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韓영화산업의 미래는 넷플릭스일까? ①

[전형화의 비하인드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20.09.11 10:50 / 조회 : 8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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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한국영화산업의 미래일까?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영화계에 포스트 코로나 논의가 한창이다. 논의의 중심에는 넷플릭스를 대표로 하는 OTT서비스가 있다. 과연 한국영화산업, 또는 영화의 미래가 넷플릭스일지, 짚어봤다.

현재 넷플릭스는 한국영화 제작자, 감독들과 손잡고 오리지널 콘텐츠 작업에 한창이다. 코로나 사태로 잠시 촬영을 중단한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 이재규 감독의 '지금 우리 학교는'을 비롯해 정우성이 제작하고 '고요의 바다', 한준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D.P.', 연상호 감독의 '지옥' 등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된다.

이들 한국 콘텐츠들은 대체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영화가 아닌 6~8부작인 시리즈로 제작된다. 이 시리즈들을 영화감독이 연출을 맡는 경우가 많다. 웹툰이 원작인 경우도 많다. 장르물이 주류다.

영화가 아닌 시리즈로 만들어지는 이유는, 넷플릭스가 추구하는 OTT서비스의 속성과 닿아있다. 한 편을 긴 시간 동안 보는 영화보다는 짧게 시리즈로 보는 걸 사용자들이 더 선호한다.

제작자들도 넷플릭스에서 제작피를 총 제작비 중 5~10% 가량 책정하기에, 한 편을 만들기보다는 시리즈를 더 선호한다. 제작피를 10%로 가정할 때 제작비 50억원 영화는 5억원을 받는다면, 회당 제작비 20억원이 드는 6부작 시리즈를 만들면 12억원을 받는다.

영화감독들의 이해도 맞는다. 넷플릭스에서 간섭을 하지 않는 반면 흥행에서 자유롭다. 연출료도 시리즈를 만들 경우 회당으로 받기에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이 받는다. 지분이나 러닝 개런티가 없는 대신 수입이 안정적이다.

참신한 장르물을 넷플릭스 사용자들이 선호해 장르물 제작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때문에 참신한 소재 웹툰이 원작인 경우들이 많다. 웹툰 콘텐츠화를 이끄는 레진스튜디오 작품이 많은 까닭이다.

반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만들어지는 한국영화는 아직 없다. 극장 개봉을 추진하다가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사냥의 시간'을 제외하면 넷플릭스에서 오리지널로 만든 한국영화는 '옥자' 밖에 없다. 다른 OTT서비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국 OTT서비스업체인 웨이브와 한국영화감독조합이 협업해 만든 'SF8'도 단편영화들의 옴니버스로 구성됐다.

이런 현상은 넷플릭스가 영화산업, 또는 극장의 대체제가 아닌 보완재라는 걸 의미한다.

대체로 넷플릭스가 영화산업의 미래라고 하는 전제에는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서비스가 극장의 대체제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OTT서비스가 추구하는 콘텐츠가 영화가 아닌 시리즈물이 주류이기에 OTT서비스는 극장의 대체제가 될 수 없다.

또한 OTT서비스가 극장의 대체제가 되기 위해선 극장의 몰락이 전제돼야 한다. 비록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 극장들이 위기를 겪고 있지만, 단시간에 극적인 몰락으로 이어지기는 이르다.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이 3~5년꼴로 재현되지 않는 한 극장 산업의 붕괴를 점치기는 이르다. 팬데믹이 재현되면 극장 뿐 아니라 다른 산업도 붕괴 가능성이 크기에 점칠 수 없는 미래이기도 하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서비스가 관람 형태를 바꿀 것이란 예측도 많다. 극장이란 갇힌 공간에서 꼼짝없이 콘텐츠를 봐야 하는 종래의 방식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며 편한 방식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바뀔 것이란 예측이다.

이런 관람 형태의 변화는, 패러다임의 전환과 맞물려 있다. 영화는 본래 누구랑 같이 보느냐가 중요한 매체다. 홀로 영화를 보는 '혼영족'이 늘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영화 관람이란 누군가와 극장에서 보기까지와 보고 난 뒤까지 이어지는 문화 형식을 갖고 있다.

이 패러다임이 온전히 개인화, 분산화로 전환돼야 OTT서비스가 극장을 대체할 수 있다. 도시화, 개인화가 시대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이어지기는 아직 이르다. 이런 전환은, 경제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가능하다.

