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위↑·상식↓" 시대별로 달라진 막장 드라마史 [★창간17]

안윤지 기자 / 입력 : 2021.09.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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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유혹', '펜트하우스' 포스터 /사진제공=SBS
보통 사람의 상식과 도덕적인 기준을 넘어선 드라마가 이젠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처음엔 점만 찍고 나와도 경악을 하며 바라본 시청자들은 이제 더욱 자극적이고 큰 사건들을 바란다. 여기저기 얽히고 설킨 출생의 비밀은 아침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거라고 치부하지만 막장 드라마에선 기본적인 설정에 불가하다. 불륜, 납치도 모자라 아동 폭행하는 장면까지 등장하며 막장 드라마의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시청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 2008년, "인생 막장"에서 신드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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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유혹' 영상 일부분 갈무리 /사진=유튜브 채널 '스브스캐치' 영상 캡처
본래 '막장 드라마'란 표현은 존재하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대 초반 드라마 중 무리한 전개 혹은 말도 안되는 설정들이 즐비한 작품이 있었지만 단순히 유명작으로 남게된 이유 또한 '막장 드라마'란 표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단순 화제작으로 꼽혔고 문제작으로 삼진 않았다.

'막장'이란 혹평이 처음으로 쓰이게 된 작품은 SBS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2007년 作)이다. '조강지처 클럽'은 조강지처들이 남편들의 외도를 알고 복수를 하게 되는 이야기의 드라마다. 극 중 가족 구성원들이 불륜으로 이뤄진 관계였으며 남편이 내연녀를 아내와 사는 집으로 데리고 오는 등 무리하고 극단적인 전개를 보였다. 이에 '인생이 갈 때까지 갔다'란 의미로, "인생 '막장' 드라마"란 평을 얻었다. 당시 '조강지처 클럽'을 연출한 손정현 PD는 '막장'이란 평가에 대해 "시청률이 30%대다. 이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휴머니즘 코드도 많다"라고 해명했으며 배우들 또한 '막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반발을 샀다.

이렇듯 극단전이고 개연성 없는 작품은 시청자들의 혹평과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듯 했다. 하지만 2008년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 신드롬이 일면서 '막장'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내의 유혹'은 현모양처였던 여자가 남편에게 버림받고 가장 무서운 요부가 되어 예전의 남편을 다시 유혹하여 파멸에 이르게 하는 복수극을 그린 드라마. 배우 장서희, 변우민, 김서형, 이재황 등이 출연했으며 129부작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30%대를 꾸준히 유지했다.(닐슨코리아 기준) 이 작품은 출연 배우를 모두 스타덤에 올려놨으며 큰 인기로 중국에서도 리메이크됐다. 전국민이 점 찍고 돌아온 민소희(장서희 분)를 알았고 신애리(김서형 분)의 말을 따라했다. 지금까지도 몇 장면은 회자되고 있다. 김순옥 작가 특유의 빠른 전개와 말이 안되는 것 같다가도 되는 설정, 빠져들게 만드는 섬세한 서사 등은 시청자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나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아내의 유혹'을 패러디하기도 했다.시청률 전쟁이었던 당시에도 '아내의 유혹'은 높은 성과를 이뤘고, 우리나라 드라마 역사의 막장 시대를 열었다.

이후, '아내의 유혹'의 남자 버전인 MBC '천사의 유혹'(2009년 作), 수많은 패러디를 만들어낸 MBC '밥줘'(2009년 作), KBS 2TV '수상한 삼형제'(2009년 作) 등이 줄을 섰다.





◆ 2010년대, 채널 다양화로 강해진 막장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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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왔다 장보리', '내 딸, 금사월' 포스터
2000년대 후반, 수많은 막장 드라마가 등장했으나 시청자들은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에 착한 드라마가 등장했다. 순수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 학생들의 공부를 향한 열정 등을 주제로 드라마가 쏟아졌다. 대표적으로 MBC '내 마음이 들리니'(2011년 作), MBC '파스타'(2010년 作), KBS 2TV '공부의 신'(2010년 作) 등이 있었다.

또 당시 장르물 붐이 일었다. OCN '신의 퀴즈 - 시즌1'(2010년 作)을 시작으로 OCN '뱀파이어 검사'(2011년 作), SBS '유령'(2012년 作) 등이 드라마 시장을 이끌어갔다. 특히 OCN은 '신의 퀴즈'와 '뱀파이어 검사' 시리즈로 채널을 키워나가는 등 다양한 성과가 눈에 띄었다. 이후 JTBC, tvN, 채널A 등 종합편성 채널과 케이블 채널이 각각 힘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특히 tvN '시그널'(2016년 作), '비밀의 숲'(2017년 作)이 연달아 흥행하며 본격적인 수사물이 인기를 얻었다.

