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승 작곡가 "김형석 황금라인 타고 최연소 데뷔"(인터뷰①)[스타메이커]

[스타메이커](100) 이현승 작곡가

이정호 기자 / 입력 : 2020.07.15 10:30 / 조회 : 6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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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스타메이커] 스타뉴스가 스타를 만든 '스타 메이커'(Star Maker)를 찾아갑니다. '스타메이커'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 뿐만 아니라 차세대 스타를 발굴한 국내 대표 '엔터인(人)'과 만남의 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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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승 작곡가/사진=김창현 기자 chmt@


최근 MBC '놀면 뭐하니?'에 가수 비와 함께 출연하며 화제를 모은 이가 있다. 오랜만에 매체에 얼굴을 비춘 그는 혼성그룹 싹쓰리(SSAK3, 유듀래곤 린다G 비룡)에 딱 맞춘 90년대 스타일의 곡을 준비했지만 갑작스럽게 레게에 꽂힌 비로 인해 화제(?)의 곡 '신난다'를 작곡했다. '신난다'가 프로그램의 세계관 안에서 '깡'에 이어 또 하나의 밈으로 소비되면서 더불어 이현승 작곡가를 향한 관심까지 높아지고 있다.

사실 그는 백지영 '잊지 말아요'와 같은 발라드부터 김태우 '사랑비', 다비치 '8282', 에일리 '보여줄게'와 같은 댄스곡, 엑소 'CALL ME BABY' 같은 아이돌 노래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히트곡을 쓴 히트메이커다. 김형석 작곡가의 제자로, 당시 윤일상 작곡가가 가지고 있던 최연소 데뷔 기록을 갈아치우며 화려하게 데뷔해 스타 작곡가로 성장한 이현승 작곡가가 100번째 스타메이커로 선정돼 스타뉴스가 만났다.

-먼저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2000년대에 데뷔해 지금까지 대중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현승이라고 한다. 또한 맵스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운영해왔고, 지금은 맵스엔터테인먼트가 휴맵컨텐츠와 사실상 합쳐졌다. 소속 가수로는 인순이, 루나, 강효준 등이 있다.

-위키백과 등 이현승 작곡가를 소개하는 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타이틀이 붙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지금 '스타메이커' 타이틀도 그렇고 말씀하신 것도 그렇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방송 출연이 적었던 이유도 제가 아직 나설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100% 작가 마인드로 일을 해왔는데 주변에서 인정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최근 '놀면 뭐하니?'에 출연하시면서 화제를 모으셨는데 이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겠다. 먼저 '김형석 제자', '최연소 데뷔' 등 화려한 타이틀이 눈길을 끈다. 음악을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는지 스토리가 궁금하다.

▶제가 알기로 윤일상 선배님이 가지고 있던 최연소 데뷔라는 기록을 깬 걸로 알고 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작곡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김형석 작곡가님이 방송에 나와서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고 매료됐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때 무작정 소니레코드에 전화해서 "김형석 대학 동기인데 연락이 끊겼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번호를 얻으려고 했다. 이에 소니레코드에서 당시 임창정 회사에 문의하라고 번호를 알려줬고, 소속사에 똑같이 말하면서 전화하니까 김형석 작곡가님의 작업실 번호를 알려줬다. 작업실에 전화해서는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그리고?

▶이후 오디션을 보기 위해 작업실에 7번 정도 갔는데 계속 만나질 못했다. 그래서 사무실에 있는 직원한테 '제가 작곡가님께 오디션을 보는 게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저를 보면 후회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했고, 이후 오디션을 보고 합격해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김형석 작곡가님은 당대 최고의 가수들의 곡을 작업하는 최고의 작곡가셨다. 그분의 음악적 경험과 영감을 옆에서 지켜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운이 좋았다. 시작부터 황금라인을 타게 됐고, 18살에 데뷔했다. 김형석 작곡가님은 지금 저의 아버지나 다름 없다.

-말 그대로 황금라인을 타고 데뷔했는데 시작부터 성공적인 행보를 보였나.

▶아니다. 우선 제 데뷔곡은 지금 유승준의 'Best Day'로 나오는데 사실 그 전에 진주의 '내 사랑을 받아줘요'다. 듀엣곡인데 남자 가창 부분을 가수가 아닌 제가 불렀다. 당시 그 노래를 편곡해주신 분이 방시혁 작곡가님이고. 이 곡들을 시작으로 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어려서 데뷔한 게 오히려 제겐 힘든 시간이 됐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싱글이나 미니앨범이 아닌, 가수가 앨범을 발매하면 무조건 정규앨범인 시대였다. 타이틀곡은 단 한 곡이니 선배님들과 경쟁을 해야했는데 당시 전 경험도 부족했고 당연히 실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경쟁에서 밀려 제 곡은 수록곡으로만 실렸다. 당시엔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만약 당시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음악을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이후 2000년대 후반 들어 히트곡이 하나씩 나오면서 지금의 위치까지 오르게 됐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어떤 곡인가.

▶아무래도 타이틀곡으로 성공한 것보다 수록곡으로 수록돼 빛을 보지 못한 곡들에 애착이 가는 게 사실이다. 타이틀 중에 꼽자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인순이의 '아버지'다. 당시 선생님이 눈물을 보이실 만큼 녹음하기 싫어하셨는데 이를 설득하는 과정, 이후 곡의 성공까지 저와 선생님의 스토리가 곡에 녹아들어 더욱 특별하다.

인터뷰②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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