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념비적 팀 디펜스... 아시아 더 이상 '승점 자판기' 아니다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2.11.25 14:08 / 조회 : 1678
  • 글자크기조절
image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4일 카타르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루과이전을 앞두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 /AFPBBNews=뉴스1
한국과 일본의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가 확정됐을 때 세계 축구계에서는 두 국가 중 적어도 하나는 16강에 오르지 못할 것으로 봤다. 축구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여전히 아시아의 실력이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 아시아 국가는 월드컵에서 '승점 자판기' 역할을 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의 8강과 1994년 사우디아라비아의 16강 진출을 빼놓고 아시아 축구는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2002년 대회에서 한국이 4강에 오르고 일본도 16강에 진출하면서 아시아의 축구 위상은 상승했다. 이런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 순간은 2002년 월드컵 한국과 스페인의 8강전이었다. 한국의 붉은 악마는 대표팀의 선전을 통해 아시아 축구 발전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Pride of Asia(아시아의 자존심)' 카드 섹션을 펼쳤고 경기에서 승리했다. 그래서 한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이 경기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았다.

2002년 월드컵 이후에는 더 많은 아시아의 유망주들이 세계 축구의 중심인 유럽으로 진출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갖고 있는 중요한 의미는 아시아 축구가 본격적으로 세계화의 물결에 합류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아시아 축구의 성장은 아프리카에 비해 뒤처졌었다. 아프리카 국가는 식민지 시대부터 이뤄진 유럽과의 커넥션 때문에 일찌감치 유럽과 축구 교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재능 있는 아프리카 선수들도 유럽 프로축구 클럽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아프리카 축구는 1982년 월드컵에서 알제리가 서독을 제압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4년 뒤에는 모로코가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다. 더 이상 아프리카 국가는 월드컵의 이방인이 아니었다. 이후에는 카메룬, 나이지리아, 가나 등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해 세계 축구의 양대 축인 유럽과 남미를 긴장시켰다. 2002년 월드컵 개막전에서는 세네갈이 전 대회 우승국 프랑스를 제압했다. 대부분의 세네갈 선수는 프랑스 프로축구 클럽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세네갈은 이 대회에서 8강까지 진출했다.

그래서 아프리카는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 숫자가 아시아보다 약간 많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기준으로 아프리카는 5장, 아시아는 4.5장이며 48개국으로 본선 진출 국가수가 늘어나는 2026년 월드컵부터는 아프리카가 9.5장, 아시아는 8.5장이다. 대륙간 월드컵 예선 플레이오프를 통해 아프리카에서는 최대 10개 국가(아시아 최대 9개)가 본선에 갈 수 있다.

image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이 22일 아르헨티나전에서 역전골을 터뜨린 뒤 기뻐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하지만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는 아프리카보다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일본과 한국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22일(한국시간) C조 예선 첫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2-1로 제압했다. 리오넬 메시의 월드컵 '라스트 댄스'의 서주를 망친 사우디아라비아의 전략은 수비라인을 하프라인까지 끌어올려 공격적인 수비를 하는 것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사우디의 최종 수비수는 'VAR(비디오판독시스템)'이었다. 한 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VAR 판독으로 아르헨티나가 중요한 순간마다 오프사이드에 걸리자 어느 순간 아르헨티나 공격은 날카로움을 잃어버렸다. 반대로 사우디는 여유 있는 경기를 펼치며 역전승에 성공할 수 있었다. 작전에 의한 승리였다. 이 때문에 프랑스 출신의 에르베 르나르 사우디 감독(54)의 주가가 높아졌다.

일본은 23일 독일과의 E조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역시 2-1로 역전승을 거뒀다. 독일의 압도적인 우세가 예상됐지만 일본은 만만치 않았다. 이날 경기에서 일본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선수 5명이 대활약을 펼쳤다. 골을 넣은 도안 리츠(24·프라이부르크)와 아사노 다쿠마(28·보훔)도 모두 분데스리가 소속 선수들이었다.

image
일본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3일 독일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이 터지자 환호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일본은 0-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교한 패스로 수비 배후 공간을 만드는 작전을 집요하게 구사했다. 오랫동안 갈고 닦아온 일본의 정교한 패스 축구는 결국 후반 막판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마치 한국의 이강인(21·마요르카)과 같은 패스 능력을 보유한 선수들이 많은 일본 축구의 정수가 드러난 경기였다.

24일에는 H조 첫 경기에서 한국이 우루과이와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한국은 초반부터 팀 전체가 참여하는 강한 '프레싱 게임'을 펼치며 우루과이를 당황케 했다. 한국선수 전원이 펼치는 팀 디펜스라는 측면에서 이 경기는 '기념비적'이었다. 위험에 빠진 동료를 돕는 선수들의 희생도 자주 눈에 띄었다.

특히 중원에서 상대 공격의 길목을 막는 수비뿐 아니라 수비라인의 1차 빌드업에도 적극 참여한 정우영(32·알사드)의 활약이 빛났다. 여기에 월드컵에서 자주 한국을 울렸던 남미 축구를 상대로 '통곡의 벽' 김민재(26·나폴리)도 수비의 대들보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남은 경기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아시아 국가들이 만든 이변이 2002년 월드컵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발현될 가능성이 커졌다. 유럽과 남미는 물론 아프리카에도 월드컵 '승점 자판기'로 인식됐던 아시아 축구가 어디까지 비상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image
이종성 교수.


관련기사
  • 트위터
  • 페이스북
  • 라인
  • 웨이보
  • 프린트
  • 이메일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