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밝히는 '추노' 궁금증 20가지 Q&A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0.03.26 08:07
  • 글자크기조절
image


25일 종영한 KBS 인기사극 '추노'는 대중적이면서도 마니아적인 드라마다. 뻔하면서도 뻔하지 않았던 드라마라는 얘기다. 대중은 웃통 벗은 짐승남과 이들의 열혈 순정에 환호했고, 마니아는 인조와 서인세력, 추노꾼, 소현세자와 송태하 등이 얽힌 그 세계관, '추노 월드'에 열광했다. 일부 마니아들은 심지어 방화백(안석환)이나 오포교(이한위)의 말투까지도 암송했다.

스타뉴스는 '추노' 종영을 앞둔 지난 23일 '추노' 작가 천성일씨를 그의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만나 사소한 궁금증 20여가지를 두서없이 물어봤다. '7급 공무원'의 작가답게 그의 답변은 청산유수와 같았다. 그리고 대개는 우문에 현답이었다.


-성동일 조진웅 김지석 등 '국가대표' 출신들이 많이 캐스팅됐다. 이유가 있나?

▶'국가대표' 홍보사가 플레이한 것 아닌가?(웃음) 전혀 아니다. 오히려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원스 어폰 어 타임' 출신들이 많았다. 끝봉이 조희봉을 비롯해 안길강 성동일도 나왔으니. 아니다. 오히려 곽정환PD의 전작 '한성별곡' 팀이 많이 들어왔다.

-"만진 거여? 가다 스친 거지?" "말이여, 당나귀여?" 같은 방화백 말투가 화제다. 솔직히 작가 본인 말투 아닌가?


▶하하. 그렇긴 하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뜻이 그렇다는 거지" 같은 말도 있으니. 하지만 대부분 우리 고향 친구와 아저씨들 말투다. 내가 아는 한 분은 이런 말도 자주 쓴다. "말이여, 막걸리여?"

-오포교 이한위 말투도 빼놓을 수 없다. '전반적으로다', 솔직히 이한위 애드리브 아닌가?

▶맞다. 처음엔 이한위씨가 애드리브로 '전반적으로다'를 썼다. 그런데 내가 봐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이후 대본엔 내가 남발했다, 전반적으로다가(웃음).

-'~거니' '~라니"로 끝나는 업복이 공형진의 사투리도 묘하다. 함경도 같기도 하고, 강원도 같기도 하고.

▶아킬레스건을 지적했다. 함경도 강원도 말투 섞인 사투리다. 정확히 잘 모르겠다.

-좌의정(김응수) 대감의 '~하시게'체도 매력적이다.

▶사실 좌의정 이경식이 쓰는 '~하시게'체는 사람을 가장 무시하는 말투다. 원래 이 말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말투인데, 좌의정은 자신에게도 이 말투를 쓴다. "나도 이만 가보시겠네." 아주 기분 나쁜 말투다.

-그런데 왜 하필 좌의정인가. 우의정도 있고, 영의정도 있는데.

▶별 뜻은 없었다. 그러나 영의정이 더 높긴 하지만 명예직에 불과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실권은 좌의정이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좌의정의 딸(하시은)은 의외였다.

▶그녀 선영은 황철웅(이종혁)의 거울이었다. 몸은 성하나 마음은 비뚤어진 황철웅이, 몸은 비뚤어졌으나 마음은 곧은 선영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길 원했다. 선영은 항상 그 자리에 있고, 황철웅은 항상 부표처럼 떠돈다.

-대길, 연기자로서 장혁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면?

▶어떻게 감히 제가..?(웃음) 태초에 점이 있었다. 점과 점이 만나면 선이 되고, 선과 선이 만나면 면이 되고, 면과 면이 만나면 3차원 공간이 된다. 그런데 이 3차원 역할을 장혁이 해줬다. 선은 내 머리 속에, 면은 대본에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장혁이 좋은 배우라 느꼈던 게 대사들을, 어감과 어순을 느낌에 맞게 교묘히 바꾼다는 것이다. '추노'에서 가슴에 탁탁 꽂혔던 대사들은 대부분 장혁이 만들었다. 대본엔 '난 평생 너랑 살 거다'로 썼는데, 장혁은 이를 '난 평생 살 거다..너랑'으로 고쳤다. 장혁은 대길을 연기한 게 아니라 이미 대길이 돼 있었던 거다.

-그러면 송태하, 오지호는?

▶오지호 본인은 무척 답답했을 것 같다. 확 영웅이 돼서 뛰쳐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게 안됐으니까. 화산인데, 연기 나고 용암이 뽀글거리는 그런 화산인데, 그래서 화산이 폭발하는 것을 보고 싶은 시청자들이 많았는데, 결국 주변만 뜨끈하게 데워주는 역할이었다.

-조선 무관으로서 명백한 계급 이데올로기에 갇혀 버린 한계도 있었다. "난 언년이는 모른다. 혜원이만 안다" 같은 대사 말이다.

