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태 "감독,배우의 꿈 모두 포기하지 않을 것"

부산=전형화 기자 / 입력 : 2012.10.0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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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유지태는 달랐다.

그는 영화의 공을 배우에게 돌리고, 결실을 스태프와 나누고자 했다. 유지태가 첫 장편연출작 '마이 라띠마'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마이 라띠마'가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젼 부문에 초청된 탓이다.


유지태는 1998년 영화 '바이 준'으로 데뷔한 이래 '동감', '봄날은 간다', '올드보이' 등 각종 영화에서 활약해왔다. 2003년 단편 '자전거소년'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뒤에는 2005년 제작사 ㈜유무비를 설립하고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나도 모르게', '초대' 등 총 4편의 중 단편 영화연출 및 2편의 연극을 제작했다.

유지태는 눈높이는 그의 키만큼이나 높다. 그는 영화로 낮은 곳을 바라보지만 결과는 높은 곳을 지향한다. 그렇기에 자신을 끝까지 몰아붙였고, 그래서 면도칼처럼 날카로웠고, 그래서 상처를 주곤 했다.

그랬던 유지태지만 달라졌다.


4일 부산영화제 개막식을 마친 뒤 해운대 인근 횟집에서 유지태를 만났다. 마침 '마이 라띠마' 주인공 배수빈 소유진 박지수 등이 함께 있었다.

'소년, 소년, 산세베리아 꿈을 꾸다' 혹은 '산세베리아'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던 '마이 라띠마'는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30대 남자와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국제결혼한 20대 태국 여성의 성장드라마다.

유지태는 이 이야기를 대학생 시절 썼다고 했다. 당시는 어촌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였다. 유지태는 "시간이 흘러 나도 성장하고 사회에 대한 인식도 경계가 넓어져 지금 이야기가 적합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원래는 가출한 소년이 필리핀 여성과 여행을 하면서 겪는 이야기였다. 현재 이야기는 배수빈이 출연하겠다고 하면서 만들어졌다.

배수빈은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감독님이 이 시나리오 모니터 좀 해달라고 보내셨는데 읽어보고 내가 하면 안되냐고 했다. 그랬더니 5시간 뒤에 다시 연락이 와서 이야기를 고쳐볼 수 있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유지태는 '마이 라띠마'를 배우들의 공으로 돌렸다. 배수빈과 소유진 박지수 등이 없었다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3억원 남짓한 돈으로 만들어진 영화. 동참한 사람들의 열정이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유지태는 "뭔가 다른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배우와 스태프 모두 수익에 지분참여를 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특히 열악한 환경에 있는 스태프들은 독립영화가 아닌 상업영화 임금 수준에서 3분의 1을 지급하고, 3분의 1은 지분으로 줬다. 작은 영화라는 이유로 열정 착취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배우들에게 감독 유지태는 어땠을까? 배수빈과 소유진은 "엄청 세심하다"고 입을 모았다. 소유진은 "감독님이 배우이다보니 감정선과 동선까지 엄청나게 꼼꼼하다"고 말했다. 배수빈은 "7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촬영을 한 적도 있다. 감독님의 욕심이라기보단 스태프 한 명 한 명, 보조출연자까지 욕심을 내서 그 장면을 완성했다"고 전했다.

이랬던 배우들이기에 유지태는 칭찬을 아낄 수가 없었다. 유지태는 "태국 여성 역할을 맡은 박지수는 이번이 첫 영화"라며 "하나하나 연기를 만졌지만 그 이상을 선보였다"고 말했다. 소유진은 "박지수가 부럽다"며 "시작을 이런 감독과 영화로 한다는 건 행운"이라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칭찬 릴레이가 이어지자 유지태에게 "자신이랑 배수빈 연기를 비교하면 누가 더 잘하는 것 같냐"고 짓궂게 물었다. 난처해하는 유지태를 보며 배수빈이 "감독님은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영화를 알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빨리 받았다.

유지태는 멋쩍은 얼굴로 "감독은 미카엘 하네케처럼 평생 하고 싶다"면서도 "그래도 좋은 배우를 향한 꿈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더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필의 요람 시네마테크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유지태는 "내년 1월이면 시네마테크에 대한 정부 지원이 끊긴다"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니 한 마디 더 하겠다며 덧붙였다.

유지태의 이런 열정은 배우들과 깊은 교감으로 이어진 것도 같았다. 배수빈은 일본영화 '백자의 사랑'과 '마이 라띠마'를 찍고 '26년'에 도전했다. 남들이 애써 피하는 길을 골라가고 있다. 배수빈은 "지금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비중이나 멋있는 캐릭터를 따지면서 살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TV드라마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독립영화에 대한 사랑이 상당한 소유진은 "매일 TV에서 보는 사람이라 영화쪽에선 날 잘 안 받아줄 것 같았다"며 "그나마 독립영화쪽에선 좀 다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고마워해줘서 내가 더욱 감사하다"고 말했다. 소유진은 이송희일 감독의 '탈주'를 찍을 때 제작비가 떨어지자 6000만원이 넘는 돈을 내놓기도 했다. 유지태는 바로 '탈주'를 보고 소유진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열정의 릴레이다.

유지태와 배우들, 스태프들의 열정과 노력이 담긴 '마이 라띠마'가 많은 관객들과 온전히 만날 수 있을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피에타'마저 교차상영으로 내몰리는 현실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마이 라띠마'는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지원한 작품이다. 많은 스크린은 아니더라도 관객들이 찾을 수 있는 시간대와 장소에서 상영될 수 있기를, 여러 사람이 바라는 부산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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