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 "'천일' 또 하면 평생 연애 못할것 같다"(인터뷰)

하유진 기자 / 입력 : 2011.12.29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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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유미ⓒ사진=임성균 기자


김래원과 수애, 김해숙 이미숙 등 중견연기자와 김수현 작가라는 큰 그늘에 가려 방송 전 주목받지 못했던 정유미. 그는 2004년 연기를 시작해 벌써 7년차에 접어들었으나 이렇다 할 작품을 남기지 못 했다. 그에 대해 알려진 정보라곤 영화배우 정유미와 동명이인이라는 점에 불과했다.

그런 그녀가 SBS '천일의 약속'의 또 다른 히로인으로 각광받고 있다. 내년 유망주로 떠오르며 기대주로 급부상하고 있다. '오빠바보' 노향기 역에 완전히 몰입했던 결과였다.


28일 오후 아직도 인기가 실감나지 않는다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배우 정유미를 만났다.

"소감, 되게 남달라요. 그런데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끝난 건지 믿기지도 않고. 초반에 너무 긴장하고 부담 가졌었는데 이젠 감정도 느낌도 재밌게 더 하고 싶었더니 끝나서 좀 아쉽기도 해요,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이에요. 약간 통쾌하기도 해요."

김수현 작가는 드라마 판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캐스팅과 연기, 현장에까지 관여할 만큼 '혹독'한 지도로 웬만한 내공이 쌓인 배우가 아니면 선뜻 나서기 힘들 정도. 7년 차이긴 하나 신인에 가까운 그는 어떻게 작품에 캐스팅된 걸까.


"처음에 오디션 보러 갈 때도 '감히 어떻게 제가 될까, 안 될거다'라고 생각하고 마음 비우고 갔었어요. 꼭 돼야 된다는 생각보다 '안 돼 괜찮다'라고 생각했죠. 대본도 즉석에서 받았는데 자연스럽고 편하게 했어요. 부담감을 지고 갈 때보다 마음을 비운 게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드라마 끝나고 회식 때 작가님이 '향기 참 그래도 잘 해줬다. 제 운이고 제 복이다'라고 하셨을 때 기뻤죠."

주연 급 역할은 처음인데다가 대가의 작품. 내로라하는 선배 배우들. 정유미의 부담감은 컸을 터였다.

"너무 심했어요. 여태까지 한 작품 중에 가장 심했죠. 롤이 크기도 했지만 작품에서 완벽을 기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요. 스스로 깜냥이 안되는데 작품에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됐어요. 6부에 이별 통보 장면 찍기 전에 방송까지 여유가 있어서 감독님께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 아직 래원오빠가 지형이 아니라 래형오빠로 보인다'라고 고민을 털어놨죠. 그런데 감독님이 '수애도 그렇다. 걱정하지 말고 빨리 매 맞는 게 낫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마음 편하게 했더니 되더라고요."

극중 정유미가 맡았던 노향기는 평생 오빠 박지형(김래원 분)만 바라보다가 그의 변심에 모든 걸 잃었다. 정유미가 본 향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서연(수애 분)은 아프지만 결국엔 가족과 사랑을 다 가져요. 향기는 엄마한테도 치이고,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명확하게 얘기를 못하고, 친구가 그렇게 많지도 않아요. 어릴 때부터 지형오빠만 바라보면서 평생을 살아왔는데 그 존재를 떠나보냈을 때의 마음은 돈이나 집, 엄마아빠가 있어도 모든 걸 다 잃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향기가 되게 가여웠죠. 혼자가 됐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불쌍했어요."

향기는 상처받고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또 다시 사랑을 했다. 지형을 이해하고 그와 서연의 사랑이 아프다고 눈물 흘리기도 했다. 심지어 둘 사이에서 생긴 아이마저 천사 같은 눈으로 바라봤다. 시청자 사이에선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이어졌다.

"버거웠던 부분도 있었어요. 출발할 때부터 작가님이 이 캐릭터는 세상에 없을 법한 여자라고 하셨죠. 이별 통보받을 때 모든 걸 감수하는 마음은 100% 와 닿진 않았어요. 얼마나 사랑하기에 이럴 수 있는 걸까,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자랑 결혼하는 얘기 듣고도 가엾다면서 눈물 흘리는 것도 쉽게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부딪히고, 세트장에서 엄마, 지형오빠를 바라보면 감정이 나오더라고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공감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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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유미ⓒ사진=임성균 기자


하도 오빠만 바라봤던 탓에 방송 초반부터 '오빠바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뽀뽀뽀송이라는 노래까지 생길 만큼 향기의 오빠사랑은 대단했다.

