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으로 돌아가자" 위안부 영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문바세]

[문화콘텐츠가 바꾸는 세상]-③영화가 바꾸는 세상(③-2)

전형화 기자 / 입력 : 2022.09.05 09:57 / 조회 : 1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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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포스터
문화 콘텐츠가 지닌 파급력과 중요성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때로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2020년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 가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였다. 한국 사회 부의 양극화를 꼬집은 영화 속 반지하는 저소득층 주거 환경을 상징하는 공간적 배경이 됐다. 정부는 당시 '기생충' 흥행을 계기로 주거 복지를 위한 반지하 가구에 대한 전수조사를 계획했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지난 8월 침수 피해로 서울 관악구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사망했다. 현실 속 반지하는 더 참혹하고 참담했다.

올해 큰 화제를 모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했다.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천재 변호사 우영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허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따뜻하게 그려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영우 같은 능력을 지닌 자폐인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현실과 괴리감이 크다는 한계점도 드러냈다.

콘텐츠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시대의 흐름은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스타뉴스는 창간 18주년을 맞아 세상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거나 받아들인 콘텐츠에 대해 짚어보고, 콘텐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K-팝, K-드라마, K-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사회 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을 찾아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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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스틸
언제부터인가, 위안부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그저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이제 몇 분 생존해 계신다는 카운팅만 보도될 뿐, 위안부 문제를 진지하게 조명하려 하면 금방 편가르기로 이야기가 뒤덮힌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 섰던 일부 활동가가 제도 정치권에 들어가고, 그 이후 벌어진 일련의 일들 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나눴던, 그리고 나누던 이야기들이 정치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곤 한다. 이제 공공연하게 소녀상에 돌을 던지는 사람도, 침을 뱉는 사람도 있다. 정치로 편가르기가 되기 전에는, 차마 하고 싶어도 못 했던 일들이다. 드러내놓고 말하진 못하지만 악화된 한일문제 해결의 걸림돌처럼 여기는 이들도 있다.

'귀향'을 다시 꺼내본다. '귀향'(2016)은 어렵사리 만들어진 영화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 봉사활동을 하던 조정래 감독이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구나, 란 마음을 품었던 게 2002년이었다. 그 뒤 2014년 첫 삽을 뜨기까지 지난한 시간이 흘렀다. 제도권 밖에서 만들어지다보니 그야말로 후원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았다. 이야기를 들은 독지가가, 알바하던 청년이, 자동차 수리하는 사람이, 한술두술을 모아 영화 제작비를 지원했다. 이번 주까지는 촬영을 할 수 있지만, 다음 주부터는 돈이 없어 촬영을 못하게 되면, 어디선가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투자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귀향'은 2016년 2월 24일 개봉했다. '귀향'은 1943년 아무것도 모른 채 일본군 손에 이끌려 가족의 품을 떠났던 14살 정민이가 겪은 아픔을 그린 영화다. 위안부로 그 참혹한 전장에서 살아남은 그녀가 이제 그 아픔을 잊고 살려 했다가 자기보다 먼저 용기를 낸 같은 피해자의 외침에 말문을 연다는 이야기다. 누군가는 '귀향'으로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봤다며 울었다. 누군가는 '귀향'이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전시했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엄청난 스타배우가 출연하지도, 유명 감독이 만들지도 않은, 이 영화를 당시 358만 관객이 찾은 건 시대적인 아픔과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협상이 합의돼 그에 대한 공분이 단단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귀향'은 극장에서만 상영된 게 아니다. 공동체 상영이 끝없이 이어졌다. 한국 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 유럽 각지에서 상영됐다. 그렇게 국내외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가 전쟁 범죄며, 인권 문제며, 여성 인권 문제라는 사실에 공감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시대의 산물이다. 시대의 아픔을 먼저 읽고 시대의 아픔을 담는다. 스릴러로 담든, 코미디로 담든, 액션으로 담든, 다큐멘터리로 담든, 시대의 공기가 담긴다. '귀향'은, 그리고 '귀향'에 대한 공감은, 불과 7년 전 한국사회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 같이 울고 같이 외쳤단 뜻이기도 하다.

'귀향'은 위안부 문제를 담은 제도권 상업영화들이 만들어지는 데 물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영어를 배우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코믹휴먼드라마로 그린 '아이 캔 스피크', 위안부 문제를 일본 법정에서 다퉜던 관부 재판을 담은 '허스토리' 등이 관객과 만났다. 올해도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담은 독립 다큐멘터리 '보드랍게'와 위안부를 매춘부로 매도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미 전시정보국 심문보고서의 왜곡을 추적한 '코코순이' 등이 개봉했다.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1995)가 위안부 문제를 영화로 세상에 알린 첫 소리였다면, '귀향'은 다시 이 문제를 상기시킨 외침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 목소리들이 잦아들었다. 뜨거운 호응은 줄었고, 누군가가 외치면 다른 쪽에서 다른 목소리를 낸다.

