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 큰 별이자 평생현역 이춘연 씨네2000 대표를 기리며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21.05.12 09:10 / 조회 : 1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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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계 좌장이던 이춘연 씨네2000 대표가 11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한국영화계 큰 어른이자 평생 현역이라 불리던 이춘연 씨네2000 대표가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런 비보였다.

이춘연 대표는 11일 오후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채 발견돼 서울 보라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은 이날 오전까지 아시아나단편영화제 관련 회의를 비롯해 여러 가지 영화계 현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절친한 사이인 안성기의 신작 '아들의 이름으로' 시사회에 참석, 건강을 회복한 안성기와 덕담을 나누기도 했다.

한국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 중 고인과 인연이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이춘연 대표는 한국영화계 1세대 프로듀서 중 한명으로 '바보사냥'(김기영 감독) '접시꽃 당신'(박철수 감독)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강우석 감독) '지독한 사랑'(이명세 감독) '삼인조'(박찬욱 감독) '미술관 옆 동물원'(이정향 감독)'거북이 달린다'(이연우 감독) '더 테러 라이브' (김병우 감독) 등 50여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배우로도 20여편에 참여했다. 한국 대표 공포영화 시리즈인 '여고괴담'으로 유망한 신인들을 발굴했으며,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모교'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모교'는 지난해 봄 개봉하려다가 코로나19 여파로 밀려 유작이 되고 말았다.

고인은 한국영화계 여러 문제 해결에 앞장 서왔다. 그러면서도 수차례 공직을 제안받았으나 영화 현장을 지켜왔던 천생 영화인이었다.

고인은 넉넉한 인품으로 영화인 결혼식 주례도 참 많이 섰다. 다만 고인의 주례 방식을 익히 아는 영화인들은 결혼식이 시작할 무렵이면 자리를 비웠다가 사진을 찍을 때쯤 돌아오곤 했다. 평소 유머 감각이 풍부한 이춘연 대표는 주례를 볼 때면 꼭 눈이 마주치는 사람을 일으켜 세워서 신랑신부에 대한 즉석 덕담을 시키곤 했기 때문이다. 결혼식장에서 난데 없는 지목에 땀을 흘리면서도 덕담을 하곤 했던 것도 이제 다 추억이 됐다. 고인이 품은 사람들도, 아는 사람들도, 그를 따랐던 사람들도, 그리 많았기에 가능한 일들이기도 했다. 이제 더 이상 그 넉넉하고 유쾌한 주례를 들을 수 없게 됐다.

기자는 고인 덕에 신창원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던 적이 있다. 청송교도소에서 온 편지였다. 2008년 즈음이었다. 이춘연 대표가 만드는 영화 '거북이 달린다'가 신창원 사건으로부터 모티프를 받아 제작된다는 기사에 대한 문의였다. 이춘연 대표와 그 편지를 같이 읽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2004년부터 기획됐던 '거북이 달린다'는 여러 우여곡절 끝에 제작돼 2009년 302만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 우여곡절 속에 신창원의 편지도 포함됐던 터다. 덕분에 영화 기획과 제작, 현장에 대한 공부를 고인에게 많이 배웠다. 두 번 없을 공부다.

이춘연 대표와 그간 나눈 이야기만 늘어놔도 한국영화계의 숱한 변화와 더한 이면, 그리고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을 밤새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말 그대로 한국영화계의 산 증인이었다.

한국영화계의 별이 졌다. 크고 넉넉한 사람이 영화천국으로 떠났다. 못 다한 영화 꿈을 그곳에서 다 펼치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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