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 대회' 아닌 유로2020, '다문화 팀' 대세 속 '순혈주의' 반격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1.06.22 10:17 / 조회 : 4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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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현지시간) 유로2020 헝가리전에 출전한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 /AFPBBNews=뉴스1
1995년 제정된 보스만 법은 유럽 축구의 영토를 전 세계로 확장시켰다. 이주노동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EU(유럽연합)의 정신에 바탕을 둔 보스만 법이 시행되자 EU 회원국가 선수가 다른 EU 소속 국가의 축구 클럽으로 이적하게 될 경우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으로 분류됐다. EU 회원국가 선수들이 외국인 선수 쿼터에서 제외되자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선수들의 유럽 진출도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유럽 축구 클럽에는 EU 회원국은 물론이고 다른 대륙에서 건너 온 외국 선수의 숫자가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유럽 축구는 글로벌 리그로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 이 때부터 잉글랜드, 스페인 등의 프로축구 리그는 해외 시장 개척에 더욱 적극성을 보였으며 UEFA(유럽축구연맹)가 주관하는 챔피언스리그는 명실상부한 세계인의 클럽 축구 제전으로 자리잡았다.

유럽 프로축구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의 전 지구적 외연 확장에 힘입어 유로 대회도 더 이상 유럽인들에게 국한된 대회가 아닌 다른 대륙의 팬들이 지켜보는 글로벌 메가 이벤트로 성장했다. 자국 선수가 뛰는 유럽 클럽 팀 경기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보면서 유럽 축구에 관심을 갖게 된 세계인들이 유로에 열광하기 시작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21세기 들어 전 세계로 영향력을 넓힌 유로는 대회 참가국 선수들의 인종적 구성도 다채로워졌으며 순혈주의를 고수하던 국가에서도 다문화 선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다문화주의가 유로 대회를 관통하는 화두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어떤 유로 대회 참가국보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레인보우 팀인 프랑스와 유럽의 축구 강소국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축구 다문화주의를 대표하는 팀이다. 이 3개국 국가대표팀에는 과거 그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수리남, 콩고계의 이민자 후예들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남미 혈통을 가지고 있는 다문화 선수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프랑스 선수로는 알제리 혈통의 카림 벤제마, 카메룬 출신의 아버지와 알제리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킬리앙 음바페가 대표적 다문화 스타다. 네덜란드를 이끌고 있는 에이스 멤피스 데파이는 아버지가 가나 출신이다. 또한 덴젤 둠프리스와 조르지니오 바이날둠은 각각 과거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의 아루바와 남미의 수리남 핏줄이며 벨기에 공격을 이끄는 로멜로 루카쿠는 벨기에가 식민 지배했던 콩고 혈통이다.

지난 유로 2016 우승팀인 포르투갈도 대표적 다문화 팀이다. 포르투갈도 모잠비크 출신의 에우제비우 시대부터 시작된 식민지 커넥션이 강하다. 헤나투 산체스(산투메 프린시페)와 윌리앙 카르발류(앙골라)는 모두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국가 출신이다. 유로 대회 사상 최다골 주인공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포르투갈의 자치령인 마데이라 제도 출신이다.

2000년대부터 자동차 제조업을 축으로 고속성장을 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된 독일은 축구 대표팀의 인종적 구성에서도 최근 10년 간 매우 큰 변화가 있었다.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독일 스타일의 '로봇 축구'가 대폭 바뀌기 시작한 것도 터키 이주 노동자의 아들 메수트 외질 등 외국계 선수들의 영향이 컸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과거 축구 순혈주의가 지배했던 독일에는 현재 일카이 귄도안(터키), 세르주 그나브리(코트디브아르), 안토니오 뤼디거(시에라리온), 르로이 사네(세네갈)처럼 다문화 선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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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들. /AFPBBNews=뉴스1
세계 최대의 식민지 제국을 건설한 바 있는 잉글랜드 역시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 혈통의 선수들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잉글랜드 공격의 핵인 해리 케인의 아버지는 수세기 동안 영국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인이고 마커스 래쉬포드(세인트 키츠)와 제이든 산초(트리디나드 토바고)는 모두 카리브해에 위치한 영국 식민지 국가의 혈통을 이어 받았다.

이외에 잘 갖춰진 사회복지 시스템 때문에 이민자들이 선호했던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 등도 다문화 선수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팀이다. 스위스에는 '알프스의 메시'로 불리는 제르단 샤키리(코소보)가 있고 스웨덴과 덴마크에는 알렉산더 이삭(에리트레아)과 유수프 풀센(탄자니아) 등의 다문화 선수가 활약 중이다.

하지만 유로 2020에 출전한 국가 가운데 다문화 선수를 포함하고 있지 않은 순혈주의 팀도 꽤 있다. 한국 팬들에게 친숙한 세놀 귀네슈 감독이 이끄는 터키 축구 대표팀은 순혈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다. 터키와 함께 폴란드, 체코, 크로아티아 등 동구권 팀도 순혈주의다.

다만 몇몇 동부 유럽 국가 팀 중에는 순수 혈통이 아닌 다문화 선수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러시아에는 게오르기 지키야(조지아), 마리오 페르난데스(브라질)가 다문화 선수이며 우크라이나에도 브라질에서 귀화한 마를로스가 있다. 또한 북마케도니아에는 터키계 엘리프 엘마스가 있으며 헝가리에는 과달루페 혈통의 로익 네고가 있다. 네고는 2010년 유럽 정상에 오른 프랑스 U19 대표였지만 2019년 헝가리로 귀화한 특이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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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공격수 치로 임모빌레(오른쪽 2번째)가 지난 17일(한국시간) 유로2020 스위스전에서 쐐기골을 터뜨린 뒤 골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AFPBBNews=뉴스1
내심 유로 2020에서 우승을 꿈꾸는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순혈주의가 강했다. 다만 이번 대회에는 브라질에서 귀화한 미드필더 조르지뉴와 브라질계 수비수 에메르송이 참가했다.

스페인은 바스크, 카탈루냐 등 같은 국가 내에서도 민족적 정체성이 분화돼 있는 국가이지만 적어도 대표팀 구성의 원칙은 스페인 순혈주의 쪽이었다. 스페인은 이번 대회에도 후보 골키퍼인 영국계 로버트 산체스와 프랑스에서 귀화한 바스크 전사 아이메릭 라포르트를 제외하면 다문화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팀 내 다문화 선수의 숫자와 그들의 영향력을 놓고 봤을 때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다문화 팀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유로 2020은 다문화주의가 대세다. 우승후보로 평가 받는 프랑스, 벨기에, 포르투갈, 잉글랜드, 네덜란드와 독일은 모두 다문화 대표팀이다. 비교적 순혈주의를 유지하는 팀 중에는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우승을 노려볼 만하며 동구권 순혈주의 팀 중에는 크로아티아, 체코가 주목된다.

다문화주의 팀들의 우세가 예상되는 가운데 순혈주의 팀들이 어떤 반격을 할 수 있을지는 유로 2020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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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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