이렇게 막장은 주춤하는 듯 했지만 여전한 인기는 무시할 수 없었다. MBC '모두 다 김치'(2014년 作)는 장모가 사위의 뺨을 김치로 때리는, 일명 '김치 싸대기'를 완성시켰고, MBC '왔다! 장보리'(2014년 作)와 '내 딸, 금사월'(2015년 作)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막장을 선보이며 큰 유행거리로 자리잡았다. '왔다! 장보리' 속 연민정 역을 맡은 배우 이유리는 MBC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당시 두 작품의 출연 배우들은 극 중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아내의 유혹' 급 인기를 얻었다.

2010년대 후반을 뜨겁게 달군 막장도 등장했다. 바로 JTBC 'SKY 캐슬'(2018년 作, 이하 '스카이 캐슬')이다. '스카이 캐슬'은 제 자식을 천하제일 왕자와 공주로 키우고 싶은 명문가 출신 사모님들의 처절한 욕망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리얼 코믹 풍자 드라마다. 방송 전 주위의 큰 기대를 얻지 못했던 '스카이 캐슬'은 단 2회 만에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배우 김정난은 엽총을 자신의 목에 대고 쏴 충격적인 엔딩을 선사한다. 이후 극적인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서사를 보여준 '스카이 캐슬'은 성공을 거뒀다.

'스카이 캐슬' 종영 후에도 '스카이 캐슬' 앓이는 멈추지 않았다. 출연 배우들은 각종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비슷한 캐릭터로 다른 드라마에 등장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막장 드라마는 끊임없이 나오고, 대부분 좋은 성과를 거뒀다. 이렇게 막장은 결국 우리나라 드라마 속 한 장르로 자리잡았다.





◆ 2020년대, 여러 잡음에도 굳건한 막장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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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SBS '펜트하우스' 포스터
'스카이 캐슬'로 매운 맛을 본 시청자들은 더욱 자극적인 걸 원했다. 또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발달함에 따라 해외 콘텐츠를 쉽게 시청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막장은 눈에 차지 않을 정도였다. 어떤 것이 나와도 '스카이 캐슬'을 이길 수 없었을 때, JTBC '부부의 세계'(2020년 作)가 등장했다.

'부부의 세계'는 사랑이라고 믿었던 부부의 연이 배신으로 끊어지면서 소용돌이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는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란 명대사를 탄생시켰고, 김희애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한소희는 눈에 띄는 라이징 스타로 손꼽혔다. 내연녀과 아내와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다룬 '부부의 세계'는 시청 수위 등급을 19금으로 판정해도 식을줄 모르는 인기에 흥행가도만 달릴 뿐이었다.

이 배턴을 이어받아 SBS '펜트하우스' 시리즈와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이 등장했다. 특히 '펜트하우스'는 '명불허전'이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김순옥 작가의 모든 게 들어있는 작품이었다. 약 1년 반동안 시즌제로 진행된 '펜트하우스'는 시청률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펜트하우스'를 향한 여러 논란이 존재했다. 납치, 불륜, 폭행, 실제 참사 장면 사용 등 잡음은 계속됐음에도 인기는 여전했다. 종영 후에도 시청자들은 시즌4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 막장이 트렌드로? NO, 정의가 달라진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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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트하우스' 영상 갈무리 /사진=유튜브 채널 'SBS Drama' 영상 캡처
'펜트하우스' 시리즈가 연속 인기를 얻으며 막장이 트렌드화된 듯 하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다양한 채널과 OTT를 통해 시청자들의 시야가 넓어지면서 단순히 '막장'의 정의가 달라진 것뿐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은 스타뉴스에 "과거 막장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용이 패륜적이거나 지나친 자극을 그려낸 거다. 다른 하나는 콘텐츠의 완성도, 즉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라며 "지금은 자극적인 부분에선 허용되는 추세다. OTT를 통해 이미 수위가 높은 콘텐츠를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드라마 '왕좌의 게임'같은 경우엔 높은 수위를 자랑하지만 완벽한 완성도를 추구하기 때문에 이젠 수위로 막장을 판단하지 않고, 허용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정 평론가는 "이런 측면에서 '펜트하우스'가 막장이라고 불리는 거다. 시즌1까지는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정도였으나 뒤로 갈수록 개연성을 잃었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특히 '펜트하우스3'을 언급하며 "막장도 자극적인 스토리를 가져오는 건 맞지만, 충분한 개연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걸 알려준 작품이다. 만약 이게 추후 국내 드라마에 영향을 준다면 드라마 업계에선 상당히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방송 관계자도 정 평론가가 말하는 부분과 같은 지적을 이어갔다. 그는 "최근 19금 편성이 보편화되면서 19금 명목하에 자극적인 그림을 담는 지상파 드라마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19금 편성이 면죄부가 아니기 때문에 드라마 연출진으로서는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전했다.

막장은 더 자극적이고 더 이상할수록 화제가 된다. 혹평이든, 호평이든 어떤 주제거리를 던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시청자들은 단호해졌다. 아무리 황당할 정도의 막장이라고 할지라도 콘텐츠의 완성도가 없다면 보지 않는다. 막장은 더이상 개연성 낮은 콘텐츠를 포장하는 단어가 아니다.

안윤지 기자 zizirong@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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