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있었다"... 끝내 태극마크 못 달고 떠나는 '느림의 미학'

잠실=양정웅 기자 / 입력 : 2022.01.21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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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은퇴를 선언한 두산베어스 유희관이 20일 서울 잠실야구장 구내식당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구장 마운드에 무릎을 꿇어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뉴시스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가졌던, '유희관(36)은 국제무대에서 통할까?'라는 질문은 끝내 확인할 수 없게 됐다.

유희관은 2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뽑혔다면 자신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쉽다"며 국가대표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현역 시절에 대해 말했다.


지난 2009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유희관은 군 전역 후 2013년 10승을 시작으로 8년 연속 10승이라는 금자탑을 달성했다. 이런 활약 속에 지난해 장호연(62)에 이어 두 번째로 두산에서만 100승을 거둔 선수가 됐다.

그러나 그는 프로 데뷔 후 단 한 번도 태극마크를 단 적이 없다. 2007년 야구월드컵, 2008년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했을 뿐 아시안 게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올림픽 등에는 발을 들이지 못했다.

문제는 느린 구속이었다. 제구력과 타이밍 싸움으로 타자를 요리하는 유희관이 국제무대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 때문에 유희관은 2017년 제4회 WBC에서 예비 엔트리에 든 것을 제외하면 아예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가 뽑힌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의 아시아 예선격으로 열렸던 2007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는 똑같이 구속이 빠르지 않았던 '흑마구' 전병호(49)가 선발됐다. 당시 전병호는 올림픽 진출 여부가 달린 일본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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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유희관의 투구 모습. /사진=뉴시스
본인은 "제 공이 느렸기 때문에 어느 정도 통할지 의견이 많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도 "아쉬움은 있지만 제가 부족해서 못 뽑혔다고 생각한다"며 겸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고 해서 유희관을 저평가할 수는 없다. 유희관은 "주변에서도 그렇고 모든 분들이 1~2년 하면 안 될 거라는 말을 많이 했다. 남들 모르게 노력했고, 좋은 팀을 만나 편견을 깼다"며 자신의 현역 시절을 돌아봤다. 그는 편견 속에서도 KBO 리그 32명 밖에 없는 100승 투수가 됐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어보지 못하고 은퇴하지만 유희관은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그는 "어디에서 다른 일을 하더라도 그곳의 대표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선수 시절의 한을 제2의 인생에서 풀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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