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워싱' 비판 속 사우디 자본에 열광하는 뉴캐슬 팬들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1.10.21 15:17 / 조회 : 4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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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팬이 지난 18일(한국시간) 뉴캐슬-토트넘전이 열린 세인트제임스파크에서 아랍풍의 두건을 쓴 채 웃고 있다. /AFPBBNews=뉴스1
중동 부호와 러시아 석유재벌 등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등 유럽 프로축구단 인수는 하나의 확실한 트렌드가 됐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해외 큰 손들의 투자가 유럽 축구의 지형도를 바꾸면서 이에 대한 찬반도 엇갈리고 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이들의 구단 인수가 전체 리그 발전에 긍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특히 해외자본의 투자가 가장 활발했던 EPL은 크게 영향을 받으며 리그 평준화에도 기여했다.

유럽 5대 빅 리그 가운데 EPL 우승 팀을 맞추기가 가장 어렵게 된 것도 평준화와 관련이 깊다. 최근 20년 간 첼시, 맨체스터시티, 레스터시티 등의 급부상이 있었기 때문에 EPL의 판도가 다변화될 수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승 트로피에 대한 강한 열망 속에서 이뤄진 해외 자본의 무분별한 유명 선수 스카우트로 유럽 프로축구의 빈익빈 부익부를 가속화시켰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여기에 유럽 프로축구단 인수를 결정한 해외 오너들의 의도가 정치적이라는 의구심 때문에 해외 자본의 유럽 시장 침투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이들도 꽤 많다.

지난 11일(한국시간)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EPL 구단인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인수하자 이같은 부정적 시각은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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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AFPBBNews=뉴스1
PIF는 3억 파운드(약 4891억 원)에 뉴캐슬 유나이티드 구단 주식 80%를 매입했다. PIF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국고를 늘리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국가 펀드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석유가 고갈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PIF를 설립, 전체 국가 수입에서 석유 수출을 통해 얻는 비율을 점진적으로 줄이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래서 PIF는 제약회사 화이자, 디즈니, 페이스북, 우버, 스타벅스 등 글로벌 기업에 적지 않은 투자를 했다. 이처럼 이미 PIF는 국제 투자 업계에서 큰 손 중의 큰 손이다.

실제로 PIF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투자한 이유도 뉴캐슬이 위치한 영국 북동부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풍력 발전에 대한 관심에서 촉발됐다. 풍력 발전 사업에 투자하기에 앞서 지역민들과의 유대감 형성을 위해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인수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 국가 펀드의 실질적 운영자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인 모하메드 빈 살만(36)이라는 점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2018년 사망) 살해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우디의 실권자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이를 전면적으로 부인했지만 2019년 UN(국제연합) 리포트는 "카슈끄지의 죽음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책임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양성평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사형제도 등으로 인권 문제에 있어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국가다. 이 때문에 빈 살만 왕세자가 뉴캐슬 구단을 인수한 배경에도 안 좋은 국가 이미지를 스포츠로 세탁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비판이 많다. 국제사면위원회도 최근 중동 국가들의 유럽 프로축구 클럽 인수와 관련해 '스포츠 워싱(sportswashing·스포츠를 통한 국가 이미지 세탁)'의 일환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추가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뉴캐슬 유나이티드 인수를 통해 의도한 것은 월드컵 개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30년 월드컵 개최지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FIFA(국제축구연맹)가 추진하고 있는 월드컵 2년 주기 개최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제안을 통해 시작됐다. 2년마다 대회가 열리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월드컵 개최가 더욱 쉬워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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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세인트제임스파크 전경. /AFPBBNews=뉴스1
대외적인 논란에도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의 뉴캐슬 인수는 지역 팬들에게는 희소식으로 비쳐지고 있다. 개인재산 1200조 원에 달하는 빈 살만 왕세자의 지원 속에 뉴캐슬의 전성기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맨체스터와 함께 산업혁명의 중심지였으며 과거 영국 조선산업을 이끌었던 뉴캐슬은 그 어떤 잉글랜드 도시보다 열혈 축구 팬이 많은 곳이다. 독특한 발음과 액센트로 유명한 영국 북동부 타인사이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을 칭하는 '조디(Geordie)'란 표현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광팬을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축구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에 등장하는 영국 북동부 클럽 선덜랜드의 팬들도 축구에 죽고 사는 또 다른 '조디'들이다.

뉴캐슬 유나이티드 팬들은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준우승을 차지했던 1995~1996, 1996~1997 시즌을 아직 잊지 못한다.

1990년대 초반 2부리그에 머물러 있던 뉴캐슬이 정상급 클럽으로 발돋움한 것은 타인사이드의 재벌 존 홀(88)의 지원 덕분이었다. 당시 뉴캐슬은 잉글랜드의 축구 전설인 케빈 키건(70)에게 지휘봉을 맡기고 이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골잡이 앨런 쉬어러(51)까지 영입해 강팀으로 부상했다.

뉴캐슬은 이후 성적 면에서 그저 그런 팀으로 전락했다. 2008~2009 시즌에는 2부리그로 강등되는 수모도 겪었다.

이런 기억 때문에 뉴캐슬 팬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의 투자가 클럽의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이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부정적 목소리도 있지만 해외 자본의 투자 없이 과연 뉴캐슬이 맨체스터시티, 첼시, 리버풀 등과 어떻게 경쟁할 수 있겠냐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지난 18일 토트넘과의 홈경기를 앞두고 뉴캐슬의 '조디'들이 사우디아라비아 국기까지 흔들며 PIF의 구단 인수를 환영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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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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