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룩 업' 어찌 하늘이 무너지냐라는 사람들에게 [★날선무비]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22.01.09 10:00 / 조회 : 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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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돈 룩 업' 스틸. 이 한 장의 사진이 얼마나 웃픈 장면인지는 영화를 끝까지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기사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 봐라"(룩 업) vs "하늘을 올려다보지 마라"(돈 룩 업)

단순한 말이지만 단순하지 않습니다. 넷플릭스에서 12월 24일 공개된 뒤 94개국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로 기록된 '돈 룩 업'은, 매우 복잡한 뜻을 이 단순한 말에 담았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느날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와 담당 교수 랜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태양계 내 궤도를 돌고 있는 혜성이 지구와 직접 충돌하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합니다. 에베레스트산 만한 혜성이 지구에 부딪히면 모든 생명체가 죽고 말 터.

둘은 백악관에 이 같은 사실을 보고하지만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과 그녀의 아들이자 비서실장 제이슨(조나 힐)은 무관심합니다. 당장 대통령은 자신의 남자친구를 대법관에 임명시키려다 그가 과거 포르노채널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공개돼 정치적인 위기에 몰린 상황입니다. 지구를 파괴할 지 모르는 혜성이 온다는 소식보다는 눈앞의 정치적인 이슈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 랜들 박사와 케이트가 명문대가 아니라는 것도 그들이 무시 당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기까지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랜들 박사와 케이트는 언론의 힘을 빌어서라도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인기가 높은 인기 프로그램 '더 데일리 립'에 출연하지만, 세상은 인기 연예인 커플의 결별과 재결합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랜들 박사는 섹시하다고 SNS에서 화제가 되긴 합니다. 메시지보다는 외모인거죠.

그러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위기에 몰린 대통령이 이들을 이용하려 합니다. 지구 궤도로 오고 있는 혜성에 핵미사일을 쏴서 궤도를 바꾸려 합니다. 전 지구적인 이벤트를 벌입니다. 자고로 내치에 문제가 생기면 외치로 눈을 돌리게 하는 법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성대하게 발사까지 한 미사일이 되돌아 옵니다. 최첨단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회사 배시의 최고경영자 피터 이셔웰(마크 라이언스)의 한 마디 때문입니다. 올리언 대통령에게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대는 그는, 혜성에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 광물들이 담겨 있다며 궤도를 되돌리기보다는 그걸 조각조각내 바다로 떨어뜨린 뒤 그 돈으로 세상을 구하자고 제안합니다. 자신의 회사 배시가 그걸 해낼 수 있다며.

이제 세상은 반으로 갈라집니다. 지금이라도 혜성의 궤도를 바꿔야 한다는 측과 혜성으로 번 돈으로 지구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자는 측으로. 어떤 이들은 혜성이 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가짜뉴스라고 믿습니다. 혜성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말이죠. 이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지구로 다가오는 혜성이 보입니다.

랜들 박사와 케이트는 사람들을 규합해 제발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합니다. 대통령 측은 그런 사람들의 말에 속지 말라며 하늘을 보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편가르기를 우습게 여기듯 혜성은 점점 더 지구로 다가옵니다.

'돈 룩 업'은 '빅 쇼트' '바이스' 등을 연출한 아담 맥케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블랙코미디영화입니다. 줄거리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세상을 재치있게 비꼬아 쓴 웃음을 자아냅니다. '돈 룩 업'의 혜성은 기후 위기를 풍자한 것으로 읽힙니다. 기후 위기가 점점 더 심각해지니 지금이라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쪽과 기후 위기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을 뿐더러 기술로 해결이 된다는 쪽의 이야기. 많이 듣던 이야기입니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올리언 대통령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세라 페일린 전 알라스카 주지사가 연상됩니다. 자식을 비서실장으로 만들었으니 트럼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죠. 정치적인 편가르기로 두 조각이 난 미국이 떠오릅니다. 피터 이셔웰은 일론 머스크와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를 섞어놓은 듯 합니다.

비단 기후 위기 뿐 아닙니다. 혜성을 코로나19 백신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쪽과 안티백서, 그리고 무수한 음모론들까지 충분히 '돈 룩 업'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뿐일까요? 지구가 곧 망할 지 모른다는 뉴스보다는 연예인의 결별과 재결합이 더 많은 관심을 모으는 세상. 심각한 뉴스도 가볍게 전달하려는 언론과 가벼운 것만을 소비하는 SNS.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는 세상이다보니 열심히 진실을 이야기해도 하늘 한 번 올려다보라는 것도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런 세상을 '돈 룩 업'은 절묘히 꼬집습니다. 혜성이 다가오는 데 대책으로 가장 잘 팔리는 게 삽이니깐요.

아마도 '돈 룩 업'이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 넷플릭스 구독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건, 어느 나라나 비슷한 처지이니 그런가 봅니다. 결코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재밌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비롯해 제니퍼 로렌스, 매릴 스트립, 롭 모건, 조나 힐, 마크 라이언스, 티모시 샬라메, 아리아나 그란데 등 쟁쟁한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출연한 것도 이런 영화의 의미와 재미에 반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잘 만든 블랙코미디는 좋은 블랙커피와 비슷합니다. 깊은 풍미와 향으로 잠든 뇌를 깨우지만 씁니다. '돈 룩 업'은 재밌지만 씁니다. 영화가 끝나도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깐요.

어느 나라나 편가르기가 심합니다. 한편으로는 비관론자와 낙관론자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기후 위기가 지구를 망하게 한다는 비관론자와 기후 위기는 기술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낙관론자, 백신을 맞지 않으면 자신 뿐 아니라 주위가 위험하다고 믿는 비관론자와 백신이 안전하다고 믿어질 때까지 접종을 늦추겠다거나 자신은 걸리지 않을 것이며 걸려도 무사할 것이라 믿는 낙관론자.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비관론자와 지금까지도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우리끼리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낙관론자.

원래 사람은 잘 안 바뀝니다. 세월이 바뀔 뿐이죠. 지금 낙관하는 것도, 비관하는 것도, 세월이 바뀌면 당연해질 겁니다. 단지 그동안 무모한 낙관론자로 살 것인지, 행복한 비관론자로 살 것인지가 남았을 뿐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건, 근거없는 낙관은 그 사람을 죽게 만듭니다. 유튜브 음모론을 구독하는 대신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을 해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돈 룩 업'은 행복한 비관론자의 이야기입니다. 쿠키영상까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022년에는 행복한 비관론자 이야기가 더 들리길 바라봅니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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