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엄마의 미친봉고' SNS에 올라온 세줄에서 출발한 영화 [★비하인드]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21.01.23 10:00 / 조회 : 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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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올라온 단 세 줄의 글로 시작해 만들어진 영화가 있다. 21일 공개된 '큰 엄마의 미친봉고'(감독 백승환)다.

'큰 엄마의 미친봉고'는 명절 당일 뒤집개 대신 봉고차 열쇠를 집어든 큰 며느리가 남편 몰래 며느리들을 하나둘 차에 태워 탈출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다. SBS콘텐츠허브와 KT가 공동제작한 OTT오리지널영화다.

이 영화는 사실 수년 전 한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큰 엄마한테 납치당함'이란 제목의 세 줄짜리 글에서 비롯됐다. '큰 엄마가 우리 엄마랑 작은 엄마랑 사촌언니 동생들 해서 여자가족들한테 읍내 장보러 가자고 봉고차에 태우더니 지금 고속도로 달리심. 우리 강릉간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은 당시 여러 SNS에서 상당한 화제를 샀다.

백승환 감독과 제작진은, 이 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문제는 백 감독과 제작진이, 이 글을 쓴 사람을 찾아서 동의를 얻으려 햇지만 찾을 수 없었던 탓에 그대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후 '큰 엄마의 미친봉고'가 제작돼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당시 글을 쓴 사람이 지난해 12월 SNS에 글을 올리면서 아이디어 표절 의혹이 불거졌다. 해당 글을 쓴 이는 SNS에 원작자의 동의 없이 영화가 만들어졌다며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엔딩크레딧에 이름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인터넷에 올라온 '썰'(이야기)을 보고 만든 이야기만 들어가면 만족한다"고 올렸다.

이 글은 곧 삭제됐지만 제작진은 글쓴이를 찾아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디어 출처 공개 등 원만한 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큰 엄마의 미친봉고' 측은 스타뉴스에 "기획단계부터 글을 쓴 분을 찾으려 계속 애를 썼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며 "원작자를 찾지 못하면 애초에 크레딧에 출처를 밝힐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행히 이번에 글을 쓴 분과 연락이 닿아서 출처 등 여러 이야기를 잘 나눴다"고 덧붙였다.

'큰 엄마의 미친봉고'처럼 해외에서도 SNS에 올라온 글이 영화화된 사례가 있다. 2019년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됐던 '졸라'는 2015년 아이지아 킹이란 여성이 졸라 문이란 이름으로 트위터에 올린 144개의 경험담을 영화로 만들었다. 후터스에서 일하던 흑인여성 졸라가 백인여성 스테파니와 돈을 벌기 위해 마이애미 스트립클럽으로 가면서 벌어지는 엄청난 해프닝을 담았다. 미국 배급사 A24에서 아이지아킹과 접촉해, 그녀와 배우 겸 감독인 자니크자 브라보가 같이 각본을 썼다. '졸라' 엔딩 크레딧에는 "아이지아 '졸라' 킹의 트위터에서 기초했다"고 문장이 담겨있다.

사실 아이디어와 콘셉트만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화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아이디어와 콘셉트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아이디어와 콘셉트가 시작이며 시작이 반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와 관련해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원작의 설정 정도 빼고는 인물과 사건이 다 다르다. 빙하기가 도래하면서 생존자들이 기차에 타고 있다는 기본적인 것만 그대로이고 1년 동안 내가 다 완전히 새로 썼다"면서도 "그래도 설정 자체가 원작의 독창적 발상이라 할 만큼 워낙 파격적이고 참신한 거니깐, 정식으로 판권을 사서 원작에 대한 충분한 예우를 갖추려고 했다"고 밝혔다. 기존 창작물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데 대한 정답에 가까운 말이다.

물론 기존 창작물의 아이디어와 공공에 회자된 이야기는 상황이 좀 다르다. 뉴스 등을 통해 세상에 널린 알려진 사건, 역사적인 사실 등은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 사건의 당사자, 가족, 유족 등의 동의를 얻지 않아도 무방하다. 다만 그 사건을 다룬 창작물을 통해 명예훼손 등의 분쟁이 있을 수도 있고, 도의적인 문제 때문에 당사자, 가족, 유족 등 관계자들에게 사전에 동의를 구하고 이 과정에서 소정의 돈을 지급하기도 한다.

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영화 개봉을 앞두고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기에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이 제기된 것만으로 영화에 안 좋은 영향이 생기기에, 소장 제기를 알린 뒤 물밑에서 협상이 이뤄지곤 한다.

'큰 엄마의 미친봉고'도 엄밀히 따지면, 아이디어를 무단 도용했다는 도의적인 비방은 받을 수는 있지만,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법적인 결론에 도달해 표절이라고 하기는 쉽지 않다. '졸라'는 트위터에 올라온 타래가 창작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기승전결이 뚜렷한 서사였지만, '큰 엄마의 미친봉고'는 아이디어 차원에 가까운 탓이다.

어쨌든 '큰 엄마의 미친봉고' 측은 글쓴이와 원만히 합의했기에, 과정이 미흡하긴 했지만 더이상 논란은 야기되지 않을 것 같다. 명절 가사노동을 책임졌던 여자들이 유쾌하게 탈주한다는 '하이콘셉트'가 어떻게 영화로 만들어졌을지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큰 엄마의 미친봉고'는 21일 메가박스에서 먼저 개봉한 뒤 28일 시즌 앱을 통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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