▶송태하는 "난 사대부 출신이다"라는 뿌리 깊은 자존감이 있는 인물이다. 이게 그의 한계였다. 노비 생활을 했으나 난 노비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했다. 송태하에게 노비는 사랑으로 대해주는 게 아름다운 것이었지, 주종관계가 없어지는 개념 자체는 없었다.

-황철웅, 이종혁은 어떤가. 예전 권상우가 나왔던 '말죽거리 잔혹사'의 선도부장 이미지가 참 서늘하다. 이게 참고가 됐나.

▶아니다. 오히려 '라듸오데이즈'에서의 코미디 연기를 좋게 봤다. '말죽거리 잔혹사' 선도부장은 이미지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송태하와 맞붙어 무참히 패해 실망이 컸다.

▶사실 황철웅은 무술실력으로 보면 송태하보다 반수 정도 아래다. 또한 송태하를 이기고자 하는 집념이 너무 강해 오히려 쉽게 진 것 같다.

-대길과 송태하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

▶어떤 싸움인지가 관건이다. 칼만 들고 하는 진검 승부일 경우는 당연히 송태하가 이긴다. 대길은 싸우다 질 것 같으면 상대방 눈에 흙까지 집어 던지는 그런 캐릭터다. 심지어 상대를 물어 뜯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송태하는 이런 걸 못한다.

-'그분' 박기웅이 이끄는 노비, 민초의 반란에 관심이 많이 간다. 참고한 모델이 있나? 인터넷에는 이를 좌의정이 조종하는 음모론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좌의정의 10만 양병설도 나돈다.

▶네티즌들이 그러던가? 처음 듣는다. 스포일러다. 절대 쓰면 안된다.(인터뷰가 이뤄진 날은 23일이었고, 이 내용은 24일 방송분을 통해 사실로 밝혀졌다. 그래서 천 작가 말을 그대로 옮긴다) 맞다.

-정말인가? 대단하다.

▶좌의정의 최종목표는 원손을 이용해서 정적을 제압하고, 노비를 이용해서 청과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병자호란 직후 조선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축성이나 개보수가 금지됐다. 그래서 노비 반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해서 호적 정리를 하고, 이를 통해 새로 생겨난 양인 10만명을 북방으로 보내서 전쟁준비를 시작하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때 (그동안 사재기했던) 물소뿔을 비싸게 푸는 것이고. 결국 북벌은 허명이고 실은 자기 욕심을 채우려 한 것이다. 인조의 어심을 관통하는 것이 다름 아닌 북벌이었으니 이를 교묘히 이용하려 했던 것 같다.

-왜 하필 인조 시대를 이야기했나. 노무현 정권 때는 그렇게나 정조 시대가 인기였는데.

▶추노 이야기를 풀려니 인조시대를 붙인 것이다. 인조시대를 연구하다 추노가 나온 게 아니다. 도망치는 노비들, 이를 잡으려 하는 사람들. 신분의 낙폭이 컸던 시대, 왕의 손자가 귀양 가서 병들어 죽는 시대, 이게 바로 인조시대였던 거다. 그리고 추노는 노비만 잡았던 게 아니다. 범죄자도 잡았다. 요즘 말로 하면 흥신소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웃통 벗은 짐승남이 화제였다. 작가의 의도인가?

▶그렇게 벗고 나올 줄 몰랐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있었다. 당시는 돈 보다는 옷감이나 쌀이 화폐 역할을 했다. 그래서 없이 살던 사람들은 옷이 깨끗하지 않았을 것 같다. 더욱이 더럽기도 하고, 여름이면 옷이 매우 짧았을 것 같다.

-극중 조선비가 일러바친 역모 문서에 박명수 유재석 등 '무한도전' 멤버 이름이 들어갔다. 작가가 '무도' 팬이라서 집어넣은 것이라는데 맞나?

▶'무도' 팬 맞다. 주말에는 다른 건 몰라도 '무도'는 꼭 본다.

-그런데 왜 박명수, 유재석 두 사람만 썼나?

▶전에 이병헌 송강호 등의 이름을 쓴 적이 있다. 이번에 '무도' 멤버 전원의 이름을 쓰면 "장난을 두번이나 치냐?"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이 정도로 높은 시청률이 나올 줄 알았나?

▶전혀.

-40%를 못 넘은 이유는 뭘까?

▶연기도 좋았고, 연출도 좋았으니 과연 누구 탓일까. 못치고 나갔다고 생각안한다. 30%대에서 많이 이탈안하고 유지한 것, 그 이상 좋은 게 어딨나?

-월악산 짝귀의 존재가 신선했다.

▶'추노' 등장인물은 세 부류다. 송태하처럼 세상에 도전하는 인물, 대길처럼 세상에 휩쓸려가는 인물, 그리고 짝귀나 땡중(이대연)처럼 세상에서 한발 짝 피해가는 인물. 짝귀를 그렇게 봐달라.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