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로부터 십수 년... '벼랑 끝' 선수들 향한 MLB '뒷북'

김동윤 기자 / 입력 : 2021.10.19 10:00 / 조회 : 2047
image
2003년 스프링캠프에 초청됐던 추신수가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AFPBBNews=뉴스1
추신수(39·SSG) 등 유명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전한 경험담 덕분에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열악한 환경은 야구팬들에게도 잘 알려졌다. 안타깝게도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2021년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매체 ESPN은 지난 18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구단주들이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계획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고 전했다. 숙소를 구하는데 필요한 급여를 제공할지 숙소 자체를 제공할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이러한 조치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벼랑 끝까지 내몰린 뒤에야 나온 '뒷북' 행정이란 차가운 시선도 존재한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어려움을 겪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올해 2월 직접 마이너리그 운영에 나섰다. 160개 팀을 120개 팀으로 줄이는 채찍을 휘두르면서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 38%~72%가량 연봉 상승을 약속하는 등 당근도 제시했다.

실제로 올해 트리플A 선수들의 주급은 502달러(약 60만원)에서 700달러(약 83만원)로 인상됐다. 한 달에 두 번씩 6개월에 걸쳐 나눠 받으며, 26주로 계산해도 연봉이 18200달러(약 2158만원)에 불과하다. 이 안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의 생활임금 계산기 기준으로 미국 어디서나 살기 위해 필요한 필수 임금이 연 26225달러(약 3114만원), 1인당 평균 연 소득이 12880달러(약 1530만원)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2158만원은 턱없이 모자란 액수다.

메이저리그에 근접한 트리플A 선수들이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무대로 일찌감치 진출하는 이유도 이런 환경에서 비롯된다. KBO리그 모 구단 관계자 A는 "외국인 선수들이 KBO에 진출하는 이유는 돈 문제가 가장 크다. 못해도 50만 달러(약 6억원)는 차이가 날 것"이라고 얘기했다.

관계자 B 역시 스타뉴스와 통화에서 "연봉과 대우 면에서 차이가 크다. KBO로 오는 외국인 선수들에게는 보통 집이 제공된다. 또 미국에서는 3~40명 중 하나지만, 여기서는 세 명 중 하나다. 본인이 실력만 발휘한다면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구조라 안정감에서 선수들이 느끼는 것이 다른 것 같다"고 설명했다.

image
왼쪽 팔목에 초록색 #FairBall 손목밴드를 착용한 LA 크리스 테일러가 지난 18일(한국시간) 미국 선트러스트파크에서 열린 NLCS 2차전에서 7회초 동점 2루타를 때려낸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AFPBBNews=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은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상황을 악화시켰다. 미국 매체 디 애슬레틱의 8월 보도에 따르면 마이너리그 구단들이 위치한 도시 수십 곳의 임대료는 최소 10% 이상 상승했다. 그 때문에 신인 계약금과 월급을 모두 주거 비용에 투자해도 모자라는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밀워키 산하 트리플A팀에서는 바퀴벌레가 출몰하는 방 한 칸짜리 방에 여러 명의 선수가 숙식을 해결하는 일이 빈번하다. 샌디에이고 산하 더블A팀 선수 중 일부는 1년간 차에서 거주하다 5번의 강도 피해를 당했고, 메츠 산하 더블A 선수들은 며칠 동안 전기와 수도 없이 지냈다.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3라운드 출신으로 촉망받던 한 마이너리그 선수는 생활고에 최근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어려움에 그동안 메이저리그는 일부 뜻 있는 선수들의 선행과 응원, 구단의 지원에 의존했다. 지난 시즌 추신수가 텍사스 소속 마이너리그 선수 전원에게 인당 1000달러(약 118만원)를 기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외에는 데이비드 프라이스(36·LA 다저스), 다니엘 머피(36), 애덤 웨인라이트(40·세인트루이스) 등이 마이너리그 선수 처우 개선에 힘을 보탰다.

크리스 테일러(31·LA 다저스), 앤드류 맥커친(35·필라델피아), 트레이 만시니(29·볼티모어), 제이슨 헤이워드(32·시카고 컵스) 등은 마이너리그 지지자 모임이 만든 '#FairBall' 문구가 담긴 손목밴드를 착용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메이저리그 휴스턴, 뉴욕 양키스, 뉴욕 메츠, 필라델피아,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화이트삭스 총 7개 팀은 코로나 19 사태 이후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숙소에 신경 썼다.

마이너리그 선수 지지자 모임의 해리 마리노는 ESPN과 인터뷰에서 "올 시즌 마이너리그 선수들과 면담했을 때 시즌 중 숙소를 찾고 해결하는 문제는 대부분 선수들이 겪는 어려움 목록 가장 위에 위치했다. 그래서 이 문제가 우리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메이저리그 구단은 마이너리그 시스템을 통해 성장한 선수들을 공급받으면서도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마이너리그 구단에 책임을 떠넘기고 어려움을 외면했다. 그러는 사이 대다수의 선수는 야구장에서 방망이를 드는 대신 마트에서 바코드기를 집었고, 결국 그라운드를 떠났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극소수의 선수들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이다. 이번 숙소 제공 조치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 중 가장 시급한 일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관련기사
  • 트위터
  • 페이스북
  • 라인
  • 웨이보
  • 프린트
  • 이메일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