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신 모국' 택한 아프리카 선수들, 네이션스컵 숨은 키워드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2.01.26 14:31 / 조회 : 6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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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한국시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기니와 조별리그 경기에 출전한 세네갈 대표팀의 사디오 마네(왼쪽). /AFPBBNews=뉴스1
유럽 축구 강국의 대표팀에는 아프리카 혈통의 선수들이 많다. 이들 중에는 한 국가를 대표하는 축구 스타도 꽤 있다. 프랑스의 킬리앙 음바페(23·파리 생제르맹)나 벨기에의 로멜로 루카쿠(28·첼시)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는 반대로 아프리카 축구 국가대표팀에는 유럽에서 나고 자란 아프리카계 선수들이 매우 많아졌다. 세네갈과 알제리와 같이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국가에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 프로축구에서 활약하는 자국 혈통의 선수가 특히 많다.

흔히 이들을 프랑스어로 '비나쇼노(Binationaux·이중국적자들)'라고 부른다. 이 표현은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1962년 이후 최초로 열린 양국 대표팀간 축구 친선경기 때 널리 알려졌다. 당시 알제리 대표팀에는 프랑스에서 출생한 알제리계 선수 6명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아프리카 컵 오브 네이션스(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대회에서도 '비나쇼노' 선수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지난 2019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알제리의 선수 구성을 보면 이런 면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23명의 알제리 선수들 가운데 무려 14명은 프랑스에서 출생한 이들이었다.

기본적으로 유럽에서 출생한 아프리카계 축구 선수들은 출생한 국가의 대표 선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부모 혈통에 따라 아프리카 국가의 대표 선수도 될 수 있다. 대부분 출생 국가의 대표 선수가 되는 걸 1순위로 생각한다. 하지만 유럽 국가의 대표 선수가 되는 게 힘들다고 판단되면 대안으로 아프리카 국가를 선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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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의 모로코계 선수 하킴 지예흐(위). /AFPBBNews=뉴스1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네덜란드에서 출생한 모로코계 선수 하킴 지예흐(28·첼시)는 네덜란드 축구 청소년 국가대표로 활약했으며 성인 국가대표 선발 가능성도 높았다. 하지만 지예흐는 모로코를 선택했다.

아프리카 축구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비나쇼노'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유럽 클럽 시스템을 일찍 경험한 선수들이라 기본기 훈련이 잘 돼 있고 전술적 이해도도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체계적인 트레이닝과 충분한 영양 공급을 통해 체력적인 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유럽에서 자국 혈통의 선수들을 데려오기 위해 공을 들이는 것은 이제 아프리카 축구에서 일상적인 일이 되고 있다. 2021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8강에 진출한 모로코는 스페인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인 무니르 엘 하디디(26·세비야)를 대표팀으로 뽑기 위해 노력했다. 모로코 축구협회는 지난 2018년 엘 하디디의 국적 변경을 신청했지만 FIFA(국제축구연맹)가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FIFA는 바뀐 규정을 적용해 2021년 그의 국적변경을 허용했다. 엘 하디디는 21세가 되기 이전에 오직 1번만 스페인 성인 국가대표팀에 차출됐다는 점이 중요했다. FIFA가 내놓은 새로운 규정은 21세 이전까지 성인 국가대표팀에 3회 이상 차출된 선수가 아니라면 국적 변경이 가능하게 돼 있다. 모로코 축구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는 아슈라프 하키미(23·파리 생제르맹)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출생한 '비나쇼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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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골키퍼 에두아르 멘디. 세네갈 대표팀으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 중이다. /AFPBBNews=뉴스1
카메룬에서 열리고 있는 2021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의 숨은 키워드 역시 이들 '비나쇼노'다. 출전국 가운데 '비나쇼노 효과'를 가장 크게 기대하고 있는 팀은 단연 세네갈이다.

세네갈은 26일(한국시간) 펼쳐진 네이션스컵 16강 경기에서 키보베르데를 2-0으로 제압하고 8강에 올랐다. 세네갈의 핵심 선수는 사디오 마네(29·리버풀)와 골키퍼 에두아르 멘디(29·첼시)다. 이 가운데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아프리카 출신 골키퍼로 평가 받는 멘디는 프랑스에서 출생해 성장한 '비나쇼노'다.

여기에 측면 수비수 보우나 사르(29·바이에른 뮌헨)와 수비형 미드필더 파파 게예(23·올랭피크 마르세유)도 프랑스와 세네갈 이중국적이었지만 세네갈 국가대표팀에서 뛰게 된 선수다.

세네갈이 프랑스나 다른 유럽 리그에서 뛰고 있는 '비나쇼노' 영입에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알리우 시세(45) 감독과 관련이 있다. 시세 감독은 세네갈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성장해 프랑스 리그에서 활약했던 '비나쇼노'다. 그는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전에서 세네갈이 프랑스를 꺾는 대이변을 연출했을 때 세네갈 주장으로 뛰었던 선수이기도 하다.

2015년 세네갈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시세 감독은 최상의 대표팀 선수 구성을 위해 '프렌치 커넥션'을 최대한 활용해 숨어 있는 '비나쇼노'를 영입하기 위해 노력했고 상당한 성과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적극적인 '비나쇼노' 영입 정책으로 사상 최초의 네이션스컵 우승에 도전 중인 세네갈 축구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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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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