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등장' 1947년에 갈린 MLB와 니그로리그의 운명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0.07.15 13:53 / 조회 : 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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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홈구장 U.S.셀룰러 필드 외야 간판에 새겨진 재키 로빈슨의 사진과 배번. /AFPBBNews=뉴스1
스포츠는 이제 단순히 승부를 겨루는 경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과 사회를 움직이는 문화일 뿐 아니라, 막대한 부가가치를 낳는 산업이다. 스타뉴스는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의 연재 글을 통해 문화와 산업의 관점에서 스포츠를 조명한다. /편집자주

백인 경찰에 의해 체포되던 중 질식사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여파는 크다. COVID-19로 미국 내 흑인 인구 비율보다 훨씬 많은 흑인이 사망했다는 뉴스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소득수준이 낮은 흑인은 건강보험의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미국의 현실과 플로이드 사건 이전부터 계속돼 온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의 차별적 과잉 대응은 2020년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뜻의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을 국제적으로 확산시켰다.

미국 프로 스포츠에서 흑인 차별 문제를 타개한 최초의 리그는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다. 1947년 브루클린 다저스(LA 다저스의 전신)가 UCLA 대학을 졸업한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영입하면서 메이저리그는 흑인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메이저리그는 그가 데뷔한 4월 15일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정했으며 그가 달고 뛰었던 등 번호 42번은 전 구단에서 영구결번이 됐다.

하지만 로빈슨의 메이저리그 데뷔를 흑인 차별 금지라는 인권적 측면으로만 볼 수는 없다. 어쩌면 메이저리그 구단의 경영학적 셈법과 흑인이 뉴욕주의 투표에서 큰 영향력을 갖게 된 정치적 상황이 로빈슨을 필두로 한 흑인 선수들의 등장을 이끌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마디로 로빈슨의 메이저리그 데뷔는 산업과 문화가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얽히면서 직조된 작품이다.

1942년 뉴욕주에서의 선거는 흑인들이 어느 정당 후보에게 투표를 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3년 뒤인 1945년 퀸-아이브스 법안이 제정됐다. 퀸-아이브스 법안은 인종·종교 등에 따른 고용차별을 금지하는 것으로 미국 내 대표적 고용차별 대상 그룹인 흑인들의 권익을 배려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 법안에 의거해 당시 뉴욕시의 라과디아 시장은 특별 위원회를 구성해 뉴욕시에서 흑인 고용차별 문제를 현안으로 다뤘다. 뉴욕에 본거지를 두고 있던 프로야구 팀인 뉴욕 양키스, 뉴욕 자이언츠와 브루클린 다저스는 모두 흑인 선수 고용을 하지 않아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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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다저스와 계약서에 사인하는 재키 로빈슨. /AFPBBNews=뉴스1
브루클린 다저스의 브랜치 리키 단장은 이와 같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다. 평소 니그로 리그에서 활약하는 흑인 선수들의 뛰어난 야구 기술에 관심이 컸던 리키 단장은 흑인 선수의 메이저리그 입성에 대한 밑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렸다. 또한 그는 20세기 초반 이후 수많은 흑인들이 뉴욕을 중심으로 한 북부 상공업지대로 몰려 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흑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뛴다면 흑인 야구 팬들도 니그로 리그가 아닌 메이저리그의 팬이 될 수 있다는 경영적 판단을 했던 셈이다.

하지만 걸림돌은 많았다. 우선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근본적으로 경제적 이유 때문에 흑인 선수의 메이저리그 입성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꽤 많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니그로 리그 팀에 경기장 대여를 통해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 일부 내셔널리그 소속 구단들은 브루클린 다저스가 흑인 선수를 경기에 내보내면 이 경기를 보이콧하겠다는 으름장까지 놓았다.

내셔널리그 회장의 강력한 조치로 결국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은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데뷔할 수 있게 됐다. 결과는 대성공. 로빈슨은 시즌 초반 관중들과 상대 팀 선수들의 야유를 이겨내고 대활약해 1947년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로빈슨이 활약한 다저스 홈 경기장에는 흑인 팬들이 대거 몰려 들었으며 다저스의 원정경기에도 그를 보려고 많은 흑인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1947년 내셔널리그에서는 무려 5개 팀이 ‘재키 로빈슨 효과’로 한 시즌 최다 관중 동원 신기록을 수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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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5일 '재키 로빈슨 데이'에 등번호 42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선 뉴욕 메츠 선수들. /AFPBBNews=뉴스1
이듬해 아메리칸리그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메리칸리그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니그로 리그의 전설적 투수 세이첼 페이지와 외야수 래리 도비를 영입했고 구단 역사상 최초로 월드시리즈 패권을 차지했다.

시대 상황을 꿰뚫어 본 리키 단장의 혜안으로 메이저리그는 새로운 흥행 전성시대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1930년대 흥행부진을 딛고 메이저리그는 흑인 선수와 흑인 팬의 유입을 통해 재도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흑인 야구 문화를 오랫동안 이끌었던 니그로 리그는 1947년 이후 급격하게 쇠퇴했다.

선수도 팬도 메이저리그에 빼앗긴 니그로 리그는 1960년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했다. 이 과정에서 니그로 리그 구단들은 마이너리그에 편입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 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구단주들은 이들의 간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유는 니그로 리그 구단주들이 대부분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비즈니스와 연관돼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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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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