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외면한 칸국제영화제, 틱톡과 제휴..中자본에 굴복?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22.03.21 10:57 / 조회 : 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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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국제영화제가 중국의 글로벌 숏폼 플랫폼 틱톡과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칸국제영화제가 중국의 글로벌 숏폼 플랫폼 틱톡과 손을 잡았다.


최근 버라이어티와 데드라인 등 해외 매체들에 따르면 5월17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제75회 칸국제영화제가 틱톡과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칸국제영화제는 올해 영화제 기간 동안 백스테이지, 레드카펫, 인터뷰 영상을 틱톡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틱톡 단편 영화제를 신설해 30초~3분 이내의 영상을 공모해 그랑프리(작품상), 각본상, 편집상 부문을 수상한다. 틱톡의 후원을 받는 만큼, 틱톡의 짧은 영상을 칸국제영화제라는 브랜드를 활용해 상을 수여하기로 한 셈이다.

칸국제영화제의 이 같은 선택에 대해 세계 영화계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OTT 영화에 대한 배제로 예전보다 위상이 추락한 칸국제영화제가 새로운 돌파구로 중국의 돈과 숏폼을 선택했다는 반응과 '옥자' 이후 OTT 영화는 초청 자체를 불허하며 시네마 만신전을 지켜왔던 칸국제영화제가 결국은 타협을 하기 시작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

실제 올해도 넷플릭스는 칸국제영화제에 자사 오리지널 영화들을 출품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버라이어티는 칸영화제측과 넷플릭스 사이에서 올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의 출품과 초청 관련 협의가 아직까지 정리되지 않아, 넷플릭스가 칸영화제 출품을 하지 않을 전망이라고 전했다.


칸국제영화제는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노아 바움백 감독의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 등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2편을 경쟁부문에 초청했다. 하지만 영화제 초청작은 극장 상영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프랑스 극장협회의 반발이 거세자 이듬해부터는 OTT영화를 초청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프랑스에선 법적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한 뒤 3년이 지나야 스트리밍을 할 수 있다는 홀드백 기간이 법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칸영화제의 OTT영화 배제 방침은, 영화란 무엇인지에 대한 거센 논쟁을 세계 영화계에 불러일으켰다. 극장에서 상영을 목적으로 제작되는 영상물이 영화라는 정통적인 의견들과 다가올 OTT 플랫폼 시대에는 영화의 정의도 재정립돼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이런 가운데 베니스국제영화제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서비스에서 만든 영화들을 적극 수용해 영화제 위상을 높혔다. 부산국제영화제 등 다른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도 베니스국제영화제를 따라 넷플릭스 영화들을 초청했다. 베니스영화제에서 거장들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을 처음 선보이고 다른 국제영화제들에서 뒤따르는 방식이 세계 영화제의 공식처럼 됐다.

이런 현상은, 소위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주의 감독들의 신작이 더이상 투자가 쉽지 않게 바뀐 세계 영화계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이창동 감독이 '시'로 칸국제영화제에서 시나리오상을 받으면서 토로했던 이제 '시' 같은 영화들은 사라지고 있다는 소감과 닿아있다. 거꾸로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기존 영화시장에서 외면받던 거장들의 영화에 연이어 투자해 위상을 높혔다.

칸영화제 측은 이 같은 현상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자 넷플릭스 등 OTT영화들을 비경쟁 부문으로 초청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2020년에는 스파이크 리 감독의 'Da 5 블러드'를 이런 방식으로 초청하려 했다. 그렇지만 이해 칸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막이 불가능해져서 초청작 리스트를 발표하는 것에 그쳐 실질적인 상영은 없었다.

올해 프랑스 정부가 3년의 홀드백 기간을 15개월로 단축했기에 칸영화제의 변화가 예상됐지만 칸영화제는 전면적인 개혁보다는 틱톡과 제휴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상영이 확정된 '탑 건: 매버릭'을 비롯해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등 초청이 유력한 거장들의 신작들이 있는 만큼, OTT와 타협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하기보다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초토화된 시네마의 위상을 다시 세워 권위를 되찾으려는 전략인 듯 하다.

다만 이런 방침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앞당겨진 플랫폼의 다변화 시대를 제대로 반영하지는 못한 것이라, 칸국제영화제가 영광을 간직한 채 쇠락할지, 고고하게 살아남을지는 지켜봐야 할 듯 하다.

한편 프랑스 정부가 홀드백 기준을 축소하면서 글로벌 OTT회사들에게 내건 조건은 한국 정부가 참고할 만하다. 프랑스 정부는 홀드백 기간을 단축하는 대신 OTT회사가 약 4000만 유로 (약 한화 543억 원)를 투자해 연간 최소 10편의 현지 영화를 제작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에 넷플릭스는 프랑스 영화조합과 프랑스에서 벌어들인 연간 수익의 20%를 프랑스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의 제작에 투자하기로 계약했다. 투자금의 80%는 넷플릭스 프랑스 오리지널 시리즈에 쓰여야 하며, 20%는 극장 개봉 영화에 투자해야 한다. 400만 유로(약 54억원)미만의 저예산 영화에도 일정 금액을 투자하기로 했다.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 제작에 연간 5000억원 이상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지속적인 투자로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등 메가 히트작들이 탄생했다. 그럼에도 한국 콘텐츠 제작사들은 제작비의 10% 미만을 보장 받을 뿐 그 마저도 점점 줄고 있다. 한국 콘텐츠 제작사들이 넷플릭스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OTT회사들의 자국 콘텐츠 투자를 법제화한 프랑스의 정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넷플릭스를 비롯한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회사들의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이렇게 관심이 높을 때 세밀한 정책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어정쩡한 타협과 규제로 힘을 과시하는 낡은 방식이 아닌, 보다 세밀한 정책이 필요한 때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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