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리그를 위해 '로빈 후드'가 된 EPL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0.12.24 16:34 / 조회 :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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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한국시간) 열린 2020~2021 잉글랜드 카라바오컵(리그컵) 토트넘-스토크 시티(챔피언십리그·2부리그)의 경기에서 토트넘 해리 케인(왼쪽 두 번째)가 헤더 슈팅을 시도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2020~2021시즌 초반인 지난 10월 자신들의 축구 문화에서 오래 지켜온 금기 하나를 깼다. 토요일 오후 3~5시 시간대에 펼쳐지는 경기에 대한 유료 생중계였다. 코로나 19로 줄어든 구단 수입을 상쇄하는 한편 새로운 수익의 일부를 하부리그 팀들에 지원하겠다는 취지였다.

토요일 오후는 전통적으로 2부리그 이하 팀들의 경기가 주로 펼쳐지는 시간대였다. 이 때문에 잉글랜드에서는 프리미어리그 생중계로 인해 하위리그 팀들의 입장수입에 미칠 악영향을 방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이 시간대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는 생중계로 볼 수 없었다.

프리미어리그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발전을 주도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도 토요일 오후 경기의 생중계를 시행하지 않았다. 19세기 말 축구경기 관람을 일주일 동안 고대하던 노동자들에게 토요일 3시는 고된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는 자유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부터 시행된 토요일 오후 경기의 유료 생중계 시청료는 한 경기당 약 2만 4000원으로 책정됐다. 하지만 2부리그 이하의 하위리그 팀들을 돕기 위해 예외적으로 준비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프리미어리그의 토요일 오후 유료 생중계는 실패작이었다.

기본적으로 유료 생중계가 진행되는 동안 프리미어리그 20개 팀들은 하위리그에 대한 재정적 지원 방안을 도출하지 못해 유료 생중계 시행의 명분을 잃었다. 애초에 거론됐던 방안은 프리미어리그 수입의 25%를 하위리그를 위해 활용하자는 것이었지만 프리미어리그 부자 구단들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잉글랜드 축구 팬들은 프리미어리그의 이기적인 유료 생중계를 보이콧했다. 대신 그들은 생중계 유료시청 비용에 해당하는 금액을 가난한 사람들이 무료로 음식을 얻을 수 있는 지역 푸드 뱅크에 기부했다. 잉글랜드 팬들은 하위리그를 위해 '로빈 후드'가 되기를 거부했던 프리미어리그에 이렇게 반기를 들었다.

프리미어리그를 포함한 잉글랜드 프로축구 리그는 코로나19 사태로 구단 운영이 매우 어려운 상태다. 하지만 무관중 경기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2부리그 이하의 팀에서 훨씬 심각하다. 프리미어리그 팀들은 전체 구단 수입의 15%가 입장 수입이지만 2부리그 이하의 팀들은 전체 수입 중 입장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상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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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한국시간) 프리미어리그 첼시(파란 유니폼)-웨스트햄의 경기 모습. /AFPBBNews=뉴스1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최대 문제점은 2부리그 이하에서 유망 선수를 발굴해 낼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고 육성 프로그램이 효율적으로 작동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유소년 육성정책에 하위리그부터 총력을 다하고 있는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과 비교했을 때 잉글랜드 축구가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핵심적 부분이기도 하다.

다른 모든 문제를 떠나 잉글랜드 하위리그 팀들의 경기장은 크게 낙후돼 있다. 2018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잉글랜드 축구협회(FA)에 등록된 2만 9000개의 프로 축구 팀 가운데 약 49%는 우천 시 배수가 제대로 안 되는 경기장 시설 때문에 에정된 경기를 한 시즌에 적어도 5차례 이상 취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같은 하위리그의 심각한 상황 때문에 FA는 2018년에 남아 있는 유일한 자산인 웸블리 구장 매각까지 고려했었다. 하지만 문화재나 다름없는 웸블리 구장 매각에 대해 여론이 좋지 않게 전개되자 이를 포기했다.

코로나 19사태가 계속되자 웸블리 구장에 대한 매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그만큼 잉글랜드 축구의 하부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하위리그 팀들을 위한 재정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재정적 위기를 겪고 있는 하위리그 팀들을 도와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프리미어리그는 결국 하위리그에 대한 재정지원책을 확정했고 프리미어리그의 이기주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토요일 오후 유료 생중계도 중지시켰다.

프리미어리그가 내놓은 돈은 3670억 원이다. 프리미어리그는 이번 재정 지원을 통해 수입은 감소했지만 하위리그와의 공생과 연대의 가치는 되찾았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시대가 세계 최대의 프로축구 산업으로 가파르게 성장한 프리미어리그에 일깨워 준 가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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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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