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커는 가을에 약해' 꼬리표, 73세 첫 우승으로 드디어 지워냈다

더스티 베이커 휴스턴 감독이 6일(한국시간) 월드시리즈 6차전 승리 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대단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 월드시리즈 우승만은 없었던 명장 더스티 베이커 휴스턴 애스트로스 감독이 73세의 나이에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휴스턴은 6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미닛메이드 파크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2022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4-1로 승리했다.


시리즈 전적 4승 2패를 기록한 휴스턴은 2017년에 이어 2번째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품에 안게 됐다. 2019년과 2021년 정상 문턱에서 무릎을 꿇었던 휴스턴은 다시 빅리그 최강자 자리에 우뚝 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현역 최고령 감독인 베이커가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25시즌 동안 지휘봉을 잡은 그는 처음으로 우승 반지를 손에 끼게 됐다.

1995년 샌프란시스코 감독 시절의 더스티 베이커(왼쪽). /AFPBBNews=뉴스1

선수 시절 올스타,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 리그 챔피언십시리즈 MVP, 월드시리즈 우승 등 얻을 수 있는 명예는 다 얻었던 베이커는 1993년 44세의 나이로 샌프란시스코 감독직을 맡았다. 그는 첫해부터 103승을 거두며 내셔널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베이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1997년부터 6년 연속 90승 이상을 달성했고, 2002년에는 월드시리즈에도 진출해 7차전 승부 끝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그는 시카고 컵스(2003~2006년), 신시내티 레즈(2008~2013년), 워싱턴 내셔널스(2016~2017년)를 거치며 모든 팀을 가을야구로 보냈다. 올해의 감독상 3차례 수상(1993, 1997, 2000년)은 덤이었다.

그러나 월드시리즈 제패는 좀처럼 따라오지 않았다. 2003년 컵스 때는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 끝에 패배했고, 이후로는 계속 포스트시즌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이에 '베이커는 가을에 약하다'는 꼬리표가 달렸다.

2013년 신시내티 감독 시절의 더스티 베이커(왼쪽). 오른쪽은 추신수. /AFPBBNews=뉴스1

2년의 야인 생활을 보낸 베이커는 2020시즌을 앞두고 휴스턴과 1+1년의 계약을 맺었다. 당시 휴스턴은 2017년 포스트시즌에서 전자기기를 이용한 불법 사인 훔치기를 자행한 사실이 드러나며 A.J. 힌치 감독을 경질했다. 어수선한 팀의 분위기를 잡아줄 지도자가 필요했고, 현역 최고의 덕장인 베이커가 적임자였다.

베이커는 취임사에서 "내가 지휘봉을 잡는 한 사인 훔치기 스캔들 같은 일은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며 배수진을 쳤다.

휴스턴은 베이커 부임 후 2020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 7차전 승부 끝에 패배하며 분루를 삼켰다. 그러나 이듬해에는 ALCS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를 4승 2패로 꺾고 월드시리즈에 복귀했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2승 4패로 패퇴했으나 희망을 보여줬다.

그리고 올 시즌 휴스턴은 아메리칸리그 최다승인 106승을 거두며 서부지구 정상에 올랐다. 포스트시즌에서 시애틀 매리너스와 뉴욕 양키스를 차례로 꺾은 휴스턴은 월드시리즈에서도 필라델피아를 물리치며 2017년 이후 처음으로 정상에 올라섰다.

미국 매체 USA 투데이에 따르면 베이커는 경기 후 "월드시리즈 우승이 이런 느낌이었나"며 "항상 이 느낌이 궁금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베이커는 올 시즌을 끝으로 휴스턴과 계약이 끝난다. 짐 크레인 구단주가 계약 연장을 제안할 예정인 가운데, 베이커는 "연봉을 올려주길 바란다"며 농담 섞인 바람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