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의 아트마켓] 02, 저작인격권

채준 기자 / 입력 : 2021.03.03 10:23 / 조회 :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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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인격권, 작가와 작품은 하나일까?


집 주인이 작가의 허락 없이 벽화를 훼손할 수 있을까?

벽화가 부동산개발에 미치는 영향은?

작가의 인격권이 작품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거리 예술가들도 저작인격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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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Pointz, 뉴욕, 2013. 사진제공= Ezmosis via Wikimedia Commons.


영국 출신의 거리 예술가 뱅크시의 ‘아추!! (Aachoo!!; 할머니의 재채기에 틀니가 날아가는 재미있는 벽화)’ 작품 에피소드는 예술작품에 대한 저작권과 소유권이 각기 다르게 구별됨을 증명했다(케이트의 아트마켓 1 참고)

벽화 저작권은 뱅크시에게, 소유권은 집 주인에게 소속되어 각각 벽화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하지만 소유권자인 집 주인은 저작권자인 뱅크시의 동의 없이 집을 자의로 팔 수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일 집 주인이 집을 매도하는 대신에, 벽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이유로 벽을 철거하거나, 벽화에 덧칠을 할 수 있을까? 또 그렇게 할 경우에 예상되는 법적 문제는 무엇일까?

당연히 소유권을 가진 집주인은 집에 대한 전면적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신의 집 일부인 벽도 마음대로 사용하거나 처리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벽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벽을 철거하거나 새로 페인트를 칠해 벽화를 지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모든 소유권자가 자신이 소유한 예술 작품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작가의 저작권은 독점적 복제에 대한 재산권적 권리임과 동시에 ‘저작인격권’이라는 권리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2020년 10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2013년부터 7년을 끌어온 뉴욕 롱아일랜드시티에 위치한 5 Pointz의 예술가들과 부동산 개발회사 간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인 예술가들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확정했다. 부동산 개발회사에 675만 달러 (한화 약 74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미국을 위시한 전 세계 예술계의 주목을 받은 이 재판은 그래피티의 메카로 불리던 벽화 전시장인 5 Pointz를 소유한 부동산 개발회사가 2013년 돌연 건물 철거를 결정하면서 시작되었다.

1990년대부터 예술가들의 스튜디오 역할을 해온 이곳에서 작품을 전시 중이던 벽화작가 21명은 즉각 반발하면서 법적 투쟁에 돌입했다. 미국 시각 예술가 권리법 (The Visual Artists Rights Act of 1990, VARA)의 시각 예술 작품의 왜곡, 변형 또는 수정에 의한 창작자 권리침해를 이유로, 고급 주거용 고층 건물을 신축하고자 기존 건물을 철거하려는 부동산 개발회사를 법원에 제소한 것이다. 2018년 뉴욕 연방지방법원은 소유주가 작가들의 작품을 훼손하여 작가들의 명예에 해를 입히고 저작인격권을 침해했다고 결론지었다. 이어진 작년 연방항소법원과 연방대법원 재판 모두 원심을 확정함으로써 세기의 재판으로 수 년 간 세간의 주목 속에 이어진 긴 법정 싸움이 마무리되었다.

이 소송은 5 Pointz가 오랜 논란의 소재인 거리 예술의 저작권을 확립하고, 시각 예술 창작자들의 저작인격권을 인정하는 중요한 판례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저작인격권이란 작가의 인격권이 그 작품에도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저작인격권은 주로 미국과 유럽에서 도덕적 권리 (moral rights)로 일컬어 진다. 베른협약의 정의에 따르면 저작권의 재산권과 독립된 권리로, 재산권이 양도된 후에도 저작자는 작품의 저작자임을 주장할 수 있다. 또 작품과 관련해 작가의 명예와 평판에 해가 될 수 있는 왜곡이나 수정, 또는 훼손이 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즉, 이미 나의 소유가 된 예술작품이라 해도 모든 작품을 작가의 허락이나 동의 없이 내 마음대로 훼손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만일 이에 반해 작품을 훼손한다면, 5 Pointz의 경우처럼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낯설게 여겨질 수 있는 ‘저작인격권’은 국가별로 그 인정 범위가 다르다. 저작인격권을 처음 제정하고 중요시하는 유럽 국가들은 예술 전반에 걸쳐 그 범위를 넓게 인정한다. 반면, 개인의 소유권과 재산권적 의미를 중요시하는 미국에서는 아직 저작인격권의 해당 범위를 시각 예술로 한정하고, 그 중에서도 전문가들이나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지위에 있는 작품들로 제한한다. 한국은 미술, 음악과 어문 분야의 창작물에 저작인격권을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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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ksy, 크리스마스 인사 (Season’s Greetings), 2018. 사진제공= banksy.co.uk.


뱅크시의 작품 ‘아추!!(Aachoo!!)’처럼 집주인의 허락 없이 그려진 벽화들은 어떨까? 이들은 건물 소유권자의 허가 없이 그려진 불법적 작품이 대부분이다. 거리 예술가들은 이러한 여러가지 불법적 행위로 인해 주로 익명으로 활동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거리예술 작품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지만, 그들이 저작인격권이 보호하는 작품의 훼손 금지를 법정에서 주장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크리스마스 인사 (Season’s Greetings)’ 등 뱅크시 벽화들의 일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허락 없이 그려진 그림을 훼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지역공동체 등이 그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전하는 방법이 보다 현실적인 조치로 보인다.

모든 예술적 창작물에 대해 저작인격권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에 소개한 5 Pointz 사례처럼 영구적이라기 보다는 임시적 성격이 강한 거리 예술도 저작권이 인정되고 있다. 또, 작품에만 한정되지 않고 작품이 곧 작가의 인격권까지 하나로 연결되어 의미가 확대되어 이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회가 예술을 보는 관점과 작품을 대하는 관념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예술은 우리의 각박한 현실에서 각기 다른 나름의 의미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되곤 한다. 예술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도 조금 더 전향적인 방향으로 열린다면 더 많이 더욱 다양한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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