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표./사진=KT 위즈 |
이강철 KT 감독은 지난 13일 2021 KBO리그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1차전 선발로 윌리엄 쿠에바스(31)를 예고하면서 "고영표는 선발 쪽에서 빠져있다"라고 말했다.
쿠에바스가 한국시리즈 1선발을 맡은 것은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을 상대로 한 8이닝 1실점 호투와 올해 삼성과 1위 결정전에서 7이닝 무실점 쾌투를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다. 10월 성적 역시 5경기 평균자책점 2.16으로 좋았다.
하지만 고영표를 선발이 아닌 불펜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다소 의외의 선택이다. 단기전에서 선발 자원을 불펜으로 기용하는 일 자체는 흔한 일이다. 3선발 이하가 약한 탓에 에이스를 한 번이라도 더 기용하고 싶을 때나, 선발에 비해 불펜이 미덥지 못한 경우에 발생한다.
그러나 올해 KT는 두 가지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후반기 들어서는 쿠에바스(9승 4패 평균자책점 4.12)-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13승 10패 평균자책점 3.39)-소형준(7승 7패 평균자책점 4.16)-고영표(11승 6패 평균자책점 2.92)-배제성(9승 10패 평균자책점 3.68)-엄상백(4승 1패 평균자책점 4.10)으로 KBO리그에선 보기 드문 6선발 체제를 자랑했다. 선발 평균자책점은 3.69로 리그 1위였다.
불펜도 마찬가지였다. 김재윤(65경기 32세이브 평균자책점 2.42)-주권(27홀드 평균자책점 3.31)-김민수(56경기 11홀드 평균자책점 2.95)가 이끄는 KT 불펜진은 팀 평균자책점 3.66으로 리그 2위였다. 에이스를 한 번 더 기용하고 싶다면 고영표가 빠져서는 안됐고, 불펜이 부실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불펜으로 향한 것이 왜 하필 고영표였을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고영표./사진=KT 위즈 |
소형준의 정규 시즌 불펜 경험이 2경기밖에 없는 점과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도 선발로 더 좋은 성과를 낸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두산과 플레이오프에서 소형준은 선발로 나선 1차전은 6⅔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쳤지만, 불펜으로 나선 4차전은 2⅓이닝 1실점이었다.
두 번째로는 소형준과 고영표의 두산 상대 전적이다. 소형준은 올해 두산을 상대로도 3경기 2승 무패 평균자책점 1.00으로 매우 강했다. 지난해 두산과 플레이오프에서도 1차전 선발로 나서 6⅔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반대로 고영표의 올해 두산전 공식 기록은 4월 13일 6이닝 3실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5월 20일 우천 취소된 경기가 빠져있다. 이날 고영표는 3이닝 6실점으로 크게 무너졌었다. 올 시즌 막판 상대 전적을 중시했던 이강철 감독의 성향까지 생각한다면 소형준 선발 카드는 합리적이다.
마지막으로 '멀티 이닝' 불펜 에이스의 활약이 돋보이는 올해 가을 야구 경향성 때문이다. 이번 포스트시즌은 올림픽 브레이크 등 여러 이유로 11월부터 시작됐다. 추운 날씨와 더불어 비까지 내리는 탓에 선발 투수들이 일찍 내려오는 등 변수가 많아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멀티 이닝 불펜 에이스가 필요해졌다. 두산의 홍건희(29), 이영하(24)가 대표적인 사례다. 홍건희와 이영하는 어떤 상황에서든 올라와 안 좋은 흐름을 끊어냈고, 분위기를 가져왔다.
KT에서는 고영표가 그 역할에 제격이다. 멀티 이닝 소화 자체는 배제성, 엄상백, 이대은 등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에이스 고영표가 불펜으로 등판한다면 상대가 받는 압박도 배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