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미지명→美 야구 유학' 19세 외야수의 도전 "인생 끝? 아니더라" [이상희의 MLB 스토리]

신화섭 기자 / 입력 : 2021.05.18 16:16 / 조회 :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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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GCC에서 만난 최지만(왼쪽)과 박정후. /사진=이상희 통신원
[피오리아(미국 애리조나주)=이상희 통신원] 2021 KBO(한국야구위원회) 신인 드래프트에는 고교졸업 예정자 856명 등 총 1133명이 참가했다. 이 중 프로의 선택을 받은 이는 109명(1차 지명 포함). 전체 신청자의 약 10%만 웃을 수 있었다.

한국 내 학원스포츠 중 야구, 축구 등 인기 구기종목 선수들의 최종 목표는 대부분 프로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 중 야구는 고교 졸업 후 프로로 직행하는 것이 일종의 공식처럼 굳어졌다. 대학은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이들의 차선책이 된지 오래다.

대학 진학도 쉽지만은 않다. 예전처럼 잘 하는 선수를 사전에 스카우트하는 제도가 사실상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 후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학기당 500만~800만원에 달하는 학비는 물론 매달 100만원 정도 내야 하는 훈련비도 부담이다.

게다가 방학 때마다 외국으로 가는 전지훈련비는 40일 체류에 1인당 약 500만~600만원 정도 든다고 한다. 여름과 겨울방학 모두 외국으로 훈련을 가는 대학도 있다. 이럴 경우 연간 고정비용만 모두 합해 2700만~30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돈 없으면 운동도 못하는 시대가 됐다. 지명도 못 받고 돈도 없으면 어린 나이에 유니폼을 벗어야 한다.

미국 애리조나 글렌데일 시에 위치한 GCC(글렌데일 커뮤니티 칼리지)대학 야구부에는 한국에서 온 학생이 있다. 외야수로 뛰고 있는 박정후(19)다. 2002년 1월생으로 경기 비봉고 출신인 그 또한 프로진출이 목표였다. 하지만 2020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비봉고 동기 10명 중 프로에 진출한 이는 2차 6라운드에 삼성에 지명된 좌완투수 조경원(20)뿐이다. 박정후는 고교 3학년이던 2019년 16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0(60타수 18안타) 1홈런 12타점 3도루를 기록했다.

박정후는 최근 스타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프로를 목표로 야구를 했는데 지명을 받지 못했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힘들었다"며 "특히 앞으로 뭘 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혼란이 장마철 빗줄기처럼 쏟아졌다"고 당시 기분을 회상했다.

그는 "고교 2학년 때부터 레슨을 받으며 인연을 맺은 서동환 야구사관학교 대표의 조언이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서 대표는 과거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구단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기 위해 애리조나를 찾았고, 당시 지인의 도움을 받아 GCC에서 연습을 할 수 있었다.

GCC는 또 최지만(30·탬파베이)이 2016년부터 매년 1~2월, 스프링캠프에 참가하기 전에 들러 라이브 배팅연습을 하며 타격감을 조율하는 곳이기도 하다. 박정후는 "지난 2월 최지만 선배를 학교 야구장에서 직접 만났는데 그가 원포인트 레슨도 해주고 야구화와 배트, 그리고 야구장갑까지 챙겨주면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줘 너무 고마웠다"며 "나도 훗날 프로선수가 된다면 최지만 선배처럼 후배들을 자상하게 챙겨줄 수 있는 인성 좋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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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만(오른쪽)이 지난 2월 초 GCC에서 박정후의 타격 폼을 교정해 주고 있다. /사진=이상희 통신원
박정후는 또 "한국에서 대학에 진학해 야구를 계속 했다면 경주마처럼 프로 진출에만 시선이 고정됐겠지만 미국에 와서 야구를 하니 견문도 넓어지고 진로 선택의 폭도 다양해졌다"며 만족해 했다. 유학 비용도 한국에서 대학에 진학해 야구를 하는 것보다 덜 든다고 한다.

GCC는 2년제 대학으로는 드물게 연간 1~2명의 프로 진출자를 배출한다. 또한 4년제 대학 야구팀의 스카우트를 받는 이도 매년 6~8명 정도 된다. 이는 팀의 주전선수가 되면 프로 또는 4년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4년제 대학에 스카우트 되면 학비는 전액 장학금을 받는다.

박정후에 따르면 미국 대학야구팀은 한국과 달리 훈련비를 일절 내지 않는다고 한다. 방학 중에 전지훈련도 없다. 학교가 문을 여는 학기 중에만 연습과 경기를 진행하고 방학 때는 선수도 코칭스태프도 저마다 개인생활을 즐긴다.

겉으로는 느슨해 보이지만 속 사정은 다르다. 박정후는 "미국에 오기 전에는 몰랐는데 막상 와서 겪어보니 야구를 대하는 선수들의 자세가 매우 진지하다.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에게 연습과 경기 일정만 알려주고, 선수들은 서로 주전이 되려는 경쟁의식 속에 저마다 알아서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박정후는 "프로에 진출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긴 하지만 미국에서 공부와 야구를 병행하며 익힌 언어(영어)는 분명 훗날 직업 선택 때 다양성을 제공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다음 학기부터 학부에 진학해 마케팅을 전공한다는 그는 "프로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메이저리그 팀들의 아시아 지역 스카우트도 매력적이고, 한국 프로야구팀의 외국인 선수 통역도 괜찮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어쩌면 마케팅 공부에 빠져 야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을 것도 같다"며 다양해진 선택의 폭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미국 대학야구를 몸소 체험한 박정후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아픈 청춘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했다.

"프로에 지명을 받지 못했다고 그게 제 인생의 끝은 아니라고 봅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왜 그랬는지 이유를 파악하고, 보완해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면 됩니다. 아직 젊으니까요."

이상희 스타뉴스 통신원 sang@lee2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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