이콘인 가수 서태지도 고인의 노래 가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고인의 노래를 듣고 청춘을 보낸 세대라면 다들 공감하는 얘기리라.


2014년, 혹자는 그를 "쾌변독설가"라고, 혹자는 "가요계의 왕비호"라 했다. 허나 감히 말하건대 고 신해철은 노래로 시대를 이끈 혁명가이자. 그 자체로 젊은 청춘들의 위로자였다.

좋아한다고, 당신의 노래는 나의 위로였고, 나의 휴식이었다고 말하지 못한 많은 이들은 지금도 고 신해철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줬으면 좋겠다.

P.S 신해철 씨, 당신이 있어서 내 젊은 시절 방황이 설렜고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아픔 없는 곳에서 행복하세요. 얄리와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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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날아라 병아리 (1994년)

육교위의 네모난 상자속에서

처음 나와 만난 노란 병아리 얄리는

처음처럼 다시 조그만 상자속으로 들어가

우리집 앞뜰에 묻혔다.

나는 어린 내눈에 처음 죽음을 보았던

1974년의 봄을 아직 기억한다.

내가 아주 작을 때

나보다 더 작던 내 친구

내두손 위에서 노래를 부르면

작은 방을 가득 채웠지

품에 안으면 따뜻한 그 느낌

작은 심장이 두근두근 느껴졌었어

우리 함께 한 날은

그리 길게가지 못했지

어느날 얄리는 많이 아파

힘없이 누워만 있었지

슬픈 눈으로 날개짓 하더니

새벽무렵엔 차디차게 식어있었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눈물이 마를 무렵

희미하게 알수 있었지

나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 말을 알수는 없었지만

어린 나에게 죽음을 가르쳐 주었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 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 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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