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져버린 눈물에 5분간 침묵... 김태균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일문일답) [★대전]

대전=이원희 기자 / 입력 : 2020.10.22 17:58 / 조회 : 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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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쏟은 김태균. /사진=OSEN
"20년 동안 저를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셨던 한화 이글스 팬들에게 감사했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5분여간의 침묵. '영원한 이글스맨' 김태균(38·한화 이글스)이 터져버린 눈물을 어렵게 멈추고 가까스로 꺼낸 첫 마디였다.

프로 데뷔 20년차에 은퇴를 결심한 김태균은 22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자신의 은퇴 기자회견에서 "저는 충청도 천안 출신이기 때문에 항상 한화 야구를 보며 운동을 열심히 했다. 한화에 입단해서 잘하고 싶은 목표와 꿈을 가지고 자라왔다"며 "한화는 그 꿈을 이루게 해준 팀이었고, 한화 선수여서 너무 행복했다. 한화는 저의 자존심이 자부심이었다"고 먹먹한 감정을 쏟아냈다.

김태균은 "한화 유니폼을 입고 뛴 것은 제게 큰 영광이었다. 이글스 유니폼을 벗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한 것은 사실"이라며 "매년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 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인터뷰하면서 팬들에게 희망을 드렸는데, 그 약속을 한 번도 지키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태균은 "좋은 후배들이 저의 그 한을 풀어줬으면 좋겠다. 팀에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많이 모이고 있으니 머지않아 강팀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후배들을 보면서 더 넓고 좋은 기회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후배들이 제가 못했던 우승이라는 꿈을 이뤄주길 바라는 마음에 은퇴를 결심했다. 지난 20년 동안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다"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2001년부터 한화 입단을 통해 프로무대를 밟은 김태균은 올해 자신의 친정팀에서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게 됐다. 김태균은 일본 시절(2010~2011년)을 제외하고 이글스 유니폼만 입었다. 그야말로 '이글스 맨'이다. 통산 2014경기에 출전해 2209안타(역대 3위), 3557루타(4위), 출루율 0.421(2위), 타율 0.320(5위), 홈런 311개(공동 11위) 등 KBO리그 역사를 써냈다.

올 시즌 김태균은 67경기에서 타율 0.219, 2홈런 29타점을 기록했다. 개인 통산 가장 낮은 성적이었다. 여기에 지난 8월16일 왼쪽 팔꿈치 충돌증후군 판정을 받은 뒤 1군에서 말소됐다. 올 시즌 내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재활 기간이 점점 늘어났다. 결국 김태균의 프로 생활 마지막 경기는 8월15일 삼성 라이온즈전이 됐다.

앞으로 김태균은 단장 보좌 어드바이저 역할을 맡는다. 김태균의 은퇴식은 다음 시즌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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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기자회견에 임하는 김태균. /사진=뉴스1
다음은 김태균 일문일답.

-우승은 못했지만, 성적이 가장 좋았던 지난 2006년(한국시리즈 진출) 성적이 가장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아쉬움은 없는지.

▶그때는 어렸고 워낙 좋은 선배님들이 이끌어주셨다. 당시 한국시리즈를 경험하면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는 우리 팀이 강팀이었기 때문에 언제든 또 그런 기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과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그 우승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후배들에게 그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니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하라는 말을 많이 해왔다.

-본인과 관련된 별명이 많은데.

▶팬들이 많은 별명을 지어주면서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봤다. 안 좋은 별명도 많이 있었지만, 그런 것도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저도 별명을 접하면서 웃은 적도 있다. 팬들의 사랑과 관심인데, 이제는 그런 별명들을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가장 기억에 남는 별명이 있는가.

▶별명이 너무 많다. 이중 어린 시절 들었던 '김질주'가 기억에 남는다. 저는 덩치가 크고 느릿느릿한 선수였는데 제 이미지와 다른 별명이었다. 또 팀 중심이 되고 한화의 자존심이라는 별명도 마음에 들었다.

-올해 은퇴를 결심하게 된 시기나 계기가 있는가.

▶제가 지난 해 1년 계약을 했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제가 납득하지 못하는 성적이 난다면 결단을 내리려고 했다. 한화라는 팀이 저로 인해 부담이 되거나 불편함이 없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다. 1년 계약 이후 그 어느 해보다, 20살 젊을 때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다. 언제든 결단을 내릴 때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그런데 시즌 개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군으로 내려갔을 때 혼자 생각을 많이 했고 (은퇴를) 준비했다. 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다시 1군에 와서 열심히 했지만, 8월 다시 2군으로 내려가면서 마음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젊고 유망한 선수들을 보면서 은퇴를 결심했다.

