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받아야 할 이건희 회장의 골프 정신 [김수인의 쏙쏙골프]

김수인 골프칼럼니스트 / 입력 : 2020.11.02 07:00 / 조회 : 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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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인 골프칼럼니스트.
‘花香 百里(화향 백리), 酒香 千里(주향 천리), 人香 萬里(인향 만리).’ 꽃향기는 1백리 가고 술 향기는 1천리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1만리나 간다는 말입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달 25일 별세한 후 1주일이 더 지났지만 삼성을 세계적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킨 고인의 혁신과 도전 정신은 세월이 흘러도 국민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실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삼성가(家)의 골프 사랑은 유명합니다. 이병철 전 회장(호암)은 1987년 10월 어느 날, 투병 중임에도 안양 컨트리클럽에 차를 마시러 갔다가 즉흥적으로 라운드에 나섰습니다. 오후 늦게 시작해 3번 홀을 마칠 때 땅거미가 내렸는데 골프장에서는 카트와 자동차 등의 헤드라이트를 켜 페어웨이를 밝혔습니다. 호암은 6개 홀을 돌고 클럽하우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러곤 20일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호암의 영향으로 삼성가 일원은 어릴 때 골프를 배웠고, 다들 골프를 좋아했답니다. 여자 프로가 생기기 전 호암의 딸들은 한국 여자골프의 주요 인물이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자 골프대회는 1976년 열린 부녀(婦女) 아마 선수권이었는데 호암의 딸인 이인희, 명희 자매가 주름잡았습니다.

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은 2회 대회(1978년) 3위, 4회 2위, 5회 3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아시아 최고 코스를 목표로 강원도 원주에 오크밸리를 건설했습니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호암을 닮아 ‘리틀 이병철’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죠. 경기도 여주에 럭셔리하기로 소문난 트리니티 클럽을 만들었습니다.

 

고 이건희 회장 역시 골프를 좋아했고, 아프기 전에는 ‘싱글’에 가까운 핸디캡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재벌그룹 오너들이 다 그렇듯 이건희 회장도 한 가지 일을 성공시킬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 들었는데 크지 않은 체격임에도 200m를 훌쩍 넘는 드라이버샷 거리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한장상 전 프로골프협회 회장은 “나보다 드라이버샷 거리가 더 나갈 때가 있었다”고 회고합니다. 직원들, 특히 임원들에게는 ‘골프의 정신’을 늘 강조했답니다.

 

이 회장이 강조한 골프의 정신은 두 가지로 요약해볼수 있습니다. 첫째, 남(동반자)을 배려하는 거죠. 자신에게 룰을 엄격히 적용하더라도 상대방에겐 너그러워야 합니다. 동반자의 로스트 볼을 함께 찾아주는 것도 일종의 배려입니다.

두 번째는 도전 정신입니다. 골프를 한 번 시작한 이상, 열정을 쏟아 ‘싱글 핸디캐퍼’라는 목표를 꼭 이뤄야 합니다. 이 회장은 생전 임원들에게 “골프를 못치는 이는 머리가 나쁘거나 열정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다그쳤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삼성 그룹 임원들은 하나같이 실력들이 뛰어납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이 회장의 골프 정신을 항상 마음에 새겨 ‘명랑한 골프, 실력 있는 골프’에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골프 사랑 이야기를 하다보니 세계권투협회(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을 지낸 김기수(1939~1997)씨가 생각납니다. 그는 1996년 9월 간암 판정을 받았지만 좋아하던 골프를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필자는 1997년 6월 2일 지인들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한양CC 구코스에서 라운드를 했는데요, 앞 팀에 누가 휠체어를 타고 자치기를 하듯 플레이를 하는 게 아닙니까? 캐디에게 물어보니 김기수씨였습니다.

원래 카트가 페어웨이에 들어가지도 못하지만 휠체어는 더더욱 입장금지인데, 김기수씨가 워낙 졸라 골프장측에서 ‘휠체어 라운드’를 허용해줬다고 합니다. 그날로부터 8일 뒤인 6월 10일 그의 부음(訃音)을 접했으니 아마 ‘골프사랑’치고는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사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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