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쪽 찐 머리에 소복 입은 권유리, 소녀시대 너머 배우로 [★FULL인터뷰]

2021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2021 Asia Artist Awards) 베스트 연기상 수상자 권유리 인터뷰

윤성열 기자 / 입력 : 2022.01.22 11:20 / 조회 : 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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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AAA 베스트 연기상 권유리 인터뷰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이렇게 연기를 잘 했나?" 지난해 종영한 MBN 드라마 '보쌈-운명을 훔치다'(이하 '보쌈')에 뒤늦게 빠져 며칠간 몰아보기를 했다.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직 배우로서 여물지 않은 '연기돌' 권유리(33)가 사극에 잘 어울릴까 의심부터 들었다. 하지만 이런 촌스러운 편견은 금세 깨져버렸다. '보쌈'에서 조선시대 애처롭고 처연한 옹주의 삶에 녹아든 권유리. 작품 속 혼신의 연기를 보여준 그녀는 '2021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이하 '2021 AAA') 베스트 연기상을 수상했다. 소녀시대 '유리'가 아닌 연기자 '권유리'로 이뤄낸 값진 결과였다.


"상 받고 돌아가는 길에 펑펑 울면서 감독님에게 전화드렸더니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하하하."

그는 시상식장을 떠나고 나서야 참았던 눈물을 쏟았단다. 지난 10일 서울 성수동 SM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난 권유리는 '2021 AAA' 트로피를 만지며 '보쌈'을 이끈 권석장 감독을 떠올렸다. '보쌈'은 권유리의 첫 사극 도전작. 스스로도 반신반의했지만, 권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이 권유리에게 붙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놨다.

"처음엔 저도 쪽 찐 머리에 하얀 소복을 입은 제 모습이 카메라에 어떻게 비칠지 불안하고 의심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걱정하지 마라. 이미 넌 수경이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연기도 많이 봐 주셨고요. 덕분에 한시름 걱정을 덜고 현장에서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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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AAA 베스트 연기상 권유리 인터뷰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감사한 2021년..좋았던 일 대부분 '보쌈' 통해 일어나"


권유리는 매해 연말이면 한 해를 정리하며 지난 시간을 하나하나 돌이켜본다. 권유리는 "올해는 안 좋았던 일보다 좋았던 일이 3페이지나 더 많더라"며 "정말 감사한 한 해를 보냈다. 대부분 좋은 일들이 '보쌈'을 통해 일어났다. '2021 AAA' 상을 받았던 일도 밑줄을 그어놨을 만큼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라고 전했다.

'보쌈' 속 그는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신분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화인옹주 '수경'의 삶을 살았다. 극 중 광해군의 딸 수경은 정치적 밀약으로 아버지의 숙적 이이첨(이재용 분)의 아들과 혼약을 맺지만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첫날밤을 치르지 못하고 청상과부가 된 인물이다. 유교적 질서 체계가 엄한 조선시대에 청상과부라니, 평소 K팝 스타로서 화려하고 발랄한 이미지가 강했던 권유리에게 '보쌈'은 큰 도전이었다. 권유리는 '"보쌈'은 배우로서 내게 터닝포인트였던 작품"이라며 "시청자에게 새로운 면모를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전했다. 꼼꼼하게 캐릭터를 해석한 권유리는 옹주로서 온화한 기품과 강인한 기백을 오가는 수경의 매력을 이질감 없이 연기했다.

"예쁘고 아름다워 보이는데 집중하기 보다는 최대한 수경이 갖고 있는 성격이나 상황이 잘 묘사되길 바랐어요. 청상과부의 슬픔을 안고 3년 동안 소복만 입고 살았던 저 여자가 갖고 있는 사연이 잘 드러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단아하고 깨끗한 옹주의 모습이 수채화처럼 그려져서 배경과 잘 어우러졌어요. 그게 감독님이 생각한 큰 그림이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제가 화려하게 겉모습에 치중했더라면 캐릭터에 누를 끼쳤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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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드라마 '보쌈-운명을 훔치다'에 출연한 권유리 /사진=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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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드라마 '보쌈-운명을 훔치다'에 출연한 권유리/사진=SM엔터테인먼트
'보쌈' 촬영이 끝난지 7개월이 흘렀지만, 극 중 수경이 삶을 비관해 오열하며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3회 엔딩씬은 여전히 권유리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다.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던 옹주가 주체적인 인물로 변화하기 전 마지막 장면이었어요. 대본을 읽으면서도 저도 모르게 서늘한 감정선이 느껴졌었죠. 그래서 더 잘 소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들었던 것 같아요."