-은퇴 결심은 이달초에 한 것으로 알고 있고, 그동안 서산구장에서 꾸준히 훈련했다. 짐도 은퇴 선언 이후 뺐는데.

▶2군 서산구장에는 젊은 선수들이 열심히 준비하는 곳이다. 또 그곳에서 얼마나 힘들게 준비해야 1군 무대에 설 수 있는지 그 과정들을 잘 알고 있다. 선수들이 워낙 열심히 준비하는 상황에서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고, 후배들과 맛있는 것도 먹으며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하려고 했다. 후배들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성실히 답변했다. 저도 큰 결정을 내리려고 하는 힘든 상황이어서 쉽지 않았지만, 최대한 티 내지 않고 평상시처럼 하려고 노력했다.

-그간 장타보다는 정교함에 중심을 두는 타격을 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아웃되는 것이 싫었고, 삼진 당하는 것을 싫어했다. 아웃되더라도 배트에 공이 안 맞으면 실망감이 상당히 컸다. 항상 타율이 좋고 정확성 좋고, 홈런도 잘 치고, 안타도 잘 치는, 투수가 상대하기 꺼려하는 타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준비했다. 프로에 와서도 이 부분에 포커스를 맞췄다. 홈런이 많지 않았지만 다른 좋은 기준에 맞춰서 지금까지 경기를 해왔다. 개인 성적과 관련해 저의 타격 매커니즘에 대해선 후회해 본 적이 없다.

-팀 내 누가 포스트 김태균이 될 것 같은가.

▶사실 마음속으로는 있지만, 모든 후배들이 다 같이 잘했으면 한다. 다 같이 포스트 김태균이 돼서 한화가 최강팀이 될 수 있는 힘이 됐으면 한다. 굳이 한 명을 지목하지 못 하겠다.

- 기록이 많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기록이 있다면.

▶기록을 의식하며 뛰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도 뽑자면 300홈런, 2000안타, 1000타점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뿌듯하고, 주목을 많이 받았던 연속 출루 기록도 기억에 남는다.

- 2000개가 넘는 안타 중 기억에 남는 안타는.

▶신인시절 첫 안타였던 홈런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아버지께서 TV로 그 경기를 보시다가 눈물을 흘리셨다. 그때 제 첫 안타이자 첫 홈런, 그 타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하일성 해설위원이 '이 선수, 큰 선수가 되겠어요'라는 멘트를 했다.

▶감사드리는 멘트였다. 그만큼 주위에서 기대를 많이 해주셨는데, 그 기대, 관심에 보답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주위에서는 그냥 야구만 잘하는 선수로 비쳐질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을 많이 했다. 제 성격이 예민한 것도 있어서 다음 날 경기 준비를 남들보다 더 했고, 특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하는 것을 좋아했다. 20년 선수 생활이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주위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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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쏟은 김태균. /사진=OSEN
-선수 생활 마지막 경기가 8월15일 삼성전이 될 수 있다. 아쉬움 없는가.

▶당연히 모든 선수가 처음이 중요하지만, 마지막도 중요하다. 팀이 잘하고, 본인도 좋은 성적일 때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은 멋진 상황을 꿈꾼다. 이승엽 선배라든지, 박용택 선배처럼 좋은 마무리를 하는 것을 꿈꾸고 기대했지만, 각자마다 상황이 있는 것 같다. 그 분들이 워낙 뛰어난 선수들이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은퇴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었고, 제 팀 상황에서도 제가 빨리 결정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치열한 삶에서 벗어나게 됐는데, 은퇴 뒤에 무엇을 해보고 싶나.

▶제가 너무 어릴 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야구를 했고, 야구만 바라보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못해본 것이 많아 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 야구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또 한화가 좋은 팀으로 갈 수 있는 제가 해야 할 공부,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고 싶다. 좋은 선배들이 많으니 조언을 구해서 제가 어떻게 배우고 준비해야 하는지 느끼도록 하겠다.

단장 보좌 어드바이저 역할에 대해선 구단이 팀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저에게도 기회를 준 덕분에 조언하고 조율할 수 있는 역할이 맡을 것 같다. 누가 되지 않고 더 좋은 결과 낼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하겠다.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야구를 하셨다.

▶집에서 정말 제가 아무 것도 모를 때 야구를 시키셨다. 사실 친구들하고 뛰어놀고 싶어 그 어린 나이에 방황 아닌 방황을 하기도 했다. 야구를 안 하고 집에 간 적이 많았지만, 초등학교 시절 감독님께서 잘 잡아주셨고, 아버지도 저를 잡아주셨다.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부터 어쩔 수 없이 이 길로 가야하는구나라고 마음을 먹고 부모님의 속을 썩이거나, 야구말고 다른 생각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목표를 가졌다.

