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유치 후 '눈물'... 한국 스포츠엔 故 이건희 회장 있었다

김동영 기자 / 입력 : 2020.10.25 17:05 / 조회 : 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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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후 눈물을 보이고 있는 이건희 회장. /사진=뉴시스(삼성전자 제공)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세계적인 기업가지만, 스포츠계에도 큰 발자취를 남긴 '스포츠맨'이다.


삼성전자는 25일 "이건희 회장께서 2020년 10월 25일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린다"라고 전했다.

이건희 회장은 1966년 동양방송에 입사했고, 1979년 삼성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1987년 별세한 이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랐고,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스포츠에도 강한 애착을 보였다. 자신이 레슬링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고, 1982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을 맡았다. 이건희 회장의 재임 시기 한국 레슬링은 올림픽 7개, 아시안게임 29개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40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세계 최정상에 군림했다.

야구 사랑도 각별했다. 야구를 럭비, 골프와 함께 그룹 3대 스포츠로 선정하기도 했다. 1982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 라이온즈 구단주를 지냈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군 훈련장인 경산 볼파크 또한 이건희 회장 덕분에 생겼다.


2011년 삼성이 5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때는 류중일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하기도 했다. 현재도 삼성은 KBO 최고 명문 구단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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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 올림픽 당시 선수촌을 격려 방문한 이건희 회장(왼쪽). /사진=뉴시스(삼성전자 제공)
야구 뿐만 아니라 농구(썬더스), 축구(수원 삼성), 배구(블루팡스) 등 인기 종목과 탁구, 배드민턴, 육상, 태권도 등 비인기 종목까지 무수히 많은 종목에 투자했고, 게임단까지 운영했다. 한국 스포츠계의 발전을 위해 전방위적인 활약을 펼쳤다.

국제적인 영향력도 컸다.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세계스포츠계에 등장했다. 이후 한국 스포츠 외교의 중심에 섰다. 2014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2017년 IOC 위원직에서 물러났지만, 2017년 9월 IOC 명예위원으로 추대됐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또한 이건희 회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부터 2011년 남아공 더반 IOC 총회까지 1년 6개월 동안 출장을 다니며 평장 유치를 호소했다.

출장 일수만 170일에 달한다. 세계적인 기업의 총수로서 챙길 일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발로 뛰었다. 2011년 평창이 개최지로 선정됐고, 이건희 회장은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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