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옥 "내가 원조 '차도녀'..男배우 많이 때렸다"(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1.04.2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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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원 기자 g1still@


"'차도녀'가 뭐예요? 차가운 도시 여자? 그거 제가 원조죠."

하늘색 차려입은 그녀가 예의 또랑또랑하고 똑 부러지는 음성으로 유쾌하게 말했다. 배우 배종옥(47)이다.


개봉을 앞둔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감독 민규동)에서 배종옥은 가족과 세상과 이별을 앞둔 여인으로 등장한다. 치매 걸린 어머니를 수발하며 무뚝뚝한 남편, 제 할 일 바쁜 자식들 돌보기에 여념없는 전업주부 인희다. 벼락처럼 찾아온 암선고로 세상과, 가족과의 작별을 준비하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눈물을 쏙 빼 놓는다.

그러나 인터뷰장에 나타난 것은 해사한 얼굴로 푸근한 미소를 짓는 아줌마 인희가 아니라 눈을 반짝이며 '사진찍기 전에 우리 얘기 먼저 할까요'라고 인사하는 '원조 차도녀' 배종옥이었다. 분명하고 당당했으며 매력적이었다.

-직접 보니 어땠나.


▶긴장 하고 봐서 개봉하면 다시 보고싶다. 민규동 감독님이 영화를 잘 만든 것 같다. 슬픔을 강요하거나 울음을 짜는 영화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감정 표현에서도 눈물을 절제하려 노력했다. 슬프기만 하지 않고 재미도 있는, 목표하는 바를 잘 이룬 것 같다. 그래도 눈물이 핑 돌더라.

-남편 역 김갑수와는 드라마 '네가 사는 세상'에서 연인으로 나왔다. 잘 어울리던데.

▶그 전에는 그런 얘기 못 들었다. 되게 편하고 재밌으니까. 바쁜 와중에 촬영하시는데도 워낙 연기력이 있으시니까 쉽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데 익숙하신 것 같다. 제가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부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래 산 부부의 느낌이 나오지 않았을까. 갑수 아저씨도 이 시나리오를 보고 무조건 한다고 했다더라. 이게 길게 찍은 작품이 아니다. 다 바빠서 한 치의 스케줄 오차도 없이 찍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그런 거 안 보이지 않나.

-정말 그렇다.

▶배우들이 그만큼 좋아해서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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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원 기자 g1still@


-부드럽고 온화한 가정주부로 나온다. 어떻게 선택했나.

▶저한테도 도전이었다. 부드러운 여성, 또 엄마로 넘어가는 이미지의 도전이었다. 그 전에도 어머니 역할을 많이 했지만 삶의 터전이 가정인 그런 역할은 처음이었다. 가정 속에서도 주체 의식이 강한 역할이 많았다. 이번엔 주부의 전형이랄까, 저로서도 상당한 도전이었다.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기다리다보면 나중에는 올 어머니 역할이기도 하다.

▶그걸 굳이 앞당길 필요가 있을까, 그런 고민도 했다. 하지만 그 때는 그 때라고 생각했고, 이것도 지나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나에게 온 기회라고.

-정말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렇게 나의 캐릭터를 변화시키려고 다양한 캐릭터를 했음에도 나란 배우는 이런 이미지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원조 '차도녀'였다.

▶차도녀가 뭔가?

-차가운 도시 여자다.

▶원조 맞다.(웃음) 제가 거의 그런 역할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행복어사전'이란 드라마였는데, 그 시대엔 그런 역할이 없었고, 또 주인공을 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미성에 순종적인 여배우가 여주인공을 하던 시대. 나는 목소리가 이상하고 남자를 때린다거나 하는, 당시엔 용납하지 않을 캐릭터였다. 그게 미니시리즈 주인공이 된 거다. 상대배우가 최수종씨였는데 맞기도 했다. 전 남자배우 많이 때렸다.(웃음)

-그런 이미지가 계속 있는 건 본인이랑 비슷해서가 아닐까.

▶그렇다. 그런 부분도 있다. 이젠 그게 싫다 좋다 생각하지 않는다. 배우로 자리잡았으니까. 그냥 제가 배우로 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로 가는, 진행형.

-어머니를 자연스럽게 연상하면서 연기했겠다.

▶저희 엄마도 암으로 돌아가셨다. 대체 의학으로 통증 없이 돌아가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늘 맑았다. 암으로 이별하는 게 그렇게 고통스럽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인희에 대해 이입하기가 좋았다.

