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스포츠 한류의 미래, 돈 아닌 마음의 교류에 달렸다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0.09.28 16:10 / 조회 : 1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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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오른쪽 2번째)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팬들에게 둘러싸여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뉴스1
2002 한일 월드컵을 통해 한국 사회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축구 국가 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74)는 이후 핌 베어벡, 딕 아드보카트 등 네덜란드 출신 축구 지도자들이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성공과 실패가 교차했지만 2000년대 한국 축구에서 네덜란드의 영향력은 이렇게 생겨났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을 월드컵 4강으로 이끈 뒤 여러 클럽을 지휘하다 지난 2009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첼시의 임시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영국 언론은 히딩크의 개인사에 주목했다. 그의 아버지 게르트 히딩크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쫓기고 있던 유대인들의 은신처를 마련해 줬으며 피격 당한 미국과 영국의 공군 조종사들도 돌봐줬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런 연유로 히딩크의 고향 파르세펠트에는 히딩크 로(路)가 생겨났으며 히딩크 생가는 2차대전의 유적지가 됐다는 게 언론 보도의 주요 내용이었다.

이 스토리가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던 이유는 히딩크 생가 앞에 있는 표지석에 2002년 이후 한국어가 추가됐으며 한국인들이 찾는 관광지가 됐다는 대목이었다. 인구 6500명의 소도시 파르세펠트를 한국에 알린 히딩크 감독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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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 감독. /AFPBBNews=뉴스1
2002년 월드컵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황선홍이 골을 터트린 뒤 히딩크가 아닌 박항서(61) 코치를 껴안아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박항서 코치는 16강 진출 여부를 결정짓게 될 포르투갈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새벽까지 잠을 설쳤지만 정감 있는 표현으로 선수들을 독려했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외모로 선수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그들로 하여금 동고동락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해 주려고 했던 그만의 인간적 매력이다.

베트남에서 ‘축구 영웅’으로 거듭난 박항서 감독은 지난 달 60년 만에 베트남을 동남아시안게임(SEA) 축구 정상에 올려놓은 공로로 베트남 정부로부터 2급 노동훈장을 받았다. 베트남에서 외국인 스포츠 지도자로 2급 훈장을 받은 것은 박항서 감독이 최초이며 한국인 지도자로 외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것도 2019년 별세한 페루의 배구 영웅 박만복 감독 이후 최초로 알려져 있다.

단순히 대회에서의 좋은 성적뿐 아니라 친근한 이미지로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을 얻은 박항서 감독은 동남아시아에서 스포츠 한류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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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 /AFPBBNews=뉴스1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세계 주요 스포츠 리그는 동남아 시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인구증가율도 높지만 중산층의 비율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는 동남아시아 지역이 떠오르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축구를 중심으로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높아 K리그와 경쟁하는 일본 J리그도 동남아시아와 교류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하지만 J리그는 일본 기업 또는 광고회사(덴츠)와 동남아시아 간의 네트워크를 통한 상업적인 접근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 스포츠는 박항서 감독의 사례처럼 우선 정서적인 측면에서 동남아시아와 교류를 추진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한국·태국 여자배구 올스타 슈퍼매치의 영향력을 다룬 스포츠 한류 연구(전종환, 2020, 한양대 글로벌스포츠산업학과)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태국을 10차례 이상 방문해 현지에서 한국 여자배구의 영향력에 관해 설문과 면담조사를 했던 전종환 박사는 “태국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 드라마와 음식에 대한 관심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다만 여자 배구는 물론이고 한국 스포츠가 이 지역에서 더욱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노골적으로 상업적 접근을 하기보다는 진정성 있는 교류를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축구이지만 최근 10년간 여자배구의 인기는 매우 높아졌다. 태국 왕실의 재정적 후원 하에 여자배구는 국제무대에서 태국을 빛낼 수 있는 스포츠로 각광 받기 시작한 셈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과 태국의 여자 배구 올스타전은 2017년부터 시작될 수 있었고 두 나라에서 모두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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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왼쪽)-눗사라. /사진=OSEN, 뉴시스
하지만 이 여자배구 올스타전이 연착륙할 수 있었던 이유는 터키 페네르바체에서 같이 뛰었던 김연경(32)과 눗사라 똠꼼(35)의 우정에 대한 양국 배구 팬들의 관심과 함께 이른바 K 푸드를 좋아하는 태국인의 증가 추세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태국 여자 배구 올스타전이 펼쳐지기도 했던 태국의 대표적 배구도시 나콘라차시마에는 터미널 21(Terminal 21)이라는 쇼핑몰 안에 배구장이 있다. 과거 일본 레스토랑들이 점령했던 이 쇼핑몰에는 어느 순간 한국 음식 체인점들이 많이 입점했고 태국의 배구 팬들은 한국 음식을 먹고 올스타전을 통해 한국 여자 배구 경기도 보게 되면서 더욱 한류의 바람이 거세졌다.

1960~70년대 한국의 스포츠와 대중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에는 동남아시아 무대가 중요했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경쟁에 진력해야 했던 한국에 동남아시아라는 공간은 잊혀졌었다. 하지만 최근 동남아시아는 한류의 진원지 역할을 하는 핵심 지역으로 부상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 스포츠도 동남아시아와의 교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 콘텐트를 팔기 위해 접근한다는 인상은 지우고 스포츠를 통해 그들과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된다면 동남아시아 스포츠 한류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어쩌면 한류의 물결이 높게 파도치고 있는 바로 지금이 스포츠 한류에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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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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