중학교 시절에는 부모님이 외진 곳에 실내연습장을 지어주셔서 캐칭 연습, 배트 연습을 했다. 특히 아버지는 제가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면 스윙 1000개씩을 하지 않으면 잠을 재우지 않을 정도로 열정이 넘치신 분이었다. 그만큼 야구만 바라보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글스 유니폼을 벗지만, 앞으로 기대되는 제2인생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82년생 선수들이 여러 명 뛰고 있는데 먼저 은퇴하셨다. 하시고 싶은 말씀.

▶저 때문에 괜히 친구들의 머리가 복잡하거나, 불편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니 친구들은 오래오래 야구를 잘해서 제가 하지 못한 멋진 마무리를 했으면 좋겠다. 대표팀이나 서로 의지를 많이 했고, 좋은 추억들도 많이 있다. 그 추억을 안고 떠날 것이고, 다른 선수들은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했으면 한다.

-아내, 친구들은 은퇴 소식을 듣고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제가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이어서 집에서는 제 의견을 존중해주고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친한 지인들은 당연히 아쉬워한다. 더 할 수 있는데 왜 그만두느냐는 말을 많이 해줬는데, 저로선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제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분위기였다.

-아쉬운 점 많다고 하셨는데, 자신의 선수생활을 점수로 준다면.

▶30~40점 밖에 되지 않을까 싶다. 항상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개인에 대한 점수를 매길 수는 없고, 매겨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매기자면 팀 중심타자였고, 중심선수로서 팀이 우승할 수 있도록 같이 가지 못한 점 때문에 점수를 많이 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30~40점을 주고 싶다.

-감사한 스승님이 많겠지만, 세 분만 꼽는다면.

▶일단 신인시절부터 저에게 많은 기대와 도움을 주셨던, 또 야구 외적으로 사적으로도 동생처럼 아껴주고 챙겨주셨던 이정훈 2군 감독님, 그리고 김인식 감독님을 뽑고 싶다. 김인식 감독님과 함께 야구를 하면서 제가 야구가 정말 많이 늘었고, 개인훈련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았던 시기였다. 선수로서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다음은 김성근 감독님이다. 제가 항상 안주하지 않고 잘 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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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기자회견에 임하는 김태균. /사진=뉴스1
-기자회견 초반 감정이 올라오는 시간이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셨기에 울컥하셨는지.

▶사실 은퇴에 대해 혼자 마음의 준비를 하고 결정할 때는 아무렇지 않았다. 담담했고, 저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후회를 남기지 않은 것도 있어 '별 거 아니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은퇴가 현실로 다가오니 여러 가지 생각이 났다. 앞으로 큰 관심을 받을 일이 없을 것이고,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울컥했다.

-영구결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그 부분에 대해선 구단과 관계자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어떤 결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저보다도 훌륭한 선수가 많았고, 또 영구결번은 뛰어난 선수만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일이다. 저도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구단과 상의해봐야 할 것 같다.

-한화 이글스 팬들이 어떤 선수로 기억하길 바라는가.

▶어떻게든 저를 기억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제 강점이 김별명이니까, 어떤 식으로든 팬들의 기억에 남으면 좋겠다. 전에는 못 느꼈지만, 지금은 잊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 어떤 부분이라도 팬들의 기억에 남았으면 한다.

-프로선수로서 모범을 보여주셨는데. 다른 프로선수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우리는 팬들의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다. 제가 어릴 때는 그저 열심히 하고, 야구만 잘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팬들의 소중함을 인지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생활을 점점 오래하면서 팬들의 사랑과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젊은 선수들이 인지 못할 수 있으니 하루빨리 팬들의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아서, 그에 맞게 운동이나 관리했으면 좋겠다.

-단장 보좌 역할로 일하게 됐는데.

▶그 보직에 관련해 결정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장님, 감독님, 구단 관계자들이 좋은 결정과 앞으로 팀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아무래도 이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으니 선수들의 생각과 정보에 대해 많이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단이 뭔가 바꾸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보좌할 것이고, 이를 하기 위해선 많은 공부와 준비를 해야한다. 열심히 하겠다.

-은퇴 경기가 없다. 그래도 팬들은 한 타석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은퇴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 감사하게도 구단에 은퇴 의사를 전달했을 때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하시고 기회를 주시려고 했다. 하지만 그 한 타석이 저에게 소중하면서도, 저보다 더 간절할 타석이 될 수 있는 선수도 있다. 제 마지막 가는 길이 그런 선수들의 소중한 기회를 뺏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고, 많은 고민을 해서 결정을 내렸다. 그 한 타석에 어떤 선수가 나서서 본인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는, 더 좋은 것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찾아와주셔서 감사드린다. 제 20년 동안 저를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고, 좋은 지도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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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사진=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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