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베테랑·유쾌한 유희관도 이런 긴장은 처음... "KS보다 더 떨렸다" [★잠실]

잠실=이원희 기자 / 입력 : 2020.10.16 00:05 / 조회 :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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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전 도중 미소 짓는 유희관. /사진=OSEN
지난 2009년 1군 데뷔한 두산 베어스의 베테랑 투수, 유희관(34)의 12년 야구인생 중 가장 떨렸던 경기는 언제였을까. 그의 선발 데뷔전도, 우승이 걸린 한국시리즈(KS)도 아니었다. 바로 오늘, 정규시즌 일정 중 하나인 15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과 한화전이었다.


유쾌한 성격으로 유명한 유희관. 하지만 이날 선발 마운드에 오른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달랐다. 진지했다. 팀 포수이자 4살 후배 박세혁조차 유희관에게 '긴장하지 말라'며 조언했을 정도다.

이유가 있었다. 이날 한화전은 유희관에게 무척 중요한 경기였다. 8년 연속 10승 대기록이 걸린 운명의 경기. 8승(11패)을 기록 중이었던 유희관은 앞서 9~10월에 열린 5경기에서 승리 없이 4패, 평균자책점 9.00으로 부진했고, 지난 2일 2군으로 내려갔다. 이대로 정규시즌을 마치는가 싶었는데, 팀 동료 선발 함덕주의 부진으로 1군 복귀해 선발 기회를 다시 잡았다. 남은 일정이 많지 않은 가운데 한화전에 좋은 활약을 보여줘야 한 번 더 선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이날 경기에 앞서 유희관의 10승에 대한 질문을 받은 뒤 "국내선발진 페이스가 떨어진 상황에서 유희관도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유희관의 10승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본인이 잘해야 한다. 오늘 잘 던지면 한 번 더 (선발로)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우려와 기대 속에 유희관이 승리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이날 이글스 타선을 상대로 6이닝(85구) 4피안타 3탈삼진 1실점(1자책)으로 활약했다. 볼넷을 하나도 내주지 않을 만큼 좋은 컨트롤을 선보였다. 2회초 상대 노시환과 김민하에게 연속 안타를 맞아 선취점을 내줬으나, 3~5회 안타 단 1개만 허용하며 상대 타선을 제압했다. 6회초 2사 1루서도 한화 4번 노시환을 3루수 땅볼로 돌려세웠다. 두산 3루수 허경민이 어려운 타구를 잡아내 아웃을 이끌어냈다.


그러자 유희관은 허경민을 기다리며 '하이파이브' 글러브 세리머니를 건네는 등 고마움 마음을 드러냈다. 유희관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날 두산 방망이는 불을 뿜으며 유희관에게 힘을 실어줬다. 6회말까지 무려 15점을 뽑아내 일찌감치 승기를 안겼다. 결국 두산은 16-3 대승을 거뒀고, 유희관도 시즌 9승째를 획득했다. 이로써 선발 등판 기회를 한 차례 더 얻을 것으로 보인다. 8년 연속 10승 기회를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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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인터뷰에 응한 유희관. /사진=이원희 기자
경기 후 유희관은 "2군에 있는 동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팀은 치열한 순위 싸움 중인데, 고참으로서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2군에 있을 때 산까지 올라 여러 생각을 했다"며 "10승을 못할 것 같았는데, 다행히 감독님, 코치님이 기회를 주셨고, 야수들도 도움을 줘서 이길 수 있었다. 지푸라기만큼이라도 (10승) 가능성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어 유희관은 "오늘 졌다면 10승을 포기했다"며 "오늘 못 하면 올해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운드에 올랐는데 너무 떨렸다. 프로 첫 선발 경기, 한국시리즈(KS)보다 더 떨렸다. 가장 떨리고, 울림이 있었던 경기였다. 포수 (박)세혁이가 와서 '진지하게 하지 말라고. 자기가 공을 받는데 너무 웃기다'고 얘기했을 정도"라고 하하 웃었다.

그러면서 "제가 1회 실점, 피안타율이 높은 편이다. 제가 못해 불펜 투수들이 준비했다면 더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1회 때 위기를 다행히 잘 넘겼다"며 "선수들이 가을만 되면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이기는 경기를 많이 한다. 분위기를 타야 힘이 나는데, 마침 팬들도 오셔서 선수들이 더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산의 가을야구가 유력해졌지만, 포스트시즌을 치르기 전 중요한 과제가 남아있다. 최대한 높은 순위로 정규시즌을 마쳐야 한다. 두산을 비롯해 LG 트윈스, KT 위즈, 키움 히어로즈가 치열한 2~5위 순위 싸움을 펼치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김태형 감독은 국내선발진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외국인투수 원투펀치 라울 알칸타라와 크리스 플렉센이 위력투를 펼치고 있다고 해도 함덕주와 최원준 등 국내 선발들의 10월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두산은 이번 3연전 한화 이글스를 만나기 전, 10월 팀 불펜 평균자책점 3.30(리그 1위)으로 활약했지만, 선발평균자책점은 4.34(리그 7위)였다.

하지만 베테랑 유희관이 '8년 연속 10승'이라는 꿈을 안고 돌아왔다. 두산도 흔들리는 국내선발 투수들로 인해 불안감이 있었지만, 유희관의 좋은 복귀투 속에 희망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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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복귀투를 선보인 유희관. /사진=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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