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의 아트마켓] 29. 색채의 창조와 독점권 ②

채준 기자 / 입력 : 2021.09.08 11:50 / 조회 : 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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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타블랙(Vantablack). 사진제공= Justin Snow via Flickr/Creative Commons.


예술 작품 창작 용도의 밴타블랙 독점적 사용권 부여를 놓고 예술계에 일었던 논란은 상당했기에 좀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케이트의 아트마켓 28편 색채의 창조와 독점권①과 이어짐)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예술적 창작을 위한 독점적 색채 사용권은 곧바로 예술계의 비난으로 이어졌다. 다른 아티스트들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제한을 가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은 주로 사회적 메시지와 연관된 작품을 창작하는 영국의 아티스트 스튜어트 셈플로, 그는 카푸어의 밴타블랙 독점 사용권에 대해 반발하고 나섰다.

세상에서 가장 핑크색인 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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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셈플의 핑크 염료(Semple's PINK). 사진제공= Stuart Semple, 'I'm sharing the world's pinkest pink with everyone except Anish Kapoor', Facebook.


셈플은 밴타블랙을 작품에 사용하기를 시도했으나 불발에 그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핑크색인 핑크(the world's pinkest pink)'라고 제시한 핑크색 염료를 만들어 냈다. 그는 이 핑크색 염료를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판매 중인데, 구매한 셈플의 염료를 카푸어에게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 구입 약관을 덧붙이고 있다. 즉, 카푸어에게는 자신의 염료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셈플의 이 같은 대응은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염료가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후 카푸어가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사진이 또 한 번 논란을 낳았다. 셈플의 핑크색 염료를 가운데 손가락에 묻힌 채 모욕적인 손가락 사인을 보내는 사진을 찍어 자신의 계정에 올린 것이다.

이들 간의 분쟁은 셈플이 다른 아티스트들과 협력해 독자적으로 기존의 검은색보다 매트하고 어두운 검은색 염료를 개발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카푸어의 밴타블랙을 이용한 작품은 2022년으로 연기된 베니스 비엔날레(the Venice Biennale)에 출품될 것으로 알려졌다.

세상에서 가장 검은 검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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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뮤트 스트레베(Diemut Strebe), '허영의 구원(The Redemption of Vanity)', 2019. 사진제공= Courtesy of Diemut Strebe.


한편 지난 2019년 미국의 MIT 대학 연구팀이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검은색 물질을 만들어 냈다고 발표했다. 더 이상 밴타블랙이 가장 검은색 물질로 남을 수 없게 된 것이다. MIT 연구팀에 따르면 이들이 개발한 울트라블랙 탄소 나노튜브(Ultrablack Carbon Nanotubes; CNTs)라는 물질이 빛을 99.995% 흡수해 기존의 밴타블랙의 빛 흡수율인 99.965%를 뛰어넘어 가장 어두운 검은색을 띤다고 한다.

아울러 개발팀은 독일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 디뮤트 스트레베(Diemut Strebe)와 협력해 CNT를 이용한 예술 작품을 선보였다. 이들의 예술과 과학을 아우르는 협업 프로젝트 '허영의 구원(The Redemption of Vanity)'은 미화 약 200만 달러(한화 23억 원) 상당의 16.78캐럿 노란색 다이아몬드를 CNT로 덮어 보석이 존재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만든 작품이다. 스트레베는 이 작품을 미국 최고의 상업 중심지 뉴욕, 그중에서도 시시각각 경제적 가치 평가가 이뤄지는 뉴욕 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에 전시했었고, 현재도 작품은 그곳에 보관 중이다.

필자는 최근 스트레베 작가와 화상 인터뷰를 갖고 작품 제작의 의미와 기법 등 여러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스트레베는 인터뷰에서 작품에 대해 "다이아몬드와 CNT 두 가지 물질 모두 같은 원소인 탄소를 기본으로 만들어졌지만 다이아몬드는 가장 빛나는 보석 중 하나인 반면, CNT는 가장 어두운 물질로 양극단의 아이러니한 대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MIT 개발팀은 CNT를 모든 아티스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할 것이며 예술을 위해 어떤 물질이나 아이디어의 독점적 소유권을 믿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또 이들은 이 프로젝트가 카푸어의 밴타블랙 독점 사용권에 대항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색의 독점적 사용으로 문제가 되긴 했지만, 앞서 소개한 IKB나 밴타블랙 모두 색상 자체를 특허(patent) 등록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색채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나 물질을 특허 등록한 것이다. 환언하면, 누구나 같은 색상을 사용할 수 있고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특허 등록된 것과 같은 과정이나 물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제작해야 특허권 침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CNT 역시 밴타블랙과 동일한 탄소 나노튜브이지만 그 구성이 다르게 만들어져 밴타블랙의 특허와는 무관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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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뮤트 스트레베(Diemut Strebe), '허영의 구원(The Redemption of Vanity)', 2019. 사진제공= Courtesy of Diemut Strebe.


작가 스트레베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초고가의 가치를 가진 보석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작품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이에 대해 "재료의 독점 사용 등으로 상업화되는 예술계에 가치의 재평가에 대해 되묻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처럼 CNT나 셈플의 새로운 검은색을 모든 아티스트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검은 검은색에 대한 논란은 일단락이 되었다. 색에 대한 독점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다른 예술가들의 창작에 제한을 가하는 일은 결국 예술가들이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찾아내는 또 다른 새로운 길까지 막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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