다시 '귀향'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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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을 연출한 조정래 감독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조정래 감독이 요즘 위안부 활동가, 시민단체 사람들을 강연으로 만나면 하는 이야기다. 이제 강연에 마땅히 부를 사람이 없어서 자기를 부르는 것 같다는 겸양 아닌 겸양도 했다. 일부 위안부 활동가들이 정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던 많은 사람들이 사분오열됐다. 많은 사람들이 어찌 해야 할지, 갈 길을 잃었다.

"많은 분들이 의기소침해 지신 것 같다. 그래서 그 분들에게 '여기 계신 선배님들 덕분에 제가 '귀향'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감사하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이야기한다. 피해자분들의 아픔, 전쟁 범죄와 여성 인권 문제 등에 왜 우리가 분노했는지, 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어났는지 처음으로 돌아갖고 이야기한다. 사실 그건 저한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조정래 감독은 '귀향'으로 이름을 알렸다. 위안부 다큐멘터리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도 만들었다. 한 편의 작품으로만 기억되길 원하는 감독은 없을 터. 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이수자인 조정래 감독은 이후 판소리를 담은 영화 '소리꾼'을 만들었다. '귀향'의 감독이 아닌 새로운 작품의 감독으로 기억되길 바랐다.

조정래 감독은 "부끄러웠다. 양심의 목소리 대로 살기 위해 '귀향'을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 그 목소리를 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세상살이가 많이 힘들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도 상당하다. 그래서인지, 양심의 목소리보다는 다들 먹고살기에 바쁘다. 저 역시 그렇다. '소리꾼' 흥행이 잘 안되다보니 투자자 분들의 항의 전화들이 저와 제작자에게 요즘도 계속 오신다. 한 분 한 분 목소리를 다 듣는다. 그렇게 배운다. 그러면서 배운다. 제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조정래 감독은 요즘도 '귀향' 미주 상영회를 하면서 만났고, 그래서 결성된 비영리단체 '언포갓든 버터플라이' 사람들과 연락한다. '귀향'을 보고 위안부 문제를 잊지 말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단체다. 조정래 감독은 "그분들은 여전히 잊지 않겠다며 응원하고 노력하시는데 오히려 그 영화를 만든 제가 길을 잃었던 것 같다. 초심을 되새긴다"고 말했다.

조정래 감독이 준비 중인 작품 중 하나는 '귀향' 일본 훗카이도 상영회를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단초가 됐다. 현지 아이누 사람에게 들었다. 훗카이도 선주민인 아이누는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많은 박해를 받았다.

"일제 말기 훗카이도로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을 당했다. 그들과 아이누 사이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했고, 현지인들과 아이가 태어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고 그렇게 남겨진 아이들을 아이누 사람들이 '대지의 아이들'이라며 거둬서 키웠다고 한다. 관련 자료들을 많이 찾고 인터뷰도 많이 했다. 개중에는 쉰들러처럼 아버지가 왠 조선사람들을 집에 데리고 와서 숨겨서 누구냐고 물었더니 '오지상'(아저씨)이라고 부르라고 했다는 일본인의 인터뷰도 있다. 일제 패망 후 그렇게 아버지가 집에 숨겨놓은 조선인들이 귀국하면서 비로서 알았다고 하더라."

조정래 감독은 "위안부 문제는 반전의 문제고, 양심의 문제고, 인권의 문제다"면서 "우리가 양심대로 살면 거리낄 게 없다. 양심의 목소리를 듣자는 초심대로 일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양심의 소리는, 아픈 곳에서 울린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감춰져 있었던 건, 낮은 곳에서 아팠기 때문이었다. 용기 있는 분들의 목소리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을 때도, 뭘 잘했다고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외치냐는 목소리도 만만찮았다. 누군가가 초인처럼, 영웅처럼,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건 아니다. 여러 사람들이 다들 각자의 이유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모았다. 각자의 이유는, 각자의 양심의 소리였을 터. 낮은 곳의 아픔을 기억하자는. 그렇게 이 목소리들은 커졌다. 그렇게 당당한 목소리가 됐다. 이 목소리가 언제부터인가 잦아들고 있다. 힘이 사라지고 있다.

실패를 언제까지나 붙잡고 있으면 새로운 실패가 달라붙는다. 양심의 소리로 다시 돌아가기를,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갚자는 외침을, 다시 이야기할 때다. '귀향'이 아직 끝나지 않은 목소리여야 하는 까닭이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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