'보쌈'은 생계형 보쌈꾼 바우(정일우 분)가 실수로 수경을 보쌈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후 계획에도 없던 한집 살이를 하게 된 수경과 바우, 그리고 성균관 유생 이대엽(신현수 분)의 흥미로운 삼각 관계가 펼쳐졌다. 극 중에선 수경이 보쌈을 당하지만, 권유리가 오히려 누군가를 보쌈할 수 있다면 정일우를 선택했을까? "저는 차돌이(고동하 분)를 보쌈하면 안 되나요? 너무 귀엽잖아요. 하하. 어린데도 성숙하고 현명한 캐릭터라 같이 다니면 그릇된 선택을 안 할 것 같아요. 그런데 보쌈을 당해 보니까 보쌈을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보쌈 주머니 안에 있을 때 너무 답답했어요. 재갈을 문 상태로 있어야 하니까 정말 끔찍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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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AAA 베스트 연기상 권유리 인터뷰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19살에 소녀시대 데뷔.."30대부터 정체성 고민"

수경은 왕족으로 태어나 주어진 운명에 수긍하며 살았지만, 바우를 만나 미래를 직접 개척하는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권유리는 그런 수경과 자신의 삶이 제법 닮았다고 했다.

"12살에 SM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고 19살에 데뷔를 했어요. 성장기 때는 그렇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최선을 다해 살았던 것 같아요. 물론 시간을 돌이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있을 것 같아요. 성인이 된 20대에는 거의 팀 활동을 했고 30대가 됐을 시점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어요. 개인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좀 더 많이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거나 잘 해낼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면서 주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죠. 그게 수경이나 저한테도 보통 사람의 삶의 속도보다 더디었던 것 같아요. 보통은 성인이 되면 독립하기 마련인데, 저는 30대가 돼서야 비로소 조금씩 알아갔던 것 같아요."

권유리는 2001년 SM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 '댄스짱' 출신이다. 2007년 소녀시대 멤버로 데뷔해 연기 활동에 병행하고 있는 그는 "유년기에는 탤런트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막연하게 갖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권유리는 2010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 후 드라마 '동네의 영웅',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 '피고인', '대장금이 보고있다', 영화 '노브레싱',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연기 경험을 쌓았다.

"SM은 가수 육성으로 유명한 회사니까 그 길이 먼저 열렸고 자연스럽게 소녀시대 팀원이 됐어요. 그룹 생활을 하다 보니까 정작 제가 하고 싶었던 것에 대해 고민할 틈도 없이 빠르게 시간이 지나가 버렸죠. 그래도 저도 모르게 마음 속 깊은 곳에 '저런 연기를 해보고 싶다. 저런 캐릭터가 되어 보고 싶다'고 본능적으로 끌렸던 것 같아요. 가수 활동하면서도 대학에서 연기 공부를 했고, 졸업하고 연극 무대에 서게 되면서 좀 더 명확해진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준 가장 큰 백그라운드이자 고향은 소녀시대에요. 때문에 그 시간을 배제하고 제 삶을 생각할 순 없어요. 소녀시대는 제 삶에 너무 큰 영향을 줬고, 지금도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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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AAA 베스트 연기상 권유리 인터뷰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소녀시대 단톡방 활발..티파니·수영 지분 多"

소녀시대 멤버들은 현재 개별 활동에 치중하고 있지만, 여전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단체 대화방(단톡방)에선 권유리의 사극 열연에 멤버들의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고. 권유리는 "평소에도 (단톡방이) 엄청 활발하다"며 "또래 소녀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일반적인 얘기들을 많이 한다. 다들 강아지를 키우고 있어서 강아지 얘기가 주를 이룬다. 되게 좋은 영상이나 도움이 될만한 콘텐츠나 아이디어를 같이 공유하고 맛집도 자주 얘기한다"고 전했다.

"사실 연기나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아요. 주로 가벼운 얘기를 해요. 어떻게 해냈을지 아니까…세세한 코멘트를 하기 보다는 믿고 응원해줘요. 응원도 말보다는 행동으로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윤아가 영화를 하면 매니저에게 물어 봐서 미리 스케줄 빼놓고 다같이 보러 가는 거죠."