많이 생각이 났다. 혼자 울지는 않았지만 나의 기억들이 많이 도움이 됐다. 문득 엄마가 주무실 때, 식사하실 때 보면서 단상처럼 '우리 엄마 돌아가시면 저런 모습을 볼 수 없겠구나' 그랬던. 상황은 다르지만 감정 이입에서는 도움이 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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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원 기자 g1still@


-원작을 이미 봤다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원작은 노희경 작가의 1996년 4부작 동명 드라마다.)

▶이 원작의 힘은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 안에, 남이 볼 땐 고통인 이별에서 아름다움을 끌어낸다는 거였다. 당시 우연히 드라마를 보고 경악을 했다. 너무 선명해서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누가 쓴 거냐 했는데 그게 노희경이었다. 그 때 노희경이란 작가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큰 충격을 줬던 작품이었다.

-노희경 작가가 배종옥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늘 시청률 때문에 압박받으면서도 늘 새로운 작품, 포맷을 시도한다. 그냥 새로운 게 아니라 인간의 갈등 안에 이렇게 예쁜 게 있는데 모르는, 그 이야기를 늘 하고 싶어한다. 그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장면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던 장면은 할머니를 죽이려고 하는 장면이었다. 비단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늘 몇몇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그 장면에서 인간적이라는 걸 느낄 거다. 인간의 결을 살리고 싶어하는 작가인 것 같다.

-실제로는?

▶너무나 좋은 친구다. 너무 지겨워서 싸우기도 하고, 너는 잘났다 어쩌고 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내 '조'가 나올까봐 긴장했는데 끝나고 보니 잘했다고 하더라. 작품을 같이 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필요하면 하자고 한다. 필요하지 않으면 굳이 같이 할 필요가 있나.

-연기를 가르치는 교수님이기도 한데, 학생들에게 무엇을 강조하나.

▶'배우하고 싶니, 연예인하고 싶니' 꼭 물어본다. 꿈꾸고 싶은데 좌절을 줄 수도 있지만 현실을 봐야 하니까. 인기를 얻고 부, 명예를 얻는 건 배우를 하다가 어느 날 축복처럼 오는 거지 배우의 목표가 아니라고 꼭 이야기한다. 요즘도 동숭동에 가면 1년에 500만원 받으면서 연극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악조건이지만 그럼에도 꿈을 포기 안 하면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배우로서 롤모델은?

▶제 롤모델은 메릴 스트립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그때 '소피의 선택'을 보고 잠을 못 잤다. '저런 배우가 있구나.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 해서. 메릴 스트립이 제 꿈에 반하지 않고 심지어 '맘마미아'까지 좋은 작품을 꾸준히 내면서 우리가 꿈꿀 수 있는 배우가 돼줬다는 게 고맙다.

-언론학 박사도 땄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우연히 사석에서 지도교수님을 봤는데 20년 넘게 자기가 걸어온 시간을 정리하고 싶지 않냐며 공부를 해 보라는 거다. 그래서 시작했는데 정말 고통스럽고 힘든 공부였다. 하다보니 돌아가기가 안 된다. 멈출 수가 없으니 끝장을 본 거다. 지금은 조금씩 정리를 하고 싶은 단계다. 배우 관점에서 TV 드라마를 정리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논문 모티프는 노희경 작가의 '거짓말'이라는 드라마였다.

-몸 관리도 열심히 하나?

▶요즘은 발레에 심취해 있다. 작년 7월부터 했는데 스트레칭 위주로. 재미있다. 헬스는 정말 자기와의 싸움인데 발레는 음악이랑 하니까 재미있고 감성적으로 풍부해진다. 내 몸이 예뻐진 것 같다. 스트레스도 풀리고. 내가 발레 한다니까 매니저랑 코디는 안 믿는다. 물론 공연은 없을 거다. (웃음)

배우가 되려면 고통스러운 점이 있다. 몸이 부하면 빼야 하고,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선 극복해야 된다.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놀고 싶은 거 다 놀면 못한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같은 영화의 흥행이 중견들에게 힘이 될 것 같다.

▶바람이 불어오길 바란다. 좀 더 다양한 장르, 다양한 계층이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나왔으면 한다. 또 중견 배우도 젊은 배우 못지않게 당당히 설 수 있는 작품들이 나왔으면 한다. 중견배우도 '구태의연하다', '지루하다'가 아니라 '깊이 있다', '연기 안하는 것처럼 연기한다' 이런 좀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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