무엇보다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는 민주적이다. 영화는 제작비가 1000억원이 들었든, 10억원이 들었든, 관람료가 같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똑같은 금액으로 같은 극장에서 관람해야 한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서비스는 구독료는 같지만 관람 환경은 빈부의 격차가 크다. 누구는 휴대전화로 봐야 하지만, 누구는 초호화 홈씨어터로 관람할 수 있다. 이런 관람 환경의 빈부 격차야말로 극장 산업이 OTT서비스로 쉽사리 대체되지 않으리란 이유기도 하다. 부자는 적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더 많기에, 부자들의 관람 형태에 맞춰 콘텐츠를 만들어선 영화산업이 유지될 수 없는 탓이다.

이처럼 산업적, 구조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OTT서비스는 극장의 대체제가 아닌 보완재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극장이 위축되고 OTT서비스가 주목받고 있지만, 결국은 OTT서비스의 활황은 영상 콘텐츠 시장 전반을 넓히는 또 다른 유통망으로 기능할 것이다.

때문에 OTT서비스에 대한 지원 역시 콘텐츠 제작에 대한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현재 정부는 넷플릭스를 이길 수 있는 한국형 OTT서비스를 지원한다는 정책 기조를 갖고 있다. 콘텐츠 제작 지원보다는 유통망 지원에 주목하고 있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했다. 당장 왓챠 등 한국형 OTT서비는업체들은 저작권과 관련한 저항에 부딪혔다. 영화수입배급사협회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갈등을 빚고 있다. 저작권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한 넷플릭스 같은 구독형 모델로 가기는 어렵다.

넷플릭스 같은 구독형 모델로 가기 위해선, 한국형 OTT서비스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거나, 넷플릭스처럼 콘텐츠에 대한 권리를 개별 구매해야 한다. 이는 탄탄한 자본력을 갖추기 전에는 쉽지 않다. CJ ENM과 JTBC가 손잡은 티빙처럼 모회사들이 자체적인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저작권 문제의 벽을 넘기 힘들다. 이런 까닭에 한국형 OTT서비스업체들을 육성하기 위해선 유통에 대한 지원보다는, 자체적인 콘텐츠 제작 지원에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금 같은 유통망에 대한 규제와 유통업체에 대한 지원은, 한국영화산업 육성을 위해 스크린쿼터 등 규제 정책을 도입하고 모태펀드로 대기업 배급사 기반을 도운 과거 정책과 궤를 같이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한편으로는 한국영화산업에 기회기도 하다.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에선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세계 곳곳의 영화 제작 현장이 멈춘 반면 한국영화는 그럼에도 만들어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 전세계 극장들이 정상 영업으로 돌아와도 당장 상영할 영화들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한국영화들이 각 나라 극장들에서 대거 선보여질 가능성이 크다. '반도'가 싱가포르에서 극장 영업 재개 첫 작품으로 선보인 것도 그런 맥락이다.

내년에 열리는 각국의 국제영화제들에 벌써부터 한국영화들이 대거 초청될 것이란 전망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K-드라마와 K-팝에 이은 K-영화 붐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기회가 될 수 있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한국영화, 또는 한국콘텐츠 제작에 지원이 맞춰져야 하는 또 다른 이유기도 하다.

분명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국영화산업은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전망도 암울하다.

그럼에도 코로나 팬데믹이 영화산업의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영화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영화산업의 변화는 기술의 발달로 이뤄지고, 이뤄질 수 밖에 없다. 필름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면서 필름 시대에 있었던 영화 관련 업종들이 대거 사라지고, 디지털 시대에 맞는 업종들이 탄생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디지털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면서 조명의 필요성이 바뀌고 있다. 감도를 높여서 찍고 후반작업에서 D.I.(디지털 색보정)로 빛을 잡는 방식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는 촬영 현장 인력이 줄고, 후반 작업 중요성이 커지며, 프로듀서의 역할이 커지는 방식으로 전환될 것이란 걸 암시한다.

필름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면서 산업의 변화가 이뤄진 것처럼, 디지털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영화산업의 업종 역시 변화 할 수 밖에 없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런 변화가 앞당겨질 수는 있지만, 본질의 변화는 아니다.

한국영화산업에 코로나 팬데믹은 위기이자 기회다. 흐름을 읽고 버티며 정책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이 잡는 법이다. 지금은 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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