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母 말기암→15세부터 생계" '미우새' 박군, 한 맺힌 사모곡 '눈물 바다'[★밤TView]

한해선 기자 / 입력 : 2021.05.16 23:25 / 조회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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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미운 우리 새끼' 방송화면 캡처


트로트 가수 박군이 돌아가신 어머니와 자신을 키워준 동네 이모 사장님들을 만났다. 어린 시절부터 힘겨웠던 박군의 사연에 스튜디오마저 눈물바다가 됐다.

16일 오후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박군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갔다. 박군의 어머니는 박군이 중학교 2학년 때 요도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박군이 하사로 군 생활을 하던 2007년 끝내 세상을 떠났다. 박군은 하나뿐인 가족인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15세 어린 나이부터 학교와 아르바이트 생활을 병행했다.

박군은 이상민을 데리고 경북 경주에 있는 어머니의 묘원을 찾아갔다. 박군은 "힘들 땐 혼자 와서 실컷 울다 가면 속이 시원하다"고 말했다. 이상민은 박군 어머니의 사진을 보며 "살다 보니 이렇게도 준우하고 저하고 인연이 돼서 찾아온다"고 인사했다.

박군은 어머니의 묘비 앞에 꽃을 꽂고 "어머니 세수하자"며 묘비를 닦아드렸다. 박군은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다"며 생전 어머니의 고달픈 모습을 밝혔다.

박군과 이상민은 마음을 담아 어머니에게 절을 올리고 묵념했다. 박군은 어머니에게 금가락지를 선물하며 "예전에 어머니가 반지 같은 액세서리를 좋아하셨는데 (내가) 고등학교 때 돈을 모아서 14k 반지를 선물한 적이 있다"며 "어디서 돈이 났냐고 했지만 속으론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가장이 돼서 이런 것도 선물한다고 생각했다"고 사연을 말했다.

이상민은 "엄마와 자식 관계는 희한하다. 이제 뭔가 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하면 아프거나 돌아가신다. 나는 어머님이 많이 아프셨다가 잠깐 회복되셨을 때 어머님하고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사진을 많이 찍었지. 나 혼자 여행 갈 때는 한 번도 안 했던 걸 했다. 이제는 나도 해드리고 싶은데 (어머니가) 병원에만 계시니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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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미운 우리 새끼' 방송화면 캡처


이상민이 박군에게 어머니와의 가장 큰 기억을 묻자 박군은 "한창 어릴 때 어머니가 일하신다고 집에 없었다. 내가 일 가지 말라고 떼를 썼는데 하루 웃으면서 놀아준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박군은 "제가 스물 두 살 되던 2007년에 여기 오셨다"고 했다.

이상민이 산소에 와서 왜 그렇게 울었냐고 묻자 박군은 "학교 다닐 때부터, 유년기부터 청소년기 계속 힘들었다. 어머니도 힘들었고 나도 졸업할 때까지 알바만 했다. 스무 살이 되면 중국집 그만두고 힘들지 않겠지 생각했는데 스물둘 됐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 혼자밖에 안 남았다. 군생활 하면서 엄청 고달프고 힘든데 어디가서 하소연 할 데가 없었다. 나는 왜 삶이 계속 이렇게 힘들까 싶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박군은 "나는 왜 계속 편한 게 없고 몸으로, 정신적으로 힘들기만 할까 생각하며너 펑펑 울고 나면 그게 좀 날아가더라"고 말했다.

박군은 "후회되는 게 많다. 어머니가 꼼장어를 좋아하셨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편찮으셔서 중환자실에 가기 전에 꼼장어를 같이 먹고 술을 드시면 안 되는데 그때는 너무 드시고 싶어하셨다. 이후에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들어가셨는데 그때 마지막이라고 느끼셨나 보다"라며 "나는 그때 술을 왜 먹냐고 엄마한테 성질부리고 화를 냈는데 엄마는 아들이랑 마지막으로 술을 거고 싶었던 거다. 그때 즐겁게 노래라도 부를 걸 그랬다"라고 했다.

또 박군은 "저희 어머니가 비행기 한 번을 못 탔다. 비행기 타고 제주도에 가서 어머니가 좋아하는 회에다가 소주 한 잔 왜 못 따라 드렸을까 하는 후회가 엄청 크다"라며 "마지막에 엄마 눈 감는 모습도 못 봤다. 눈 감은 후에 봤는데 엄마가 싸늘해보였고 너무 차가웠다. 손도 한 번 못 잡았다. 가서 (엄마) 얼굴만 보여주는데 후회하는 게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이상민은 "이렇게 잘 돼서 어머님 찾아봬니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겠냐"고 위로했다. 박군은 "엄마가 이제 걱정 안 하실 것 같다"면서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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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미운 우리 새끼' 방송화면 캡처


스튜디오에서 박군의 사연을 들은 서장훈은 눈물을 흘렸고, 신동엽은 "(서장훈의) 사실 어머니가 조금 편찮으셔서 병원에 계신데, 요즘 (서장훈이)힘든 마음으로 방송을 하고 있는 걸로 안다"고 했다. 스페셜MC 오연서와 모벤져스도 모두 눈물을 훔쳤다.