단체 대화방에서 가장 지분이 많은 멤버는 누굴까. "티파니가 거의 대부분이에요. 수영이도 많아요. 효연이는 가장 늦게 보는 것 같아요. 하하. 서현이도 요즘 촬영이 많아서 늦게 보고요. 저도 많이 말하는 편은 아니에요. 눈팅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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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권유리가 지난해 12월 2일 오후 서울 강서구 등촌동 KBS 아레나에서 열린 2021 Asia Artist Awards (2021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 2021 AAA) 시상식에서 AAA 베스트 연기상을 수상하고 소감을 전하고 있다. 스타뉴스가 주최하고 AAA 조직위원회가 주관하는 AAA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무대를 선보이며 전 세계 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명실상부 NO.1 글로벌 시상식으로 거듭났다. /사진=AAA 기자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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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AAA 베스트 연기상 권유리 인터뷰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연기에 '진심'인 그녀는 차기작으로 독립영화 '돌핀'을 택했다. '돌핀'은 가족밖에 모르던 마을 지킴이 '나영'이 볼링의 매력에 빠져 올인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 촬영은 이미 마쳤다. "영화에 대한 꿈은 지금도 갖고 있다"는 권유리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표현이 좀 더 자유로운 독립영화만의 작업 방식이 궁금해 참여해 보고 싶었다"며 "창작을 하는 무리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런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권유리는 MBC 걸그룹 멤버 선발 프로그램 '방과후 설렘'에도 출연 중이다. 멘토 격인 담임 선생님 역을 맡아 10대 참가자들에게 아낌 없는 조언과 노하우를 전달하고 있다. 권유리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 (출연 섭외가 왔을 땐)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웠다"며 "그런데 내가 가진 것들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싶은 꿈을 가진 친구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저도 현직 아이돌이기 때문에 충분한 연습시간을 거치며 느꼈던 것들을 그 누구보다 공감해줄 자신이 있었거든요. 심사위원이면 정중하게 거절했을텐데 멘토 역할을 하는 포맷이라 용기를 내서 할 수 있었어요. 요즘 10대 친구들 중엔 소녀시대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아직도 'ING'(활동 중)인 소녀시대로서 모습도 10대 친구들과 같이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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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AAA 베스트 연기상 권유리 인터뷰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소녀시대 올해 15주년 "어떤 형태로든 팬들 앞에 설 것"

'다시 만난 세계', '지'(Gee), '소원을 말해봐', '더 보이즈'(The Boys) 등 다수의 히트곡을 남기며 가요계 최정상에 군림한 소녀시대는 2017년 8월 정규 6집 '홀리데이 나이트'(Holiday Night)를 끝으로 전속계약이 만료됐고, 일부 멤버들의 소속사가 나뉘면서 잠정 휴업 상태가 됐다. 권유리는 '2021 AAA'를 화려하게 수놓은 동료 가수들의 무대를 지켜보면서 감회가 남달랐다고 했다.

"되게 묘했어요. 원래 팀원들과 자주 가는 시상식이었는데 이번엔 저 혼자 갔으니까요. 촌스럽게 긴장도 많이 되고 심장도 쿵쾅거리더라고요. 하하."

소녀시대 8명의 재결합은 언제쯤 이뤄질까. 소속사가 달라진 만큼 스케줄 조율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르지만, 멤버들이 여전히 별다른 구설수 없이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권유리는 "소녀시대로 다시 모였을땐 충분히 성장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각개 전투로 각자의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동했으니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좀 더 (컴백을) 구체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스케줄 조율이 어려워서 시간이 좀 걸리지만, 각자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단톡방에서 공유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소녀시대는 올해 데뷔 15주년을 맞는다. 지난해는 14주년을 기념해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통해 완전체로 뭉쳐 팬들을 기쁘게 했다. 15주년엔 팬들에게 어떤 깜짝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까. 권유리도 '소녀시대의 흑진주'로 다시 반짝반짝 빛날 날을 기대하고 있다.

"제 개인적으론 어떤 형태로든 팬들 앞에 서고 인사드릴 것 같아요.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소녀시대에게도 소원(소녀시대 팬덤)에게도 의미 있는 기념비적인 시간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인사드리는 자리를 마련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윤성열 기자 bogo10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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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AAA 베스트 연기상 권유리 인터뷰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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