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에 대학 등록금 지원까지, 美 야구선수들의 다양한 '제2 인생' [이상희의 MLB 스토리]

신화섭 기자 / 입력 : 2021.04.22 20:40 / 조회 :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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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투수 미치 브라운의 클리브랜드 시절 모습. /사진=이상희 통신원
[피오리아(미국 애리조나주)=이상희 통신원] "선수 때는 몰랐는데 사회에 나와보니 야구가 제일 쉬웠네요."

한국프로야구(KBO) 두산과 삼성 투수를 거쳐 지금은 독립야구단 '시흥 울브스'를 운영하고 있는 서동환(35)이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이는 야구선수뿐 아니라 대다수 운동선수들이 겪는 고충이자 한국 학원스포츠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미국은 어떨까.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학원스포츠를 하려면 반드시 학교에서 정해놓은 일정학점(보통 B학점) 이상의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 미국 내 4년제 대학스포츠 주관기관인 NCAA와 2년제 대학스포츠를 관리하는 JNCAA의 최우선 과제 또한 '공부하는 운동선수 양성'이다.

때문에 각 대학마다 스포츠 선수들을 위해 수강신청과 학점유지 등을 도와주는 학업지도자를 상주시키고 있다. 이들은 학기 중 운동부가 장기간 다른 주로 경기 등을 위해 떠날 때도 선수들과 동행해 그들의 리포트 작성 등 학업관리를 도와주기도 한다.

이런 제도가 있어서인지 미국 내 스포츠 선수들은 운동을 그만두고 난 후 '제2 인생'의 진로가 다양한 편이다.

메이저리그는 선수생활을 접었을 때를 대비해 학업 계획을 계약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다. 2012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클리브랜드의 지명을 받았던 한국계 투수 미치 브라운(27)이 그런 사례다.

클리브랜드 구단과 계약 당시 고교졸업반이었던 브라운은 야구를 그만두거나 은퇴 후 대학에 진학할 때 구단이 4년간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계약에 포함시켰다. 브라운은 과거 기자와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오랜 시간 선수생활을 하면 좋겠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기에 일종의 보험과 같은 장치"라며 "은퇴 여부와 상관 없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2018년 더블 A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은 브라운은 현재 자신의 고향인 미네소타 주에서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비즈니스가 자리 잡으면 대학에 진학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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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트라웃. /사진=이상희 통신원
선수 은퇴 후 직업도 매우 다양하다. 마이크 트라웃(30·LA에인절스)의 형 타일러는 유년시절 동생과 함께 야구를 했다. 하지만 야구에 흥미가 없던 그는 이내 골프선수로 전향했다. 고교 졸업 후에는 골프마저 접고 로스쿨에 진학했다. 트라웃은 과거 기자와 인터뷰에서 "형이 지금은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 중"이라고 확인해 줬다.

트라웃의 아버지는 과거 대학야구를 거쳐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다. 하지만 발목 부상으로 4년 만에 유니폼을 벗고 이내 고등학교 역사 교사로 변신했다.

'미스터 클러치'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전 LA 다저스 외야수 안드레 이디어(39)의 동생 데본 이디어(31)도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방출된 뒤 로스쿨에 진학해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데본 역시 외야수였고, 과거 남태혁(31·SSG)과 함께 다저스 산하 루키팀에서 마이너리그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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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이디어. /사진=이상희 통신원
'최단명 빅리거'로 불리는 애덤 그린버그(40)는 유니폼을 벗은 뒤 더 유명해진 케이스다. 그는 24세였던 2005년 7월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로 콜업됐다. 그리고 대타로 빅리그에 데뷔했지만 첫 타석에서 상대투수였던 발레리오 산토스가 던진 초구 시속 148km의 속구에 뒤통수를 맞았다. 이 사고로 그는 후유증을 겪으며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결국 운동을 그만두게 됐다.

그린버그는 과거 기자와 인터뷰에서 "야구를 그만두는 것뿐이지 그것이 내 삶의 모든 꿈을 내려놓는 것은 아니다. 지금껏 야구를 통해 배운 수많은 경험과 교훈은 내가 또 다른 꿈을 향해 가는 데 있어 분명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은퇴 후 사업가로 변신했던 그린버그는 2018년 미국 코네티컷 주 상원의원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에게 1019표 차이로 석패했다. 지금도 사업을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야구선수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운동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는 강연을 하기도 한다. 다음 선거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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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레이 사이러스의 앨범. /사진=이상희 통신원
미국을 대표하는 컨트리뮤직 가수 빌리 레이 사이러스(60)가 과거 전도유망한 야구선수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미국 켄터키 주 출신인 그는 조지타운대학에 야구장학생으로 진학할 만큼 야구를 잘 했다. 대학시절 그는 메이저리그 신시내티 출신의 조니 벤치(74)처럼 유명한 포수가 되기를 원했다. 사이러스는 신시내티에서 뛰길 희망했고, LA 다저스 스카우트도 이런 그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 3학년 때 우연히 가게 된 미국 가수 닐 다이아몬드의 콘서트로 인해 그의 인생은 하루 아침에 바뀐다.

사이러스는 처음 가본 콘서트에서 음악이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이 있다는 걸 깨닫고는 다음 날 바로 자신의 포수글러브를 팔아 기타를 구입했다. 그리고 야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온갖 고생 끝에 1992년 발매한 그의 첫 번째 앨범 속에 수록된 '깨지기 쉬워 아픈 마음(Achy Breaky Heart)'이란 곡이 미국은 물론 호주와 영국에서까지 히트를 치면서 무려 2000만장의 앨범이 팔리는 대박을 기록했다.

이상희 스타뉴스 통신원 sang@lee2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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