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중문화예술계는 애도로 침묵을 강요받아야 하는가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22.11.0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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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로 예정됐던 영화 '동감' VIP시사회가 이태원 참사 추모의 의미로 취소됐다.
애도를 강요하는 건 위험하다. 자칫 침묵을 강요 당한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고 나흘 째. 대중문화예술계가 멈췄다.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되자 예정된 공연과 음반 발매, 예능 프로그램·드라마·영화 제작발표회, 시사회 등등이 줄줄이 취소되고 연기됐다. TV에선 예능 프로그램이 줄줄이 결방되고 있다. 관청에서 진행하는 각종 문화행사도 멈추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3년만에 재개된 아이들의 나들이도 속속 취소되고 연기되고 있다.


누군가는 세월호 참사 때와 다를바 없다고 한다. 당시도 전국민적인 애도의 뜻으로 TV 속 예능 프로그램들과 각종 대중문화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됐다. 얼핏 닮아보인다. 자발적인 애도와 강요받은 애도의 차이만 빼면.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걸 나무랄 사람은 없다. 슬픔을 나눠지는 걸 질책할 사람은 없다. 감히 유족의 슬픔에 비할 수 없지만 이 안타까움과 슬픔은 너나할 것 없을 테다.

그럼에도 애도는 각자의 몫이다. 애도의 방식도, 애도의 크기도, 애도의 나눔도, 각자의 몫이다. 노래로, 공연으로, 영화로, 드라마로, 예능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가 가능해야 한다. 그게 예술의 몫이요, 예술의 기능이기도 하다. 예술은 공감이다. 공감할 수 있도록, 나눌 수 있도록, 같이 애도할 수 있도록, 예술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대중문화예술을 멈춰세우는 것으로, 애도의 책임을 지우는 건 무책임하다. 책임을 개인의 것으로, 책임을 소비자의 것으로 돌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연예인들은 행여 이 시국에 웃었다고 욕을 먹을까, 미소 지었다고 질타 받을까, 조심스러워한다. 그리하여 애도를 각자의 일로 할 수 조차 없게 되버린다.

대중문화예술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멈춰지는 건 위험하다. 자칫 엄숙을 강요받는다. 엄숙은 때론 침묵을 강요한다. 미소 지었다고 욕 먹는 건, 사태를 책임지어야 할 사람들로 족하다.

슬픔은 끌어안아야 누그러진다. 잊는 게 아니라 끌어안아야 한다. 그래야 살아진다. 슬픔이 클수록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하던 일을 계속 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진다. 가수는 노래해야 하고, 배우는 연기해야 하고, 개그맨은 웃겨야 한다. 각자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견뎌가는 모든 사람들처럼.

대중문화예술이, 이 슬픔을,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멈춰진 곳에선,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진심으로 빕니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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