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 감독 "'돌멩이'로 묻고 싶었다..당신도 돌을 던지지 않았냐고"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20.10.15 10:53 / 조회 : 2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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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김정식 감독/사진=이동훈 기자


김정식 감독(50)은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은 영화인이다. 30살에 영화일을 하고 싶어서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영화감독에게 전화하면 되는 줄 알고 영화감독협회에 전화번호 받아 무턱대고 전화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박종원 감독 집에 4개월 동안 전화한 끝에 만났고, 그렇게 영화일을 시작했다. 연출부, 조감독 등을 거쳐 20여년만에 마침내 부끄럽지 않은 데뷔작을 세상에 선보이게 됐다.

10월15일 개봉한 '돌멩이'는 한적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8살 지능을 갖고 있는 30대 청년 석구가 가출소녀 은지와 친구로 지내다가 은지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돌멩이'는 진실찾기가 아닌 각자의 진실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다룬 영화다. 그 시선과 질문이 영화적이다. 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합니다.

-'돌멩이'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2003년 '보리울의 여름'을 끝으로 연출부 생활을 마치고 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사들을 찾아갔더니 예술영화 쓰셨다고 하더라.

당시 내가 쓴 시나리오를 보고 누군가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이야기가 없고 수면 밑에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라. 지금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데 그 때는 오기가 생겼다. 왜 이게 비상업적이고, 왜 그걸 너희들이 판단해, 이런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계속 글을 쓰다보니 골방 글쟁이가 되더라. 돌아보면 내 이야기만 천착했던 나날이었다.

그러다가 '돌멩이' 제작자인 테이크 송대찬 대표를 만났다. 그도 당시에는 프로듀서였다. 같이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 그러던 어느 날 이제 그만 해야겠다는 말을 하려고 만났다. 그러면서 서로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눴다. 서로 가족에 지적 장애인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누고. 그런데 송대찬 대표가 시골에서 지적 장애인이 마녀사냥을 당하는 이야기인데 제목은 '돌멩이'다,라면서 이걸 해보자고 하더라.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좋았다. 그렇게 서로 그것 외에 아무 내용이 없던 이야기를 의논하면서 만들어갔다. 지금껏 했던 내 방식과 다르게 서로서로 의견을 내면서 하나하나씩 이야기를 쌓았다.

-지적 장애인이 어린 소녀를 성폭행하려 했다는 누명을 쓴다는 사건은 어떻게 출발했나. 통상 지적 장애인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만들면, 피해자로 만들지, 가해자로는 잘 만들지 않는데.

▶글을 쓸 때 습관이 엔딩을 정해놓고 쓴다. 이 이야기를 관객들이 고민하게 만들고 싶었다. 주인공인 석구(김대명)를 외롭고 두려운 상태로 만들었는데, 관객이 석구를 이대로 두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상태에서 꺼내려 할지,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사건을 놓아야 사람들의 시선이 다양하게 느껴질까를 고민했다. 다른 사건을 놓으면 획일적인 시선이 되는 것 같았다.

-전반부와 후반부, 카메라 무빙과 시점이 확연히 다르다. 전반부는 롱테이크가 많은 반면 후반부는 인물 하나하나에 카메라를 직접 들이대는데. 톤앤매너에 분명한 차이를 둔 이유는.

▶전반부는 밝게 갔다. 앞부분은 관객들이 석구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 환경을 관조적으로 봐주길 바랐다. 그리고 사건 이후에는 각각의 인물들에게 투영하길 바랐다. 이 영화는 진실찾기가 아니다. 석구가 그 일을 했냐, 안했냐를 다룬 게 아니라 석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그렇게 차이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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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김정식 감독/사진=이동훈 기자


-중후반부에 부모와 김선생(송윤아)이 다툴 때 은지(전채은)가 창문을 열고 난 다음에 마치 자살한 것처럼 카메라가 땅에 떨어졌다가 하늘을 날아 석구에게 가는 듯하는 것처럼 표현되는 데.

▶은지는 기억을 왜곡하는 아이다. 너무 힘든 기억을 그림 그리기와 좋은 기억으로 왜곡하고 치환해서 버티는 아이다. 그래서 부모와 김선생이 다툴 때 가장 좋은 기억을 찾아가 치환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마치 자살을 하는구나라고 관객이 혼용할 수도 있도록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김의성이 맡은 노신부와 송윤아가 맡은 김선생은, 각자의 정의로 영화에서 대립하는데. 선과 악을 나눠서 대립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선의로 맞서는데.

▶'돌멩이'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에 층위를 두고 싶었다. 연민의 층위를 두고 싶었다. 그런 사람들도, 실수를 하는구나. 자신들의 믿음을 속단해서 저렇게 연민이 깊은 사람들도 실수를 하는구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돌멩이'는 김대명, 송윤아, 김의성 등 주요 인물들 말고도 석구(김대명)을 둘러싼 각각의 인물들이 각각의 시선을 드러낸다. 그중 석구와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였던 호프집 사장 용덕(이중옥)의 시선이 중간 정도 지점이고 또 다른 울림을 주는데. 그렇게 설정한 이유는.

