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김영삼-노무현의 차이점은

성우 이상훈, MBC '격동 50년'서 박정희 김영삼 노무현 연기

조철희 기자 / 입력 : 2009.02.1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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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라디오 드라마 '격동 50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성우 이상훈씨. ⓒ임성균 기자


박정희, 김영삼, 노무현. 성우 이상훈씨(39)가 라디오를 통해 그야말로 '똑같이' 목소리를 전한 전직 대통령들이다. 이씨는 최근 MBC 표준FM(95.9㎒) 다큐멘터리 드라마 '격동50년'에서 노 전 대통령 역할을 맡아 여느 성대모사보다 더 비슷한 말씨의 연기를 펼치고 있다.

[동영상]전직 대통령들의 신년사 (목소리 연기 : 이상훈)






오랜 세월을 이어온 라디오 정치 드라마 '격동50년'에서 벌써 대통령 역할만 3명째. 그래서 그는 '라디오 대통령'으로도 불린다. 특히 숱한 정치적 풍파를 겪었던 노 전 대통령을 연기하는 요즘, 매일같이 가슴앓이를 한다는 이씨를 서울 명륜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싸움닭' 치부된 노무현 심정, 누구보다 이해

MBC 공채 성우가 됐던 지난 1999년부터 '격동50년'에 출연한 이씨는 최근 방송분인 제67화 '참여정부의 도전과 위기' 편의 첫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2004년 3월 탄핵 위기에 몰린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에 올라 광화문 탄핵반대 촛불집회에서 흘러나온 불빛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극중에서 노 전 대통령은 "관저에만 있을 때는 속이 답답해 죽겠더니만 저 불빛을 보니까 숨 좀 쉬겠네"라며 동행한 비서관에게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다.

이씨는 이 장면에서 노 전 대통령의 심정이 그대로 가슴 깊숙히 파고 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말 많이 하고, 말 잘 못하는 자신을 응원해주는 국민들을 보면서 노 전 대통령은 가슴 뭉클한 감정이 들었을 것"이라며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드라마 내용이 주로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시련을 다루다보니 이씨의 마음도 늘 불편하다. 이씨는 "연기하면서 울컥한 적이 많았다. 매주 수요일 녹음이 끝나면 어김 없이 술을 마신다. 다른 이들이 자신을 싸움닭으로 만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노 전 대통령의 심정을 누구보다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들을 감옥에 보내면서 느꼈을 심정이 가슴 아팠다고 한다. 드라마에서는 안희정 현 민주당 최고위원의 2003년 당시 '나라종금 사건' 등이 자세히 다뤄지고 있다. 이씨는 "담당 작가를 통해 안 최고위원이 방송을 자주 듣고, 노 전 대통령의 비서관들도 가끔씩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과는 나름 각별하게 생각하는 인연도 있다. 대통령 당선 이전 시절에는 서울 명륜동에서 '함께' 살았다. 유세도 많이 지켜봤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경찰 호위를 받으며 노 전 대통령은 국회로, 자신은 여의도 MBC 사옥으로 출근을 '함께' 했다고 한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지역 예술인 자격으로 초청을 받아 참석하는 등 묘하게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씨는 "노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제일 똑같이 연기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담당 작가의 어머니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직접 라디오에 출연한 것으로 오해했고, 시골에 계신 어머니는 내가 연기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뉴스가 나오는 것으로 착각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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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균 기자
#'고독한 인간형' 박정희 전 대통령…말투에도 빈틈없어

이씨는 처음 1~2년 동안에는 시민, 기자 등 단역으로 출연했다. 3년 차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유명 정치인인 이만섭 전 의원의 역할을 맡게 됐다. 이후 가능성을 인정받는 한편 부산 태생이라는 점에 힘입어 경상도 출신 전직 대통령들 역할을 단골로 맡게 됐다.

이씨는 "어린 시절부터 박 전 대통령을 따라 했었는데 이렇게 성우가 돼 연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마치 꿈만 같다"고 말했다. 꿈 같은 일을 성공적인 현실로 만들기 위해 경북 구미 박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기도 했다.

"성대모사가 아니라 연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말투만 흉내내는 것에 머무를 수 없다. 아무리 따라 해도 똑같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심리와 그 사람이 처한 상태를 이해하는 것이다"

늘 캐릭터의 내면 연구에 몰두하는 이씨는 박 전 대통령을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인간형'으로 분석했다. 소리 자체에 빈틈이 없고, 그 속에 힘과 카리스마가 있다고 한다. 대사도 지지부진하지 않고 절도 있다.

한편 김영삼 전 대통령의 화법은 따라하기 쉬운 듯하면서도 독특하다. 조금 느슨하면서도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이씨는 "흔히들 '요'로 말을 끝맺는 말투는 노 전 대통령의 전매특허로 알고 있지만 사실 김 전 대통령이 원래 더 자주 그런 말투를 써왔다"고 설명했다.

또 김 전 대통령은 사석에서 아들 김현철씨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인터뷰 즉석에서 "현철이 이눔아 어디갔노"를 흉내내기도 했다. 이씨는 김 전 대통령의 경남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하며 어린 시절 부산에서 자라면서 김 전 대통령의 거리 유세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영화·드라마·연극서 연기 활약…'끼와 열정'의 대통령

이씨는 전직 대통령들 이외에도 김윤환, 김문수, 서석재 등 다른 유명 정치인들의 역할도 맡아 연기한 적이 있다. 또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역할을 맡은 적은 없지만 목소리를 비슷하게 따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쉽지 않다고 한다. 이씨는 "아직 그 분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해서 그런지 연습을 해보지만 잘 안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정치에 대한 관심도 많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 때에는 다음 날 녹음 일정이 있었지만 밤을 세워 투표 결과를 지켜봤다. 그리고 좋아하는 정치인은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다. 수염과 머리가 길고, 개량 한복과 고무신을 애용해 주변에서 비슷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격동 50년'에 대한 애정 못지 않게 이씨의 마음 한 가운데에는 배우로서의 꿈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인 이씨는 대학 시절부터 영화와 연극을 열정적으로 공부했다. 현재 극단 '연각'의 대표로 연극 무대에도 서고 있다.

또 성우 일을 하면서도 영화와 드라마에 열심히 얼굴을 비췄다. 영화 '황산벌', '거룩한 계보', '아들' 등에서 독특한 캐릭터로 열연했고, 최근에는 SBS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비중있는 감초 조연 '공씨'역을 맡아 활약했다.

판소리 3년, 웅변 10년 등 소리공부만 20년. 시낭송, 판토마임, 미술 등 다방면에서 다양한 경험과 실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끼와 열정만큼은 대통령 이상이다.

인터뷰 말미 다음날 녹음이 예정된 '격동 50년' 대본을 보면서 그는 말투 하나 하나를 고치고 다듬었다. 노 전 대통령의 억양이나 말버릇을 대사 속에 녹이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기자를 보며 노 전 대통령의 말투로 한마디를 건넸다. "우리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희망을 잃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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