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우리아스 만들겠다' 복지보다 야구에 올인하는 대통령이 있다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1.11.30 12:06 / 조회 : 7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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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출신으로 2021 내셔널리그 다승왕에 오른 LA 다저스의 훌리오 우리아스. /AFPBBNews=뉴스1
한 국가의 지도자가 그 나라의 스포츠 선호도를 바꿀 수 있을까. 최근 멕시코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주시하면서 세계 주요 언론이 던진 질문이다.


멕시코는 한국, 일본과 함께 축구와 야구 종목이 '국민 스포츠'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대표적 국가이다. 예외적인 시기는 있었지만 최근까지 멕시코에서는 대체적으로 축구가 야구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18년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68)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이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열혈 야구팬이다. 그는 멕시코 내에서도 야구 인기가 높은 타바스코 주에서 학창시절 지역 야구팀의 중견수로 활약한 바 있으며 MLB(미국 프로야구) 구단 가운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광팬이다. 주변 사람들은 야구에 흠뻑 빠져있던 그를 '아메리칸(미국인)'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집권 후부터 시작된 그의 야구 진흥 프로젝트는 노골적이었다. 정부 차원에서 긴축재정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그는 아동복지와 의료 부문 예산을 삭감했다. F1 자동차 레이스와 아메리칸 풋볼 이벤트 개최를 위한 정부 투자 비용도 대폭 줄였다.

하지만 대통령이 사랑하는 스포츠 종목인 야구는 예외였다. 그는 프로베이스라고 이름 붙인 정부 산하 야구진흥기관을 설립했고 야구 유망주 발굴과 육성을 위한 8개의 대규모 야구 아카데미 등의 설립을 위해 1900만 달러(약 227억 원)를 쏟아 부었다.


2019년 그는 수도인 멕시코 시티에 위치한 디아블로스 야구장 개장 기념 경기에 시구도 했다. 이는 72년 만에 처음 이뤄진 멕시코 대통령의 시구여서 화제가 됐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 발전을 위한 청사진도 내놓았다. 그는 2개 지역 리그로 나뉘어져 있는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를 26개 팀이 경쟁하는 하나의 리그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미국과 인접한 멕시코 북부에 집중돼 있는 야구 인기를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통합리그 체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대통령이라기보다 멕시코 야구를 이끄는 '야구 대통령'의 이미지가 강한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야구 진흥 정책은 성공적이었다.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의 관중 수는 코로나19의 영향을 받기 직전 시즌인 2019년에 30%나 상승했다. 꽤 많은 멕시코 프로야구 팀들은 입장권 수입뿐 아니라 경기장 내에서 맥주와 음식 판매 수입이 동반 상승해 재정적 위기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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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라도르(가운데) 멕시코 대통령이 지난 2019년 3월 멕시코 시티의 디아블로스 야구장 개장 기념 경기에서 시구를 한 뒤 인사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2020년부터 불어닥친 코로나19 사태에 멕시코 정부의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국민들은 야구에만 투자하고 의료복지 예산을 삭감했던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정책에 반기를 내걸기도 했다.

그럼에도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야구 진흥 정책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야구를 통해 멕시코 경제가 재건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멕시코 출신 메이저리거의 숫자에 관심이 지대했다. 멕시코 출신 메이저리거가 더 많이 배출될수록 멕시코 유소년 야구가 활성화되고 궁극적으로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도 산업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는 멕시코 출신 메이저리거 숫자를 늘리기 위해 멕시코 프로야구 팀이 MLB 팀으로 이적한 소속 선수에 대해 과도한 보상금을 요구했던 관행을 철폐했다. 당시 멕시코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 1명을 데려오기 위해 MLB 팀이 부담해야 했던 비용은 도미니카공화국 리그 소속 선수 5명을 데려오는 비용과 엇비슷했다.

대통령의 의지 덕분인지 2020년 10명에 불과했던 멕시코 출신 메이저리거의 숫자는 2021년 18명으로 늘어났다. 자연스레 더 많은 멕시코 청소년들은 메이저리거의 꿈을 위해 유소년 팀을 찾게 됐다. 그들의 목표는 2021년 내셔널리그 다승왕을 차지한 훌리오 우리아스(25·LA 다저스)처럼 되는 것이다. 비만과 마약 관련 청소년 범죄 퇴치가 국가적 과제인 멕시코에서 야구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진 이유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목표는 그가 퇴임하게 될 2024년까지 적어도 50명 이상의 멕시코 출신 메이저리거를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의 또다른 꿈은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가 1940년대의 영광을 되찾게 하겠다는 것이다. 1947년까지 MLB에서는 흑인 선수가 뛰지 못했기 때문에 니그로 리그의 스타급 선수들은 멕시코 리그에서 활약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 일으켰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2018년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야구로 새로운 기회를 줄 것이며 멕시코의 범죄 카르텔 조직을 삼진으로 잡아내겠다고 공언했다. 이제 3년 정도 남은 그의 임기 동안 과연 이 두 가지 공약을 지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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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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