"너무 오빠밖에 모르고 애교도 과한데다, 실연 후엔 비현실적이고 답답해서 공감을 못 얻어내지 않을까 했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전 연기할 때 애교가 버거웠는데도 좋게 봐주시고, 응원 해주셔서 많이 힘이 됐죠. 경력은 좀 되지만 응원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 이번 작품에선 그런 걸 느끼다보니까 신이 나고 더 열심히 하고 싶었어요."

정유미는 지나친 애교 연기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는 행복한 고충을 털어놨다. 하지만 그의 애교엔 이유가 있었다.

"감독님께서 제가 그걸 최대한 해줘야 된다고 당부하셨어요. 극 전체가 어둡기 때문에 대비되려면 더 밝게 해야 된다고 하셨어요. 밝은 인물이 저밖에 없다고요. 제가 최대한 띄워놓지 않으면 묻혀버린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가 생각하는 향기와 자신의 모습은 얼마나 닮아있을까.

"전 그 정도로 답답이는 아니에요. (웃음) 그런데 닮은 부분도 많아요. 저도 재밌게 사는 타입이 아니거든요. 박영규 선배님이 첫 리딩하고 대화 나누면서 향기는 실제 향기 같은 느낌이 없는 배우가 하면 역할을 망칠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저한텐 향기와 닮은 부분이 많이 느껴진다고 하셨어요. 연애관은 달라요. 전 상대방이 마음을 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극중 지형은 너무 무뚝뚝하잖아요. 상대가 그정도면 전 좋아하지 못 할 것 같아요. 사랑도 피드백이 필요하잖아요."

'천일의 약속'에서 사랑에서 외면받았다 보니 사랑에 대한 갈증이 깊어질 것 같기도 했다.

"이번 작품 같은 거 10개만 하면 평생 연애 못 할 것 같아요.(웃음)"

정유미가 주로 호흡을 맞춘 건 또래 배우보다 중견 연기자가 많았다. 엄마로 나온 이미숙과 아줌마라 부르며 따른 김해숙, 아빠 박영규까지. 워낙 내공이 탄탄한 배우들이다보니 배울 점도 많았을 것 같았다.

"너무 좋았어요. 이번 작품으로 많은 분들이 동명이인 정유미가 아닌 절 봐주는 것도 감사한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너무 많은 가르침을 주신 선배들이 계셔서 감사했을 것 같아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수십년간 쌓인 무기와 노하우를 선뜻 꺼내주셨어요. 특히 이미숙 선생님은 무섭다는 말이 많아 걱정했는데 딸이라고 챙겨주셨어요. 톡톡 쏘는 말투 안에도 애정이 들어있었죠. 진짜 가족이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아서 촬영이 기다려졌어요."

2004년부터 오랜 시간 달려왔지만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버림받고도 사랑을 이어나가는 향기만큼 강한 배우였다.

"저를 이번 작품이 처음이라고 아는 분도 많았어요. 단역부터 시작해서 역할이 커질 때마다 뿌듯함을 느꼈어요. 그래도 그간 왜 빨리 잘되고 싶다거나, 이 일이 내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없었겠어요. 그래도 결국 이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달려왔는데 알아봐주시니까 그 만큼 더 감사하죠. 그리고 이런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기 때문에 한편으로 불안하기도 하고요. 관심이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아야겠다는 또 다른 부담감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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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유미ⓒ사진=임성균 기자


정유미는 자신의 매력을 편안함으로 꼽았다.

"성격도 그렇고 편하게 다가가는 편이에요. 외모도 편하다고 하시고요. (웃음) 연기자는 신비로워야 되고 만질 수 없는 별 같다고도 하는데 전 오히려 많은 분들과 소통을 해야 폭이 넓어질 것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선 최대한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게 맞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다 어느 날 갑자기 중턱까지 왔으니, 차기작에 대한 부담도 클 것 같았다.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좀 더 신중해지는 게 사실이에요. 지금까지는 무조건 '하면 좋지'라는 식이었는데 이제 생각해야 될 것도 많아졌어요. 그래도 너무 공백이 길지 않게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고 싶어요. '동이' 끝나곤 쉬고 싶었는데 이번엔 충전이 된 느낌이라 빨리 하고 싶어요."

정유미는 "매 순간 진심을 다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라는 바람을 남기며 인터뷰를 끝마쳤다.

그는 100m를 11초에 뛰는 스프린터는 아니었지만 오랜 기간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멋진 마라토너였다. 감사하다는 말과 믿기지 않는다는 말이 가식이 아닌 겸손과 진심으로 다가오는 그가 멋진 결승점을 향해 달려갈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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