▶용덕이 저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용덕이 저라고 생각하고 썼다. 영화에서 중간지점이 필요했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나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가장 보편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돌멩이'에선 사실은 은지의 의붓아빠가 성폭행을 한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도록 한다. 여느 영화라면 그런 사실을 폭로해 갈등을 전환하고 사건을 해결할 법한데. '돌멩이'는 전혀 다른 길로 가는데.

▶나도 그렇고 송 대표도 그렇고 그 부분은 가차 없이 빼자고 했다. 이 영화는 시선의 이야기지 진실찾기가 아니니깐.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그 장면이 있어야 관객들이 해소 될테니 일단 찍어놓은 다음 편집할 때 고민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돌멩이'는 사람들이 감정에 쉽게 빠져서 진실이 외면 당하는 이야기인데, 그런 장면들은 이 영화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돌멩이'는 보는 시각에 따라 미투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보는 것도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일 수도 있지만.

▶이 시나리오를 쓸 때는 미투가 회자될 때가 아니었다. 크랭크인을 앞두고 미투 사건들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솔직히 고민도 했다. 그런 의도는 전혀 없지만 만약에 오해를 받는다면 진위와 상관없이 매도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걱정도 했다. 하지만 '돌멩이'는 그런 영화가 아니기에 이 이야기의 본령을 더 잘 담자고 마음먹었다.

-김대명과 송윤아, 김의성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송 대표가 김대명에게 시나리오를 건넨다고 하기에 너무 기분이 좋았다. 딱 내가 생각했던 석구의 이미지였다. 곰돌이 푸 같고 아이 같은 친근함과 순수함이 느껴지는. 그때는 지금처럼 유명할 때도 아니었다. 김대명이 시나리오를 읽고 바로 답장이 와서 너무 기뻤다. 김의성과 송윤아는 그간의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모습들이 이 영화에 더 맞으리라 생각했다. 송윤아는 여전사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이 믿는 정의를 위해,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송윤아는 정말 너무 너무 잘 해줬다.

-김의성이 맡은 노신부는, 자신이 신의 뜻대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가 정작 석구는 자신을 믿는데, 자신은 석구를 믿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이 영화에서 주는 또 다른 커다란 울림인데. 그 장면은 어떻게 찍었나.

▶정말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그 장면은 해가 지기 직전인 매직아워에 찍었다. 30분만에 찍어야 했다. 동선을 따라 기차놀이처럼 배우와 스태프가 길게 늘어져서 언덕까지 올라왔다. 김대명이 김의성에게 "내 믿어요?"라고 할 때 스태프들 사이에서 소리없는 탄성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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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채은과 김대명 '돌멩이' 스틸


-은지를 맡은 전채은은 연기경험이 전혀 없었는데.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그 나이대 배우들을 정말 오디션을 많이 봤다.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는데, 이 영화와는 안 맞는 것 같았다. 그중 한 명을 김대명과 같이 연기를 해보게 했는데 잘 어울리지가 않더라. 그런데 전채은은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데 너무 신선했다. 이 방법이 맞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채은이에게 전체 시나리오를 주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대한 설명만 해줬다. 전체 시나리오를 주면 연습해온 연기를 할까 싶었다. 그래서 채은이는 씬 순서대로 찍었다. 감정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도록. 정말 잘해줬다. 김대명과 송윤아, 김의성 등 성인 연기자들이 전채은과 같이 연기할 때 많이 챙겨주고 같이 연기를 했다.

-김대명은 대사도 별로 없이 연기를 해야 했는데. 너무 자기 자신에 갇혀있어도 안되고 그 갇힌 상태를 관객이 알게 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연기였을텐데.

▶시나리오를 쓸 때 지문이 왜 이렇게 길어,란 소리를 듣곤 했다. 소설이나며. 그만큼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김대명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눴다. 김대명이 행간에 담긴 감정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고. 어떨 때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대명씨가 만들어주세요,라고 했다. 그러면 김대명이 고민해서 가져올게요, 라고 하고 그렇게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마지막 저수지 장면은 롱테이크로 끝낼 것 같더니 갑자기 김대명의 전면으로 들어가 끝나는데. 또 이 영화에는 저수지 컷이 종종 등장하는데.

▶저수지 컷을 삽입한 건, 사람이 힘들 때는 비 올 때 더 힘든 게 아니라 화창할 때 더 힘들다고 생각한다. 너무 좋고 맑은 날, 더 힘든 어떤 마음을 담고 싶었다.

마지막 저수지 장면은 제일 마지막 날 찍었다. 어떤 의도가 있어서 석구가 저수지에 들어간 게 아니다. 그냥 은지처럼 저수지에 물고기가 있어서 보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물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날 저수지가 얼어서 스태프가 언 곳을 깨고 찍었다.

그곳에 석구가 덩그러니 홀로 있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카메라가 석구에게 가까이 다가간 건, 관객들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도 석구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나요? 석구를 이대로 둘 것인가요? 끄집어낼 것인가요? 어떤 답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석구의 얼굴이 다르게 읽힐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김대명은 그 얼굴을 정말 잘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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