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레바논전에서 손흥민이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뒤 토트넘에서 함께 했던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등번호 23번을 의미하는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
손흥민에게 13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레바논과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은 평소와는 그 의미가 달랐다. 2차 예선의 마지막 경기임과 동시에, 경기를 앞두고 옛 동료인 크리스티안 에릭센(29·인터밀란)이 심정지로 쓰러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뒤 치르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앞서 토트넘에서 4년 반 동안 손흥민과 한솥밥을 먹었던 에릭센은 이날 오전 1시(한국시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2020 경기 도중 심정지를 일으켜 쓰러졌다. 다행히 병원으로 이송된 뒤 큰 고비를 넘겨 안정을 되찾은 것으로 전해졌지만, 전문가들은 그가 축구선수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레바논전 당일 새벽에 열린 경기였던 터라 손흥민은 잠에서 깬 뒤에야 에릭센의 소식을 접했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내 모든 사랑을 너와 너의 가족들에게 보낸다. 힘내라"고 적은 게시글로 멀리서나마 에릭센을 응원했다.
손흥민이 13일 자신의 SNS에 올린 크리스티안 에릭센 응원 메시지. /사진=손흥민 SNS 캡처 |
후반 21분. 남태희(알 사드)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깔끔하게 성공시킨 뒤 선보인 세리머니는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다. 그는 골망을 흔들자마자 중계 카메라를 향해 달려갔다. 이어 한 손은 손가락 2개, 다른 손은 손가락 3개를 펼쳐 보이며 '23'을 만들었다. 이는 에릭센의 토트넘 시절 등번호였다.
더 나아가 손흥민은 중계 카메라를 잡고 에릭센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더했다. 중계화면엔 목소리가 담기지 않았지만, 기자회견을 통해 그는 "스테이 스트롱, 아이 러브 유(Stay Strong, I love you)'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힘내, 사랑해'라는 의미가 담긴 메시지를 중계를 통해 전한 것이다.
이같은 소식은 외신들을 통해 고스란히 전 세계로 퍼졌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손흥민이 골을 터뜨린 뒤 에릭센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고 보도했고, 데일리메일은 "손흥민이 에릭센에게 골을 바쳤다"고 전했다.
13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레바논전에서 골을 터뜨린 손흥민이 이날 새벽 심정지로 쓰러진 전 동료 크리스티안 에릭센을 향해 응원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
손흥민은 가장 늦게까지,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팬들에게 손 인사를 건넸다. 다른 선수들이 경기장을 모두 빠져나간 사이, 홀로 그라운드에 남아 손을 흔들고 있던 건 손흥민뿐이었다.
경기 후 기자회견을 통해서는 팬들을 향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우선적으로 팬분들한테 가장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3연전이라는 어려운 경기 동안 팬분들의 큰 응원과 성원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종예선엔 분명히 더 어려운 길이 기다리고 있다"며 "팬분들과 하나가 되어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 한 팀이 돼서 어려운 길도 무찌르고 나갈 수 있는 팀이 되면 좋겠다. 진심으로 다시 한번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실망시키지 않는 그런 팀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13일 레바논전을 끝으로 2차예선을 모두 마친 뒤 그라운드에 마지막까지 홀로 남아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는 손흥민. /사진=김명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