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도, 올림픽도 프랑스 '발명품'이라고?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1.03.17 10:49 / 조회 : 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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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축구대표팀의 킬리안 음바페가 2018 러시아 월드컵 우승 뒤 트로피에 입맞추고 있다. /AFPBBNews=뉴스1
근대 스포츠의 발명은 영국과 미국의 합작품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의 선두를 달렸던 영국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스포츠를 만들어 냈다. 그 외의 근대 스포츠는 대부분 미국의 발명품이다. 농구, 배구, 야구, 아메리칸 풋볼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이유로 스포츠 용어는 대부분 영어다. 한 예로 풋볼이란 단어는 표기법만 다르게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로 변용돼 사용되고 있다. 유럽 지역에서 이탈리아만이 칼치오라는 단어를 쓸 뿐이다.

심지어 영국에서 근대 스포츠로 탄생한 럭비는 발상지로 여겨지는 잉글랜드 사립학교 럭비 스쿨에서 이름을 따와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배드민턴도 이 종목이 고안된 보포트 공작의 영지인 배드민턴이란 지명을 종목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영국과 미국에서 만든 근대 스포츠가 아니면서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유도와 태권도에서는 일본어와 한국어가 공식용어로 쓰인다.

스포츠와 관련해 프랑스어가 세계 공통어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경우는 펜싱과 사이클이다. 이 가운데 사이클 경기장을 지칭하는 벨로드롬(Velodrome)은 자전거를 의미하는 Velo와 경주를 할 수 있는 경기장을 뜻하는 drome이 합쳐진 프랑스어다.

하지만 세계 스포츠계에서 벨로드롬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프랑스 발명품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의 대명사인 올림픽과 월드컵이다. 근대 올림픽을 창조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월드컵을 만든 국제축구연맹(FIFA)도 모두 프랑스가 주도해 만든 국제 스포츠 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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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로고 발표식 모습. /AFPBBNews=뉴스1
우선 프랑스가 근대 올림픽을 창조하게 된 근본적 이유는 보불 전쟁(1870~71년)에서의 패배이다. 프랑스는 보불 전쟁에서 독일에 패해 자국의 영토였던 알자스 로렌 지역을 잃게 되면서 전면적인 사회개혁의 필요성이 거론됐다.

프랑스 사회개혁의 핵심은 강한 프랑스 청년의 육성이었고 자연스레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쿠베르탱 남작은 세계 최강 국가로 부상한 영국과 대서양 건너 편에 있는 신흥 강국 미국의 교육제도와 스포츠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그는 영국 사립학교와 미국 대학교에서 성행하고 있던 럭비와 아메리칸 풋볼에 매료됐다.

쿠베르탱 남작은 팀 스포츠를 통해 리더십, 협동심, 희생 정신을 경험하고 있는 영국과 미국의 청년들의 사례를 프랑스 사회에 그대로 이식시키려고 했다. 당시 프랑스 엘리트 교육의 요람인 리세(대학예비학교)에서는 오직 ‘혼자서 하는 학업’에만 집중해 체력 증진을 위한 교과과정이 대체로 생략됐으며 협동심 보다는 치열한 경쟁구도를 부추기고 있었다. 이에 쿠베르탱 남작은 럭비를 비롯한 근대 스포츠를 리세에서 확산시키는 데에 주력했다.

쿠베르탱 남작이 꿰뚫어 본 스포츠의 가치는 단순히 체력증진과 협동심 배양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공정한 심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는 영국의 힘은 공정한 규칙을 통해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부자와 가난한 자, 귀족과 평민, 고용주와 노동자가 서로 타협하고 협력하는 체제에서 나온다고 판단했다. 여기에서 쿠베르탱 남작이 중요하게 본 것은 ‘페어 플레이(공명정대한 행동)’였으며 이를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가 공유해야 할 가치로 내세웠다. 이런 이유로 그는 근대 올림픽을 주창했고 올림픽 정신의 핵심을 페어 플레이에서 찾으려고 했다.

1890년 쿠베르탱 남작이 주도해 창립한 프랑스체육연맹(USFSA)은 국제축구연맹 창설에도 공헌했다. 기자출신으로 연맹의 사무총장이었던 로베르 게렝은 FIFA 창립의 산파 역할을 했다.

프랑스가 이와 같은 시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근대 축구의 종가인 영국이 축구 국제기구 창설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럽 대륙의 축구인들은 잉글랜드 축구협회(FA)와 적극적 교류를 하고 싶었지만 FA는 이들의 일천한 축구 역사나 낮은 경기력을 이유로 홀대했다. 그 사이 이미 올림픽을 만든 경험이 있었던 프랑스가 선두에 나서게 된 셈이다. 1904년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된 FIFA(Fede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가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 약자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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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 축구대표팀. /AFPBBNews=뉴스1
근대 올림픽은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출범했지만 월드컵은 1930년부터 시작됐다. 그 이전까지 FIFA의 핵심사업은 올림픽이었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축구 종목은 초기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것은 아니었다. 참가국의 숫자도 매우 적었다.

축구가 올림픽 주요 종목으로 자리 잡게 된 때는 1924년 파리 올림픽 때였다. 당시 남미의 강호인 우루과이가 출전해 정교한 볼 컨트롤과 창의적인 패스 플레이를 선보이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4년 뒤 펼쳐진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우루과이는 2연패를 기록했다. 당시 축구 경기의 총 관중 수는 약 25만 명으로 다른 올림픽 종목을 압도했다. 여기에는 유럽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기술축구를 선보였던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에 대한 유럽 팬들의 높은 관심이 크게 작용했다.

이 때 FIFA 회장이었던 또 다른 프랑스인 줄 리메는 축구 한 종목만으로 세계대회를 치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월드컵 대회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줄 리메는 유럽이 아닌 남미의 역할에 주목했다. 1930년 제1회 월드컵이 우루과이에서 개최된 이유는 이 해가 우루과이의 독립 100주년이기도 했지만 당시 실력 차원에서 세계 축구의 중심이 우루과이를 축으로 한 남미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대회에서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를 꺾고 정상에 올랐고 이후 유럽 국가의 도전이 본격화됐다. 초기 월드컵에서 중요한 흥행 포인트였던 유럽과 남미의 경쟁구도는 이렇게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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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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