이상민은 "산소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다. 아버지 산소에서 못 마시던 술도 먹으면서 몇 시간을 있었다"고 말했다. 김종국의 어머니는 "산소에 가면 마음이 편하다. 보고를 다 한다. 우리 종국이가 말썽을 부렸는데 이렇게 잘 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신동엽 역시 "나도 어머니 돌아가신 지 26년이 됐다. 날씨 좋을 때 어머니 산소도 찾아봬야 하는데 뭘 그렇게 바쁜 척하면서 산소도 찾아가지 못했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이후 박군은 15세 중학교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6년 동안 아르바이트했던 중국집을 찾아갔고, 사장님은 박군과 재회하고 반가워했다. 박군은 가게 내부를 다시 둘러보며 과거에 아르바이트를 할 당시 창고에서 잠을 잤다고 밝혔다. 박군은 "다 그대론데 사장님 흰 머리만 달라졌다"고 했다. 사장님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박군한테 위치라든가 포장이라든가 많이 배웠다. 나는 제주도가 고향인데 IMF 때 명예퇴직 당한 후 여기에 와서 여기가 고향인 박군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박군을 만난 사연을 전했다.

박군은 "사장님은 처음 일하시니까 나한테 계속 전화해서 위치를 물어봤다"며 "집에서 출퇴근하기 어려우니까 숙소도 얻어주시고 월급에서 10만 원도 더 얹어주셨다. 군대 가지 말라고도 하셨다"고 했다. 이에 사장님은 "박군이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아들이나 마찬가지였다"고 과거부터 성실한 박군의 인성을 극찬했다.

또한 사장님은 "준우가 착한 게 월급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자기 용돈은 10만 원 정도만 하고 어머니를 갖다드렸다. 효자였다"고도 말했다. 이때 박군이 온 소식을 듣고 동네 아귀찜 가게 이모가 버선발로 달려왔다. 이모는 박군에게 "너 너무 어렵게 자라서 어렵게 고생했는데 잘 됐다. 성공할 줄 알았다. 니가 온다니까 왜 그리 눈물이 나냐"며 눈물을 흘렸다. 군 생활 이후 처음 보는 아귀찜 가게 이모에 박군도 친이모를 만난 듯 반가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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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미운 우리 새끼' 방송화면 캡처


이모는 "(박군이) 성격도 너무 좋고 착하게 컸다. 군생활 하면서 엄마 용돈 내내 보내준 걸 안다. 그래서 내가 준우 휴가 나왔을 때 친구들이랑 쓰라고 용돈 준 적도 있다"며 "니 나오는 '강철부대', '트롯신이 떴다', '미우새' 다 본다"고 박군의 방송 활약을 기특해했다.

옆 가게 미용실 이모도 찾아왔다. 미용실 이모도 "준우는 명절 때마다 항상 문자나 안부전화 꼭 한다. 휴가 때 되면 찾아온다. 여느 자식도 시간 없어서 못 하는 사람이 많은데 대견하다"고 했고, 박군은 "엄마 병워하고 집 왔다갔다 할 때도 이모가 머리 깎다가도 차 태워주고 이모도 매일매일 응원해주고 휴가 때 용돈도 주셨다"며 "힘들어도 참을 수 있었던 게 이모들이 '열심히 산다'고 말해주신 거 때문이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모들은 "(박군이) 학교 다니면서 학생회장을 했다. 인사도 억수로 잘했다"고 했고, 박군은 "내가 아르바이트 다니면서 부지런하게 했는데 선생님이 권유해 주셔서 하게됐다"고 말했다. 박군은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 한 스케줄로 "월~금 다 아르바이트 했다. 평일 날은 학교 마치고 오면 저녁 9시까지 4시간 아르바이트 했다. 일요일은 아침부터, 토요일은 낮 12시부터 일했다. 한 달에 한 번 쉬었는데 항상 평일날 쉬었다. 주말에 장사가 잘 되니까"라고 했다.

이모들은 "(박군이) 단점은 없고 항상 걱정됐다. 애가 낡은 장화만 신고 왔다갔다 하니까. 그래도 항상 기죽지 않고 씩씩했다"고 전했다. 이상민은 "너 참 착실하게 잘 살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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